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지 않은 사회란 없다. 그러나 위험이 어떤 원인과 방법으로 양산되는가. 그 위험요소들이 어느 정도인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위험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하는가? 등에 따라 그 사회는 크게 달라진다.
<위험 증폭 사회>(궁리 펴냄)는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한 위험 요소들의 상황과 실체를 들려줌과 함께 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2010년도 산재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2200명이었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8만 9459명이었다. 또 각종 직업병이나 직업 관련성 질병에 걸린 노동자는 698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산재보상보험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에서 벌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병원에서 4일 미만 치료를 받은 가벼운 부상은 모두 제외됐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모두 신고가 돼 통계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또 산재에 미가입한 영세사업장도 많으므로 실제 산재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사업장은 2010년 현재 모두 160만 8361곳이며 노동자는 1419만 748명이다. - <위험 증폭 사회>에서산업재해와 직업병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 7월 2일은 대한민국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진 날로 산업재해 예방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결코 잊지 않는 날이다. 15세의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투병하다가 끝내 사망한 날이자(1988년),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방기 점검 작업을 하던 인부 4명이 냉매가스를 주입하다 귀중한 목숨을 한꺼번에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2011년).
당시 적잖은 충격이었음에도 일반인들에겐 아마도 거의 잊혀버렸을 문 군의 죽음에 대해 대략 이야기하면, 문 군은 학비를 벌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회사 측의 권유에 졸업식도 채 치르지 못하고 1987년 12월에 상경했다. 그리하여 협성계공(서울)이란 온도·압력계 공장에 취직했다.
15세의 어린 소년이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한 기간은 12월부터 설 무렵까지인 고작 두 달. 그런데 이 짧은 기간에 그만 수은 증기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산업재해 인정을 받고자 노동자사무소에 산업재해 신청하려 했으나 회사 측은 '설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농약에 중독된 것'이라며 협조해주지 않는다.
문 군은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병명과 원인이라도 알자며 가족은 땅을 팔아 서울대병원에 입원시킨다. 그리하여 어렵게 수은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산업재해 병원인 가톨릭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숨지고 만다.
법은 어린 나이에 유해 작업 부서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 유해 작업 현장에서는 특수 방진 마스크 같은 보호 장구들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거나, 작업자들이 다루는 위험물질이나 작업환경에 대한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 등과 같은 안전수칙을 정해두고 있다.
그럼에도 문 군은 위험물질을 다루는 회사에 취직했고, 온도계에 수은을 넣는 일을 했다. 이마트 작업 사망자들의 경우도 '가스 누출에 대비해 작업 중엔 반드시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에도 불구하고 사고 현장에선 안전장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둘 다 기본적인 안전수칙만이라도 지켰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인 것이다.
문 군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노동현실과 노동 관련법(제도)의 부실을 돌아보게 하고, 산업재해나 직업병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에게 한국사회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관련법의 부실함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이 일어나는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등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노동현실은?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노동현실은 어떤가? 계속 생산되고 있는 삼성백혈병 사망자들과 초일류기업 삼성의 태도,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사망 사건 등을 보며 시대는 변했고 현장은 달라졌지만,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씁쓸함은 나만의 생각일까?
산업화된 외국에서는 전체 암 사망의 약 4퍼센트 가량이 직업성 암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평균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암 사망자 6만여 명 중 약 2000명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업성 암은 주로 남성 근로자에서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업성 암환자 수는 연간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수행한 직업성 암의 심의 결과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4년 동안 직업성 암으로 판정된 건수는 총 98건이다. 연간 7명꼴이다. 전체 직업성 암 중 약 53퍼센트는 폐암(52건)이 차지해 가장 많았고, 백혈병(15건), 기타혈액암(10건), 종피종암(9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위험 증폭 사회>에서우리의 이런 상황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직업성 암 환자가 산업 선진국 절반 수준으로 발생한다고 해도 연간 1000명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의 직업성 예방 수준이 세계 그 어떤 나라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작업 현실은 어떤가. 과연 안전한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우리의 사고성 사망 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은 영국의 14배, 일본과 독일의 4배, 미국의 2배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산재 사망 만인율이 높음에도 직업성 암 환자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흔히들 직업병은 유해물질을 다루는 특수한 직종의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할 때 걸리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산업재해는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최근에 발생한(2012년 9월) 구미시 불산 가스 누출사고는 안전하지 못한 산업현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물론 주변 주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씁쓸한 것은 이런 일이 오래전부터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은 삼성백혈병 발병과 사망 사건을 조명하는 한편 문송면 군의 죽음과 원진 레이온 사건 등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 산업재해들과 직업병 그 실태를 파헤친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야간 교대 근무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까지 접근, 이제까지와 다른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의 위험성을 알린다.
산업재해 혹은 직업병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다. 걸핏하면 먹을거리 관련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알고 보면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의 많은 먹을거리들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잃은 지 오래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안전을 위해 사용한 생활용품이 알고 보니 사망의 원인인 경우도 있다. 점점 갈수록 자살도 부쩍 늘고 있는 느낌이다.
1988년부터 2004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 사회부장, 보건 복지부 전문기자로 활동한 이후 다양한 매체에 관련 글들을 써오고 있는 저자는 그간의 취재 자료 등을 바탕으로 먹고 마시고 휴대폰처럼 항상 쓰는 물건과 우리들이 깃들어 사는 환경, 약물중독이나 의료사고, 자살과 우울증, 도박과 음주와 흡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위험요소 그 실태와 진실들을 들려준다. 아울러 대안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에이즈 X파일>, <한국의사들이 사는 법>, <인간 복제, 그 빛과 그림자>, <석면: 침묵의 살인자> 등 사회성 강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중 <한국의사들이 사는 법>(한울 아카데미 펴냄)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불법과 탈법도 서슴지 않는, 심지어 사기에 맞먹을 만큼의 교활하고 치졸한 수법도 가리지 않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 책이라고. 몸이 아프면 찾아가 의지해야 하건만 일반인인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세계, 그 검은 진실을 파헤친, 쉽게 나올 수 없는 그런 책 같아 관심이 가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위험 증폭 사회>ㅣ안종주 씀| 궁리출판사 | 2012-12-07ㅣ정가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