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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과 도서관이 한 건물에 함께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인천 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는 2011년 11월 문을 열었다. 일종의 청소년 대안 공간이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책만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지역 주민이 재정 지원과 재능 기부를 통해 만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느루'는 순 한글말로 '한꺼번에 휘몰아치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이다.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천천히' 삶의 방향을 찾아가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역 주민이 만든 도서관 '느루'

'느루'는 건물 3층에 있었다. 3층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리다 만 벽화가 눈에 띄었다.

 '느루'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그려진 미완성 벽화.
'느루'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그려진 미완성 벽화. ⓒ 차현아

"여기에 처음 자리를 잡을 때 고민 많이 했어요. 청소년 공간인데 1층에 술집이 있어도 되나 싶어서요."

'느루'를 만든 '푸른샘어린이도서관자원봉사자들'은 도서관이 '술집 위층'에 있어도 괜찮은지 토론을 했다. 토론 끝에 "술도 인생을 알게 해주므로 인문학의 일종이다"라는 결론을 내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느루'는 이렇게 주민들이 모여서 토론 끝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느루'는 지난 2008년 지역 주민 여덟 명이 '청소년 공간 만들기 준비 모임'을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청소년 공간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터라 주민 토론회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또한 도서관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후원회를 지역 사회 내에서 조직했다. 당시 100여 명의 후원자가 모였다. 현재 후원자는 140여 명이다. 도서관 건축 과정에선 필요한 책장과 건축 자재, 책 등을 십시일반 동네 주민에게 받았다. 청소년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2011년 11월 '느루'로 완성됐다.

 '느루' 도서관 내부 모습.
'느루' 도서관 내부 모습. ⓒ 차현아

도서관 내부 작은 공간에는 책과 책상, 피아노와 드럼이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책과 책상, 의자만 가득할 것 같은 도서관에 왜 악기가 있을까. '느루' 대표인 권순정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토요일마다 여기서 애들이 밴드 활동을 하거든요. 올라오는 계단 옆에 그리다 만 벽화도 애들이 토요일마다 와서 조금씩 그리고 있는 거예요." 

'느루'라는 공간을 기획한 것은 마을 어른들이지만, 공간을 꾸미고 활용하는 것은 이렇듯 청소년들의 몫이다.

청소년 진로고민... 지역에서 답을 찾다

권순정씨에게 청소년 도서관 이름에 왜 굳이 '인문학'이 들어갔는지를 물었다. 

"청소년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니 '인문학'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도서관 설립 계획 짤 때, 저희가 직접 학생 1200여 명 정도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그때 아이들이 도서관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한 프로그램이 진로탐색이었고요."

그래서일까? '느루'는 다른 도서관에 비해 진로 탐색 관련한 청소년 동아리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제빵을 배우고 싶거나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면, '느루'에서 근처 네일아트 가게, 빵집 주인 등 지역 주민과 청소년들을 직접 연결해 주기도 했다. 

지역 주민은 공간을 제공하고 재능도 기부한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사람사이'라는 카페에서는 바리스타 교육도 받을 수 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그 주 토요일에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어 판다.

 '느루' 도서관 옆 '사람사이' 카페에서는 학생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느루' 도서관 옆 '사람사이' 카페에서는 학생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 차현아

'느루'의 진로탐색 프로그램은 지역 중고등학교와의 연계 속에서도 이뤄진다. '느루'에서 미술, 도시 디자인 등 26개 분야 강사를 섭외해 주변 학교에서 특강을 열기도 했다. 올해 3월부터는 창의적 체험 활동의 일환으로 가좌고와 연계해 영화, 만화, 수채화, 요리 등 14개 동아리를 운영한다. 가좌고에서 이렇게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은 총 180여 명이다.

지역 주민과 학교, 학생이 함께 일구는 '느루'에도 운영상 어려움이 있을까? 이혜경 사무국장은 '느루'의 한계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이들이 와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만큼 시설은 얼추 갖춰진 것 같은데, 막상 애들이 여기 와서 책을 잘 안 읽어요. 그렇다고 애들을 강제로 앉혀 읽게 할 수도 없고. 옆에 카페에만 잠깐 앉아있다 가는 애들도 많아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책 읽는 도서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책 읽는 청소년' 모임과 '책 읽는 엄마' 모임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느루'가 더 가야할 길은?

 '느루'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
'느루'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 ⓒ 차현아

가림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윤석군은 최근 만들어진 '느루' 밴드 동아리에서 기타를 담당하고 있다. 최군은 "'느루'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2년 전부터 활동했는데, 덕분에 책도 많이 읽게 돼 좋았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여기서 함께 책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09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5세에서 19세 연령에 해당하는 인구 중 문화·여가생활 향유 여건이 과거이 비해 그대로이거나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68.9%였다. 또한 2011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서는 13세에서 19세 연령에 해당하는 이들이 향후 늘려야 할 공공시설로 39.2%가 도서관을 꼽았다.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17기 인턴기자입니다.



#청소년도서관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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