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버스라 했다 아이가. 전화 좀 하지 마라. 창피하다.""니 자꾸 그라지 말고 사투리 교정 학원 가바라매. 금방 고친다 카든데."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한 마디로 사투리가 심하다. 그래서 일까. 서울에서는 고향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떨기가 두렵다. 택시를 탈 때는 기사에게 "홍대 입구요"라고 짤막하게 행선지만 말한다. 어쩌다 무의식중에 길가에서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게 되면 일제히 쏠리는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등장인물의 말씨에서부터 인물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변호사나 교수 같은 전문직 종사자는 서울말을 쓰지만, 깡패나 동네 건달은 꼭 지방 사투리를 구사한다. 사투리를 쓰면 그 이미지가 선입견으로 작용할 것 같아 찜찜했다.
그 선입견에서 벗어나고자 사투리 교정 학원을 찾았다. 서초동에 위치한 7, 8곳의 사투리 교정학원은 번지수가 비슷했다. 그만큼 가까웠다. 스피치 학원 대부분은 커리큘럼 안에 사투리 교정반을 운영중이다.
"사투리가 심해서 4개월은 걸리겠네요"
처음 방문한 A 학원은 이미 수강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강의실 안에서 "합!", "흐업!" 등 괴성이 들렸다. 발성 수업을 하는 듯했다. "사투리 교정 상담받으러 왔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자 A 학원 강사는 밝은 미소로 응대했다.
"교정하는데 오래 걸릴까요?""'오↗래 걸릴까요?↘'가 아니라 '오래→걸릴까요?↗'가 맞는 표현이에요."시작부터 진땀을 뺐다. A 스피치 학원 강사는 "혀와 입술 그리고 볼의 움직임이 둔하다"며 " 특히 목구멍이 좁아서 표준어 발음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말했다. 강사는 고개를 올려 본인의 목구멍을 보여줬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혀로 꽃을 만들어 보라고 하거나, 혀를 반으로 접어보라는 등 여러 주문이 쏟아졌다. 초면인 사람 앞에서 입안을 다 보여주려니 쑥스러웠다. 반면에 A 학원 강사는 아무렇지 않게 입 안을 보여줬다. 혀로 꽃을 만드는 건 기본이고, 자유자재로 혀를 움직였다.
A 강사는 "그쪽은 사투리가 심해서 4개월은 걸릴 것 같다"며 "그렇다고 최악은 아니고 중하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학원에서는 상중하로 사투리 교정 대상을 지정했다. 상은 2개월 만에 고치는 사람, 중은 4개월, 하는 6개월까지도 교정해야 한다.
A 학원 강사는 "사투리 교정 학원은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이라며 "경상도 사투리가 억양, 발음, 단어에서 교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반 스피치 강의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사투리 교정은 이론적이고 반복적이라 사람들이 어려워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몇 블록 지나 이번에는 B 학원을 찾았다. 20여 분의 상담 시간이 지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한 남자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사투리 교정 됩니↗꺼?↘"라고 물었다.
곁에서 상담 내용을 들으니 그는 30년 넘게 부산에서 살던 토박이였다. 이직하는 바람에 서울에 온 케이스로 "아침 회의 시간마다 사람들이 웃어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B학원 강사의 말에 따르면 "사투리 교정 학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일상생활보다는 직장 혹은 취업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B 학원 강사의 친절도는 급속도로 올라갔다. "1회 무료 시강을 해주겠다"며 우리 둘을 강의실로 보냈다.
"자, 그럼 이제 '네. 그렇습니까?↗'라고 말해보세요.""낯간지러워서 못 하겠어요."B강사는 "뭐가 낯간지럽냐"며 그를 타박했지만 옆에 있던 난 이해가 갔다. 무뚝뚝하고 감정 기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상도 말투의 사람에게 나긋나긋한 서울말은 생소하다. 말 그대로 낯간지러울 수밖에 없다.
B강사는 "경상도 사투리는 '내가↗', '그래↗서', '근↗데↘'처럼 앞부분에 강세가 들어간다"며 "대구와 경북, 상주 사투리는 마시멜로가 늘어나는 것처럼 '그래서어~'로 발음 난다"는 등 한참 동안 사투리의 특성을 설명한 뒤 강의를 마쳤다.
사투리, 500만원이나 주고 고쳐야 할까?
사투리 교정 학원은 커리큘럼이 제각각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대부분 강의는 소수 정예로 이뤄졌다. 3~5명이 일반적이다. A학원은 3명까지 제한을 두고 있다. 단체 수업은 1주일에 1시간, 총 8주간 이뤄진다. 가격은 30만 원. 한 수업 당 약 4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다. C학원은 "한 회 2시간 당 38만원으로 10회 수업을 듣고 120만원의 특별 회원 가입비를 내면 평생 단체 수업을 무료로 듣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계산해보니 500만원이었다.
특히 단체 수업과 개인 수업이 가격 차는 엄청났다. B학원 강사는 단체 수업보다는 개인 수업을 권했다. 그는 "조금만 고치면 금방 고쳐질 말씨"라며 "일대일 레슨비용이 기본 5회당 100만 원인데 들으면 금방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원도 찾아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C학원 강사는 "단체 수업은 완전히 고쳐지기 어려워서 들었던 분들이 또 듣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 수업이 비싸지만 확실하게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투리 교정 학원을 가보니 '이렇게나 많은 금액을 주고서라도 고쳐야 할까'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흥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나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배우들의 맛깔나는 사투리로 큰 인기를 얻었다.
사투리가 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개성 있는 말투로 인식된다면 오히려 사랑받을 수 있는 말씨가 아닐까. 언젠가 사투리 교정 학원이 아닌 사투리 배우는 학원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