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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 할 말이 많아. 자소서 항목이 지원 동기, 입사를 위해 준비한 것, 포부 및 계획인 거야. 결국 이게 다 똑같은 거잖아. 근데 600~800자를 쓰라는 거야. 인사부에 전화해서 욕을 한 바가지 하려다가 참았어. 또 학점 입력하는 기업들 중에 학년별 평점 입력하라는 곳 있잖아. XX, 의도를 모르겠어. 계절 학기는 어떻게 해야 돼? (웃음) 왜 그러는 거야. 이해가 안돼. ○○상선, XX!" (취업학개론 9회 중)

"며칠 전에 그룹 ○○○ 면접을 봤는데, 컨벤션업이었어. 근데 처음에 컨벤션업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지원했냐고 하는 거야. '배우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 근데 거기서 배우려면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우래. XX 일을 하면서 배우지. 아니 그럼 왜 오라 그랬어? 또 나한테 피쇼가 뭐냐고 묻는 거야. 모른다고 그랬지. 근데 막 웃는 거야. 고개 숙이고 피식거리고 웃는 거 있잖아. '아니 이 XX들 뭐하는 XX들이지?'" (취업학개론 17회 중)

취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방송에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팟캐스트 '취업학개론'의 주인공 철수(가명, 29)와 존슨(가명, 29)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교 시절 밴드 동아리까지 함께 했다. 두 사람 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른바 '돌취', 돌아온 취업준비생들이다.

두 사람이 술 마시면서 나누는 얘기들을 '방송하면 재밌겠다' 싶어 지난 해 9월부터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주제는 그때 당시 두 사람의 골치를 가장 썩였던 '취업'으로 정했다.

자신들이 취업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들로 방송을 꾸렸다. 한주 동안 지원했던 회사를 말하고 면접 후기 등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입사 지원하는 회사 이름도 과감하게 공개한다. 녹음기기는 따로 구비하지 않았다. 아이폰이 녹음기를 대신했다. 아이폰으로 녹음하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취준생에 의한, 취준생을 위한 취업 전문방송인 셈이다.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은 시한부 방송이라는 게 컨셉트다. 두 사람이 취업에 성공하면 그와 동시에 방송은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이다. 존슨은 지난해 하반기 취업에 성공했다. 철수는 아직 취업준비생이다. 때문에 철수와 존슨의 취업 다이어리 코너는 철수의 취업 다이어리 코너로 바꼈다. 이제 철수만 취업에 성공하면 그들의 '취업 전문' 방송은 막을 내린다. '시한부' 팟캐스트는 현재까지(19일) 17회분 방송했다.

지난 15일 저녁, 마포구 신수동 존슨의 밴드연습실에서 '취업학개론'의 주인공 철수와 존슨을 만났다. 그들이 방송할 때마다 마시는 캔맥주도 함께였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대화이다.

"술 먹다가 시작한 방송, 40대에도 괜찮은 호응 받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존슨의 밴드연습실. 지금은 '취업학개론' 녹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존슨의 밴드연습실. 지금은 '취업학개론' 녹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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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철수 : 자취방에서 같이 술 마시다가 '아 이런 얘기를 남들이 들으면 재밌겠다, 방송을 해보자'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존슨 : 처음에는 주제 없이 방송해 봤거든요. 근데 주제 없이 주절거리다보니까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주제를 한번 정해서 해보자' 했어요. 그때 당시에 저희를 가장 골치 썩이고 있던 게 '취업'이었기 때문에 '취업'으로 주제를 정했죠.

- 팟캐스트 이름이 '취업학개론'이다. 취업에 대해 가르쳐줄 것 같은 느낌인데.
철수 : 공유의 측면이죠. 어차피 다 똑같이 진흙탕에서 뒹구는 처지이기 때문에 누굴 가르치려는 의도는 없었고요. 근데 저희 방송이 누군가한테는 큰 정보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왜냐면 취준생들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책에 나오는 정보가 아니라,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물어봤는지, 어떤 과정을 치러야하는지 이런 거잖아요. 저희는 취업과정을 고스란히 공개하니까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 것 같아요.

존슨 : 취업 관련 상담하면, 형식적인 얘기들이 많잖아요. 죽은 정보 같은 느낌. 물론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기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정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오히려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하다보니까. 그런 게 또 나름의 재미가 되고, 정보도 되는 것 같아요.

- 방송 홍보는 어떻게 하나.
철수 : 학교 커뮤니티, 취업커뮤니티 등 주로 젊은 사람들이 찾는 사이트에 방송 홍보 소개글을 올려요. 

- 고정적인 청취자는 얼마나 되나.
철수 : 저희는 항상 100만 청취자와 함께 한다고 말하고 있죠. 근데 청취자 숫자 집계는 잘 안 되더라고요. 팟캐스트에서 다운받거나 구독하는 건 저희가 확인을 못해요. 근데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팟캐스트 제작·유통 플랫폼) 관리 페이지로 가면 지금까지 총 2500명 정도 다운을 받았더라고요. 또, 하루 평균 100명 정도는 사이트를 찾는 것 같고요.

- 기억에 남는 청취자가 있다면.
철수 : 제가 주로 홍보하는 사이트에서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너희 덕분에 도움 많이 됐다, 취업했다, 고맙다'와 같은 코멘트를 다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게 처음에는 오그라들었어요. 저희는 그냥 재밌자고 하는 방송이니까.

근데 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기처럼 취업 준비하는 애들도 또 있구나'하는 동질감이나 안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또, 자기가 가장 고민하는 취업주제로 재밌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는 거 보면서 용기를 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요. 페이스북으로 쪽지도 오곤 했어요. 주로 저희가 지원했던 회사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존슨 : 제가 인턴십도 해봤고, 다녔던 회사들도 있으니까 경험했던 회사들에 대해서 문의가 오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땐 제가 해줄 수 있는 만큼 답변해드리죠.

철수 : 최근에는 특별한 피드백도 있었죠. 40대이신 분이 저희에게 과자를 보내주셨어요. 또 방송 감상문이라고 A4용지 네 쪽을 꽉 채워서 보내주시기도 하셨어요. 내용에는 저희가 방송에서 말했던 회사에 관한 잘못된 정보들도 있었고요. 저희가 방송에 소개하면 좋을 정보들이 많았어요.

존슨 : 20대 초중반이나 듣겠거니 했는데 40대에서도 호응이 괜찮더라고요. 저희도 놀랐어요.

겨울은 취준생들의 보릿고개

 팟캐스트 '취업학개론'을 진행하는 두 사람. 철수와 존슨.
 팟캐스트 '취업학개론'을 진행하는 두 사람. 철수와 존슨.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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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을 하면서 변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철수 : 취업과정이 더 재밌어진 것 같아요. 사실은 취업 과정이 어디 털어놓기 힘든 문제잖아요. 혼자 끙끙 앓는 문제인데 이 방송을 계기로 존슨이랑 서로 털어놓기도 하고, 청취자랑 공유하다보니까 마음의 짐이 좀 덜어져서 쾌적해졌어요.

- 스트레스 해소의 차원인가.
철수 : 그렇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털어놓으면서 좋은 효과를 얻는 것 같아요

- 방송 주기는 어떻게 되나.
존슨 :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철수 : 공채기간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올렸어요. 요즘은 2주에 한 번 정도. 공채가 끝나고 취준생들의 보릿고개라고 하는 겨울이 찾아오니까 지원서 쓸 곳이 없어요. 방송할 거리가 없는 거죠.

- 기억에 남는 입사 지원 경험은?
존슨 : 모 기업 음악 PD를 지원한 적이 있는데 PD 오디션을 보더라고요. 그 회사가 오디션 프로가 대박 났었는데, 그걸 피디 뽑는데 똑같이 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장기자랑을 하는 거죠. 왜 시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시키더라고요. 아, 어떤 회사에서는 지원서에 자산을 쓰라고 하는데 진짜 어이없더라고요.
철수 : 동산·부동산 나눠서 쓰는 데도 있었어요.

- 그런 사항들은 다 썼나.
철수 : 욕하면서 대충 쓰는 거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기본적으로는 부모님에 대한 거나, 자기 자신과 관련 없는 것들을 물어보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취업 과정에서 느끼는 문제점이 많아요. 다 문제인 것 같아요.

- 방송을 들어보면, 회사 이름을 다 말하는데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나.
존슨 : 문제가 될 만큼의 영향력이 아직 없기 때문에... 아직은 없어요.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죠. '저희가 무지했습니다'라고 말해야겠네요.

- 취업이 되면 방송을 그만한다고 했는데, 존슨씨는 취업에 성공한 걸로 알고 있다.
존슨 : 철수가 아직 취업을 안했기 때문에..
철수 : 취업하면 그만해야죠.
존슨 : 아마 이름만 바꿔서 방송할 것 같은데(웃음).

- 취준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존슨 : 취직이 너무 어렵다보니까. '진짜 취직만 됐으면 소원이 없겠다, 대기업 입사가 꿈이다'라고 하는데 그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취업은 그냥 결승지점도 아니고 거쳐 가는 관문일 뿐이잖아요. 취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에 펼쳐질 자기 인생들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취업학개론'은 http://jobslaves.iblug.com에 접속하거나, 팟캐스트에서 '취업학개론'을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공식 페이스북 주소는 http://www.facebook.com/jobslaves85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취업학개론#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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