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설 연휴기간에 살인·방화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부모 집을 찾은 30대 형제가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고, 40대 남성이 윗집에 방화하기도 했다.

이 사건들의 발생 이유는 '층간소음'으로 알려졌다. 특히 윗집에 방화를 일으킨 40대 남성은 11년 동안 층간소음에 시달렸고, 최근에도 층간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자다가 사건 당일에는 환청이 들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층간소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층간소음 조정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전 국민의 65%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어 층간소음에 노출된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층간소음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은 전 국민의 65%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은 전 국민의 65%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광명시의 A 아파트에 살고 있는 최아무개씨(29)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층간소음의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다.

"정신과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최씨와 그의 가족은 3년 째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소음의 주인공은 바로 위층 아이들. 두 명의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쿵쿵' 소리를 낸다. 몇 번을 참다가 결국 인터폰을 통해 위층에 연락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들린다"며 "조심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게 거기까지 들려요?"

최씨는 위층의 답변에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천장 등이 떨어질 것 같아요"라며 되받아쳤다. 그러나 위층은 "시공사에 이야기 하라"며 "나도 이런 전화 받으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대답했다.

결국 최씨는 위층 집주인과의 대화에서 어떤 진전도,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거의 없는 최씨의 가족들만 더 힘들어졌다. 경비원으로 2교대 근무하는 아버지는 자야 할 시간에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취업준비생인 동생도 층간소음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최씨 또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회사 출근이 기다려지는 것. 그는 "집에 있으면 쉬지를 못하니까 빨리 출근하고 싶다"며 "소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 정신과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층간소음으로 접수된 민원, 지난해에만 7000여 건

층간소음 피해자들이 만든 카페에 있는 게시글
 층간소음 피해자들이 만든 카페에 있는 게시글
ⓒ 카페 캡쳐

관련사진보기


층간소음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최씨뿐만이 아니다. 환경부가 층간소음 분쟁 조정을 위해 지난해 개소한 '이웃사이센터'를 보면 층간소음으로 인한 현장진단 신청이 지난 해 3-9월 6개월 동안 총 1070건 접수됐다.

이 중 '아이들의 뛰거나 걷는 소리'가 753건으로 층간소음 원인 전체의 70.4%를 차지했다. 그 밖의 원인으로는 망치질(2.9%), TV, 청소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사용(2.4%), 가구를 끌거나 찍는 행위(2.4%)등이 뒤를 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도 생겼다. '층소모(층간소음 피해자의 모임)'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11년 여러 포털사이트에 카페가 각각 개설됐으며, 적게는 500여 명부터 많게는 7900명의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 카페에서는 층간소음 피해사례나 대처법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회원들이 함께 층간소음 소송을 준비하기도 한다.

카페 회원 중 닉네임 제****는 "소음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 생길 것 같아 주말에는 집에 있지 않고 집을 비운다"며 "무기력하고 해결방법도 없어 차라리 내가 죽고 싶다"고 피해사례를 게시했다.

또 얼마 전 층간소음으로 발생했던 살인 사건에 대한 의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닉네임 동****는 "그동안 소음으로 얼마나 고통 받았을까, 수백 번 살인충동을 받은 저로서는 그 심정이 백 번 이해된다"며 "위층 소음으로 고통 받는 아래층 분들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빈번함에 따라 정부도 지난 2005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었다. 주택법 개정을 통해 주택건설시 시공사들이 '성능기준'과 '표준바닥기준'을 지키는 것을 의무화했다. 성능기준은 경량충격음 58dB 이하, 중량충격음 50dB 이하로 조정했으며 표준바닥기준은 벽식 구조 210mm, 무량판 구조(보 없이 기둥과 슬래브로 구성) 180mm, 기둥식 구조 150mm의 두께가 되도록 설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법 개정도 층간소음의 피해사례 감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게 이쪽 전문가의 생각이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관계자는 "주택법 조항들이 강제성은 없고 권고사항 정도라 법 조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시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시공은 제대로 했지만 실제 사는 입주민들이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지키지 않아서 층간소음이 계속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층간소음 조정센터인 '이웃사이센터'가 개소되기 전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접수된 민원은 2010년 341건, 2011년 362건이었지만 개소 이후 2012년에는 '이웃사이센터'를 통해 총 7021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갈등으로 대두되면서 최근 국토해양부와 환경부가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던 '주거생활소음 기준 신설'에 관한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 개정안에는 '입주자가 주거생활에서 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무량식구조 아파트의 바닥두께를 종전 180㎜에서 210㎜로 강화하고, 바닥두께 기준과 경량(55㏈)·중량(50㏈) 충격음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주택건설기준 개정안으로 층간소음 분쟁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관계자는 "바닥두께를 증가시키는 것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다"라며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공사 책임규정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해결 위해 주민들이 나섰다
지난해 5월 구성된 '녹원맨션' 층간소음조정위원회
주택법 개정안도 층간소음 갈등에 근본적인 해결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층간소음 갈등을 '조정'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 지산동에 있는 녹원맨션이다. 녹원맨션은 전국 최초로 지난해 5월부터 주민들로 구성된 '층간소음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층간소음조정위원회'는 녹원맨션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위원회이다. 서종상(55) 위원장에 따르면, "층간소음 문제는 모든 아파트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외부에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꼈다"며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 해결 방법을 찾다가 마련한 제도가 바로 조정위원회"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가장 먼저 아파트 입주민을 대상으로 층간소음에 대한 소음 발생 요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소음 발생 원인의 70% 이상이었다. 그래서 위원회에서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아이들 쿵쾅거림 조심' 등의 안내문을 붙여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위원회는 주민들 간에 층간소음 갈등이 발생하면 구체적 절차를 통해 조정을 한다. 위원장은 "벌금을 매기거나 징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로 갈등을 조정한다"며 "몇 차례의 조정 기간을 거쳐 원만한 해결을 이루도록 하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최후로 대구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다"고 말했다.

녹원맨션은 조정위원회의 구체적 절차를 통해 층간소음 갈등을 조정한 결과 한 달에 1-2건 정도 있던 민원이 거의 사라졌다. 서종상 위원장은 "현재는 층간소음 민원이 거의 없다"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입니다.



태그:#층간소음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