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8일 오전 11시 45분]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14일부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노 전 의원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검사 7명의 실명이 담긴 이른바 'X파일'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선고 논리는 "떡값 검사들의 이름을 국회 회의에서 거명하거나 보도자료를 통하여 기자들에게 보내는 것은 면책특권이 인정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들이 알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국민적인 관심사였던 삼성 X파일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논리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것이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 명백한데 처벌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기자들에게 보내는 보도자료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려두어 국민들 누구나 보도록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뽑힌 국민의 대표이다. 보도자료를 통하여 기자에게 알려도 되는 것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에게 알렸다고 불법이라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도 없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정보사회의 특성에도 맞지 않다.
언론들도 대체로 노 전 의원에 대한 유죄 선고가 부당하다고 보도했다. 또 새누리당 국회의원 18명을 포함한 159명의 의원들이 대법원 선고를 벌금형은 없고 징역형만 있는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까지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떡값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검사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를 폭로한 이상호 MBC기자에 이어 노 전 의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검사들은 무혐의 처분하고 노 전 의원과 이상호 기자는 기소한 이 사건을 지휘한 장본인이 13일 박근혜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당시 황교안 차장검사이다.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되고 국민 여론까지 있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결국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진보 정당에 대한 사법부와 정권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노회찬 의원직 상실, 다음 타깃은 김미희 의원?노 의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에 이어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인데 김미희 의원 사건 역시 진보정당에 대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김미희 의원은 4·11 총선 당시 공시지가 990만 원 상당의 목포시 소재 토지 지분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250만 원을 선고 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미희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후보 등록 당일 갑자기 후보가 바뀌는 과정에서 실수로 누락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재판부는 이것이 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유죄를 선고했다.
990만 원의 재산 누락과 5년간 약 6만 원 정도의 재산세 신고 누락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웃기지만 사실 이는 선거 과정에서 실수로 누락되었음을 토론회 등을 통하여 이미 선거구민들에게 밝힌 상태였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설자리가 없어 보인다.
노회찬, 김미희 의원 외에도 진보 정당 현역 의원 중 당락 여부를 두고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이 있다. 4·11 총선에서 당선된 13명의 진보정당(당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중 현재 사법부에 의해서 의원직 유지 여부가 결정되는 의원은 9명에 이른다.
김선동 의원(전남 순천곡성)은 한미FTA 비준안 국회처리에 반대하여 최루가루를 살포하여 총포·도검·화학류 단속법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4년이 구형된 상황이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의 경우 노회찬 의원에게 적용되었던 통신비밀호보에관한법률과 마찬가지로 벌금형이 없어 유죄가 인정되면 바로 의원직이 박탈된다. 또 민노당 회계책임자로 재직할 때 미신고계좌로 144억 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위반)로도 기소되었다.
이 혐의는 오병윤 의원(광주 서구)도 적용되어 있는데, 오 의원은 이 혐의 외에도 2010년 당원 명부가 들어있는 서버를 압수하려는 검찰로부터 이를 은닉했다는 혐의로도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 검찰은 지난해 4·11 총선 직후 비례대표 경선 과정을 확인한다면서 압수수색을 시도했는데, 박 의원은 이를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그 해 12월 불구속 기소되었다.
박 의원은 압수수색 중인 검찰 수사관을 밀쳐 2주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검찰의 주장대로 공무집행 중인 검찰을 다치게 한 것이 인정되어 특수공무방해죄가 된다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형법 제144조(특수공무방해) 제2항은 최소 징역 3년(벌금형 없음)을 정하고 있어 유죄가 인정되면 박 의원도 곧바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반년 동안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며 장기간 검찰 수사를 받았던 이석기 의원도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언론에 의해 연일 보도되었던 부정경선과 관련된 불법선거운동 혐의가 아니라 이른바 정치자금법 위반과 횡령 혐의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선거 보전비용 4억여 원을 부풀려 받은 혐의와 회사 대표로 있던 시절 법인자금 2억여 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거의 6개월을 부정선거라고 떠들었던 것에 비하면 당시 정치인도 아닌 회사 대표에게 정치자금법을 적용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 횡령을 별건 수사로 끼워넣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든 이유이다.
잔류-탈당 가리지 않고 진보의원 줄줄이 재판현재 당선된 13명의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 중 재판을 받지 않고 있는 의원은 4명인데, 심상정(경기 고양), 강동원(전북 남원), 이상규(서울 관악)와 김재연 의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석기 의원과 함께 부정경선 당사자로 줄기차게 보도되었던 김재연 의원은 아무런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김 의원은 부정경선 당사자로 국민에게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검찰 기소에 의한 재판은 아니지만,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특수공무방해죄로 형사재판을 받는 것과는 별도로 서기호, 정진후, 김제남 의원과 함께 이른바 '셀프 제명'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진보정의당으로 옮긴 사건과 관련하여 의원직 유지 여부를 두고 재판을 받고 있다.
현행법은 비례대표의 경우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데 의원직 유지를 위하여 이들 4명의 의원들이 탈당이 아닌 스스로 제명이라는 편법으로 당적을 옮긴 것에 대해서 지난해 10월 통합진보당이 탈당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 박원석, 정진후, 서기호, 김제남 의원 등 4명 모두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14일 노 의원의 의원직 박탈에 이어 검찰의 다음 타깃은 김미희 의원으로 보인다. 사실 노 전 의원의 유죄선고에 대한 국민 여론은 결코 사법부에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법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법부와 정권 분위기로는 김미희 의원도 우호적인 판결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어질 진보 정당 소속의 김선동, 박원석, 오병윤, 이석기 의원 등의 형사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 소속 13명 중 이미 노회찬 의원 1명의 의원직이 박탈되었고, 재판 중인 8명의 의원 중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체 299석 중 13석에 불과한 진보정당에 대해서 검찰권을 앞세운 정권 차원의 공안 탄압이라는 비판이 기우일지는 재판 결과가 말해 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