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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허가 된 둘째 큰 아버지 집. 옛날 화려했던 집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페허가 된 둘째 큰 아버지 집. 옛날 화려했던 집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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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안식처입니다. 엄마 품 같은 고향은 우리가 고향을 버릴지라도 고향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설날과 추석이면 고향을 찾고, 힘들고 외로울 때면 고향을 찾습니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이 온몸을 휘감아 돕니다. 어릴 적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둘째 큰아버지 집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집을 허물었는데 이제 메마른 풀만 무성하고, 넘어진 나무만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북적거렸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흔적만 남은 집터를 보고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40년 전 이곳에서 뛰어놀았습니다. 조카들과 뛰어놀았습니다. "이놈들아 좀 조용히 하라"는 큰아버지 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람들도 북적북적거렸습니다. 큰아버지 집에는 이른 봄 목련이 피었습니다. 하지만 흰 목련은커녕 메마른 풀만 무성합니다. 북적거렸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람 하나 없습니다.

폐허가 된 둘째 큰 아버지입니다. 어릴 적 북적거렸던 사람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폐허가 된 둘째 큰 아버지입니다. 어릴 적 북적거렸던 사람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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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큰아버지 집 바로 위에는 첫째 큰아버지 집입니다. 굉장히 큰 집입니다. 어릴 적 느낌은 대궐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궐 같은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니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붕 위 기왓장도, 찬바람을 막아줬던 문도 누가 뜯어갔는지 사라졌습니다. 조금 뒤에 오면 기둥도 뽑아 갈 것 같습니다. 몇 년 후에는 기왓장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횅한데 그때쯤이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인데 마음이 더 아픕니다.

머슴들이 거했던 아래채에 녹슨 이앙기만 덩그러니...

첫째 큰 아버지는 우렁찼습니다. 호령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몸은 흙은 들어갔고, 집도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첫째 큰 아버지는 우렁찼습니다. 호령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몸은 흙은 들어갔고, 집도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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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큰아버지 집도 허물어졌습니다. 굉장히 큰 집이었습니다.
 첫째 큰아버지 집도 허물어졌습니다. 굉장히 큰 집이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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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는 머슴까지 대여섯을 두었습니다. 동네 절반은 할아버지 논이었을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지금도 머슴살이를 했던 분들이 기억납니다. 아직 살아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밥을 정말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납니다. 거했던 아래채도 허물어졌습니다. 흥미롭게도 녹슨 이앙기가 아래채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무너진 집과 녹슨 이앙기가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무너진 집과 녹슨 이앙기가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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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화려했던 집은 허물어졌습니다. 사람 살이가 이렇습니다. 부자라는 이유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자 먼 훗날 가장 가난한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배웠다며 학벌이 부족한 자를 업신여기는 자 먼 훗날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음을 첫째 큰아버지 집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때 큰아버지는 떵떵거렸고, 머슴들을 참 무리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큰아버지도 갔습니다. 집도 허물어졌습니다.

논이 넓었기 때문에 소도 많았습니다. 기억하기에는 외양간이 두 세 개쯤 있었던 갔습니다. 옛날이 소가 네다섯 마리가 되었다면 부자였지요. 하지만 외양간에도 소가 없습니다. 여물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입니다.

외양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소가 이 외양간에 살았을까요.
 외양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소가 이 외양간에 살았을까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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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에 자리한 여물통입니다. 수많은 소들이 이 여물통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외양간에 자리한 여물통입니다. 수많은 소들이 이 여물통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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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통을 뒤로하고 나서는 데 돌담이 보였습니다. 돌담은 참 높았습니다. 한 번도 돌담을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첫째와 둘째 큰아버지 집을 가르는 경계도 돌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없으니 돌담도 허물어졌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돌담이 옛날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담길 뛰어놀던 동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허물어진 돌담. 점점 고향이 무너져가는 느낌입니다.
 허물어진 돌담. 점점 고향이 무너져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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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얼마 있지 않으면 남은 돌담도 다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돌담. 얼마 있지 않으면 남은 돌담도 다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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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뛰어다녔던 돌담 골목길도 풀만 무성할 뿐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아직도 뭇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지만. 고향 돌담길은 이제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돌담길입니다. 돌담이 아직 남아 있으니 옛 추억을 떠올려보지만, 왠지 마음만 휑할 뿐 정겨움이 없습니다. 그때 함께 뛰어다녔던 동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생각하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도 있습니다. 그나마 위안은 아직 셋째 큰아버지 집 우물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큰어머니 동생분이 거처하기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역시 사람이 살아야 합니다.

셋째 큰아버지 우물입니다. 사람이 살기에 아직 살아있습니다
 셋째 큰아버지 우물입니다. 사람이 살기에 아직 살아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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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큰아버지 집 우물과 두레박
 셋째 큰아버지 집 우물과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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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도 집도 살고, 집이 살아야 사람도 삽니다. 허물면 생명이 살 수 없습니다. 두레박이 우물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이 아니라 두레박으로 펀 물은 참 시원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도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 한 바가지만 있으면 더위는 저만치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두레박과 우물이 살아 있어도 등목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시간이 앞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뒤로 갈 수 있다면 40년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문명은 사람을 편안하게는 할 수 있어도, 사람냄새는 선물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불편해도 사람 냄새 나는 나날이었습니다.


태그:#고향, #큰집, #돌담, #두레박,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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