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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 공약을 두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교육분야 시민기자들과 함께 박 당선인의 교육 공약을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자료사진) ⓒ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승리한 이후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 세력은 유력 인사와 언론을 중심으로 박근혜 당선인에게 선거 운동 시절 한 공약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고 훈수를 두고 있고,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진보 세력 사이에서는 공약 이행을 철저히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먼저 진보 세력이 아닌 일반 국민의 한 명으로서 이야기를 시작해봐야겠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진보의 목소리를 두고 마뜩찮아 하는 논조가 횡행하고 있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행위이다.

민주정치와 중우정치는 다수의 뜻을 따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민주정치는 합리적이고 교양을 가진 시민들이 후보의 공약을 두고 심사숙고하여 지지할 후보를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정치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후보 선택 기준이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박근혜 선거 공약 재검토하라니...

물론 공약 시행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것도 공식적으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선거 공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신뢰와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음은 진보 세력의 일원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겠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 생각하며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입에 발린 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공약에는 진보 세력이 추구해온 역사적 노력의 소중한 결과물들이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새누리당이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공약으로 수용한 것만 해도 그렇다. 물론 내용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이 보편적 복지가 망국으로 가는 길로 몰아붙이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역사 발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반값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후보의 반값 등록금과 박근혜 후보의 등록금 부담 절반은 의미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해도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 등록금 부담이 절반으로 떨어지기만 해도 이것이 나쁜 일이라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지는 못해도 등록금 부담을 진짜 절반으로 하는 일이라도 실현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근본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진보의 싹을 소중히 여기고 비록 지지하지 않은 정치 세력에 의해서라도 그 싹이 잘 커나가길 돕기도 하고 애정 어린 비판도 같이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란 어느 개인 혹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속한 세력이 혹은 내가 지지한 후보가 주인공이 되어 역사를 진두지휘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특별히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면 당선 이후부터는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대통령을 통해서 내가 꿈꿨던 세상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게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사명이자 의무이다.

한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극히 부합하는 이러한 노력과 행동들을 폄하하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들을 모욕하는 논조가 보수 언론을 통해서 스스럼 없이 나온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강천석 주필은 자신의 기명 칼럼에서 "칼날을 보였다 감췄다 하며 당선인에게 공약 준수를 다그치는 사람들은 진짜 채권자가 아니다. 빚 독촉 자격이 있는 정당한 채권자는 국민뿐이다"면서 48%의 국민을 은근슬쩍 국민의 범위에서 배제하는 논리를 당당하게 펴고 있다

<조선일보> 1월 19일자에 실린 강천석 주필 칼럼  강 주필은 '당선인 흔드는 바람 붙드는 바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박 당선인에게 공약 재조정을 요구했다.
<조선일보> 1월 19일자에 실린 강천석 주필 칼럼 강 주필은 '당선인 흔드는 바람 붙드는 바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박 당선인에게 공약 재조정을 요구했다. ⓒ 조선일보PDF

이 칼럼은 인터넷판에서 부제목으로 '박근혜 정권 진짜 고비는 인사보다 공약 재조정'이라고 붙였다.(이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가 낙마하며 박근혜 정부의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인사에서 진짜 고비가 나타났으니 강천석 주필도 약간은 머쓱하지 않았을까 싶다.)

백보를 양보하여 설사 공약에 문제가 있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공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국민보다는 그런 공약을 내세운 후보자를 먼저 비판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조선일보> 주필의 위협적인 논조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의 일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을 살펴보고 이중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공약이라는 판단이 서는 것에 대해서는 돕기도 하고 채찍질도 해야겠다. 이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시민적 의무이기도 하다.

예사롭지 않은 교육 분야 공약... 사교육 경감 정책

다른 분야의 공약은 전문성이 떨어져 모르겠고 필자가 직업적으로 속해 있는 교육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다르지 않겠지만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나 공약이 서로 비슷비슷하여 공약집에서 이름만 가리고 보면 누구의 공약인지 알기도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문재인 후보보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더 급진적인 것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교육 분야 공약의 슬로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당선인은 경쟁이 아니라 행복을 강조하였다.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 교육이 시작됩니다"

경쟁이 아니라 행복을 강조하는 교육은 전통적으로 진보 세력이 강조하는 교육관이었다. 원래 선거 슬로건들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좋은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꿈과 끼, 행복을 강조하는 교육은 정말로 진보 세력도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교육 목표이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 박근혜 당선인이 정말로 이행하였으면 하는 교육 공약은 '사교육비 경감 정책 추진'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을 만든다고 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법까지 만들어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실제 법제화 여부를 통해 공약 이행의 의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6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열린 3차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6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열린 3차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공약집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TV토론에서 선행학습 금지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법으로 금지시키겠다고 발언한 바 있어서, 이 법안 내용에 선행학습 금지도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사실 선행학습금지법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법제화 노력이 진행되었으나 현실화에 많은 장벽이 존재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대선 국면을 통해서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지는 속도가 가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열 교육 경쟁의 부작용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교육 시장의 선행학습 열풍이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지키는 공교육에 대해 차별성을 나타낼 수 있고 다른 학생들보다 앞서 배우게 하려는 학부모들의 얄팍한 심리를 이용한 대표적 시장의 실패 현상이 만연화된 선행 학습이다. 법적인 강제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막겠다는 당선인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 입시가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에서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당선인은 '수능과 논술 시험을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하여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공약을 하고 있다.

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한다는 것은 수능과 논술이 현재의 수준보다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박근혜 당선인이 추진하는 법안의 내용에는 '각종 학교시험과 고교·대학 입시에서 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문제 출제를 금지하고, 위반시 강력한 불이익 조치'를 취한다는 구체적인 강제 방안도 나와 있다.

이런 진보적인 교육 공약에 대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등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다.

이런 교육 분야 공약은 보수 세력이 공약 수정의 강력한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재정 부담과도 거리가 있다. 사교육 경감 대책은 국민의 부담을 늘리기는커녕 정부의 재정 부담 없이 손쉽게 국민의 부담을 확 줄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공약이 지켜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분명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선행학습 금지 법안 도입만 살펴보아도 보수적인 교원 단체인 교총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교총의 반대 입장이 아니더라도 극도의 경쟁이 효율을 가져온다는 보수 세력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에 비춰봤을 때 선행학습 금지 법안 도입 약속이 쉽게 이행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이는 입시 문제의 쉬운 출제 공약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사실 입시 문제를 쉽게 낸다는 공약 혹은 정책은 오랫동안 정부에 의해서 시도되어 왔지만, 번번히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무너져 왔다. 이른바 변별력 논란이 그것이다.

사실 문제가 쉬어지면 변별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교육학적으로 밝히자면 문제가 쉽게 출제되면 상위권의 변별력이 낮아지고 중하위권의 변별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보수 언론에서는 상위권에만 초점을 두고 이들의 변별력이 낮아지는 것을 마치 시험의 전체 변별력이 낮아지는 것으로 호도하여 왔다. 결론적으로 상위권 대학의 변별도가 낮아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지가 공약 이행의 가능 여부를 결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국 교육에서 극도로 강화된 경쟁 시스템은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이는 공약의 변별력이 사라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교육 공약을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천해 낼 것이냐의 문제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공약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 공세보다는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 논리를 펴겠지만, 교육 분야 공약에 대해서는 재정 부담보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서 공약 수정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의 대표 공약이었던 '중학교 1학년 학교시험 폐지'가 유명무실화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48%는 공약의 내용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공약을 지키지 않을 것 같은 새누리당의 배경도 큰 이유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공약을 지켜선 안 된다고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고 있는 보수 언론을 위시로 한 그 세력을 본다면 그 같은 생각이 절대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교육 절감' 공약은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에 있는 '새누리의 진단'에 나와 있는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그 진단에 100% 동의하고 더 뺄 것도 더 넣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휘청이고, 삶의 질은 저하되고, 노후 대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박근혜#교육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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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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