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후략-이태백이라는 이름을 들은 건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쟁반 같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오는 추석 때만 되면 들려오던 '달타령', 가수 김부자가 부르던 노랫말에서 이태백이라는 이름을 듣기 시작했다. 마냥 바라보기만 하던 달,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달에서 놀던 사람이라니 이태백이 궁금하기만 했다.
이태백이란 이름을 다시 들은 건 중학생 때, 술과 달을 무지무지 좋아하던 이태백이 경치 좋은 강가에서 술을 마시다 강물에 비친 달을 향해 펄쩍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에게 국어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에도 이태백이 등장했다.
아직은 술도 모르고 달도 모르던 중학생에게는 아주 황당하고 허망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술을 좋아하고, 달을 좋아하는 이태백이 너무너무 멋지고 부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던 것 같다.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은 천삼백여 년 전,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두보(杜甫;712~770)와 함께 시가문학사상의 하늘을 수놓은 해와 달, 일월(日月)과 같은 존재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시선이라는 말에 걸맞게 출생과 일생에 많은 전설을 갖고 있는 인물이 이태백이다. 태몽에 태백성이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왔다는 '장경입몽(長庚入夢)', 어려서 할머니가 쇠몽둥이를 갈아서 작은 바늘로 만드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열심히 공부했다는 '철저마침(鐵杵磨侵)', 자신의 붓끝에서 꽃이 피어나난 꿈을 꾼 후 훌륭한 문장가가 되었다는 '몽필생화(夢筆生花)', 채석강 물 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강으로 뛰어 들었다가 큰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는 '착월기경(捉月騎鯨)' 등이 이태백이의 일생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들이다.
<이태백 전집>에 실려 전해오고 있는 작품은 고부 8편, 고풍 59수, 악부 149수, 고근체시 779수, 산문 58편으로 1000여 작품이 훨씬 넘지만 실제로 이태백이 평생 동안에 지은 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이태백이 남긴 시 1000여 수 중에서 선정해 엮은 <이태백 명시문 선집>
이백 저, 황성재 역주,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펴낸 <이태백 명시문 선집>은 이태백이 남긴 작품 중 131편(158수)을 원문(한자)과 번역으로 싣고 꼼꼼하게 해설(주역)을 더했다.
靑天有月來幾時 푸른 하늘에 달은 있은 지 얼마나 되었나요?我今停盃一問之 내가 지금 술잔 멈추고 한 번 물어 보노라.人攀明月不可得 사람들은 달에 오르려 해도 오를 수가 없지만月行却與人相隨 달은 오히려 사람들을 따라 다니는구나. - 후략 -- <이태백 명시문 선집> 208쪽 把酒問月(술잔 들고 달에게 묻다) 중 -착월기경(捉月騎鯨), 채석강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강으로 뛰어 들었다가 큰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따르는 이태백이니 중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해주시던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태백이 술잔을 들고 달에게 읊던 시구, '人攀明月不可得, 사람들은 달에 오르려 해도 오를 수가 없지만'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1969년, 우주인 암스트롱과 올드린 그리고 콜린스가 탄 아폴로 11호로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사람들이 오를 수 없었던 달은 정복된 달이 되었다.
달은 정복했어도 이태백이 읊던 달은 아직도 휘영청 밝아하지만 정작 이태백이 읊은 건 눈에 보이는 달, 물리적인 달이 아니라 영원해 보이는 달에 견주어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인간들의 일생,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인생무상이 정복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으니 이태백이 읊던 시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태백이 달만 노래 한 것은 아니다. 사랑, 번뇌, 이별, 외로움, 우정, 별, 구름, 고향, 꽃……, 시선(詩仙)의 가슴으로 우려낼 수 있는 소재들은 예나지금이나 무궁무진한가 보다. 온갖 잡것들을 먹어도 흙을 토해내는 지렁이처럼 이태백이 쏟아내는 글들은 1300년 후에도 칭송받는 시선의 향연이다. 읽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하는 삼상향이다.
花間一壺酒 꽃 사이에서 한 동이 술로獨酌無相親 친한 사람 없이 홀로 마시네.擧杯邀明月 잔 들어 명월을 맞이하니對影成三人 그림자와 함께 세 사람이 되었구나.月旣不解飮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며影徒隨我新 그림자도 내 몸짓만 따를 뿐이니,暫伴月將影 잠시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서行樂須及春 봄날 행락을 추구해 보세.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면 달도 어슬렁거리고我舞影零亂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어지러이 서성이네.醒時同交歡 술이 깨면 함께 즐겨 노닐다가醉後各分散 취한 뒤에는 각기 흩어지노라.永結無情遊 영원히 무정의 교유 맺기를相期邈雲漢 머나먼 은하수와 서로 기약하네.-<이태백 명시문 선집> 253쪽 月下獨酌(달 아래서 홀로 술 마시다)-꽃이 만개하고 달빛은 휘영청 밝은 달밤, 그림자를 벗으로 하여 홀로마시는 술잔에 고독이 가득하다. 정월대보름을 코앞에 두고, 시선 이태백이 읊던 시에서 달빛을 추려 읽는다.
술기운에 취하는 건지, 달빛에 취하는 건지 아니면 향연으로 펼쳐진 이백의 낭만에 취하는 건지 정신이 몽글거린다. 아! 좋다. 한자를 많이 알지 못해서 새길 수 없었던 이태백이를 <이태백 명시문 선집>을 통해서 만나고, 이태백이 읊던 낭만을 마음에 새기게 되니 마음은 콩닥거리고 가슴은 넉넉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태백 명시문 선집>┃저자 이백┃역주자 황선재┃펴낸곳 도서출판 박이정┃2013.1.18┃값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