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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지상최대 목표가 이윤추구라는 정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새로운 가치가 우리 사회에 움트고 있다. 이윤추구가 아닌,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통합의 구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착한 기업,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서비스를 확충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다. 또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공헌과 윤리적 경영문화를 확산시킨다. 기업으로서의 서비스 생산과 판매, 영업활동은 동일하나 그 근본적인 목표가 다르니, 새로운 헤게모니를 가지고 새로운 체제 구축을 추구하는 우리의 새로운 대안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모범사례가 있어 찾았다. 경기도 안성에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에프앤비. 어린이음료와 솜사탕을 만드는 이 회사는 현재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올해 사회적기업 인증을 앞두고 있다.

(주)현대에프앤비의 이종규 대표이사 이종규 대표의 선의가 사회적기업 현대에프앤비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 (주)현대에프앤비의 이종규 대표이사 이종규 대표의 선의가 사회적기업 현대에프앤비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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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프앤비의 사회적기업으로의 출발은 좀 남다르다. 사회적기업이란 틀을 두고 운영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사회적기업의 형태를 갖춘 경우다. 이종규(44) 대표이사는 이전에 음료회사 직원이었다. 그러다 회사가 부도가 났고, 평소 유난히 성실하고 신뢰가 깊었던 그에게 주변인들은 사업을 해보라 권유를 했다. 이윽고 2008년 그는 이전 직장 거래처 사람들의 도움으로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직원 1명을 두고 시작한 일이었다. 창업 다음해 8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재고 음료를 기부한 일이 단초가 되어 쭉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기부는 점점 늘어나 연간 1000~2000만 원에 달했고, 또 생산직 노동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주로 취약계층, 노령층의 사람들을 채용하게 됐다.

사회적기업이란 타이들이 있기도 전에 저절로 그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2011년, 경기도가 현대에프앤비에 사회적기업 신청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선과 악의 시작은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현대에프앤비가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남에는 이종규 대표의 선의가 있었다. 이목구비 부리부리하고 듬직하며, 예의 깍듯한 사내의 선의가 없었다면 이 착한 기업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취약계층 우선채용, 이윤의 3분의 2 환원

사회적기업의 요건에는 취약계층 우선 채용이 있다. 전체 직원의 30%가 넘어야 하나 현재 현대에프앤비는 40~50%의 직원이 취약계층이다. 근속년수도 일반직원들보다 더 길다고 이 대표가 전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처음에 청각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직원을 뽑았을 때 기존의 직원들이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했다. 업무배치를 하면 가는 데마다 퇴짜를 맞았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여느 기업대표라면 '능률'이란 말에 목매고 채용을 다시 검토했으리라. 하지만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조금만 참아봐라. 그에게도 인생을 꽃 피울 시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서도 안 되면 그가 어디에 가서 일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이 대표의 마음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고 그 장애우 직원은 지금 다른 직원보다 일을 더 잘한다. 직원들도 이제 이 대표의 마음에 공감을 표했고, 회식자리에서 장애우 직원은 대표에게 눈물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회사가 제공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급여는 한 장애우를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했다.

사회적기업 현대에프엔비 직원들 처음 직원 2명에 일용직 6명이었던 회사는 이제 어엿한 정규직 19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 사회적기업 현대에프엔비 직원들 처음 직원 2명에 일용직 6명이었던 회사는 이제 어엿한 정규직 19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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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의 또 다른 요건은 기업 이윤의 3분의 2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관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현대에프앤비는 사회적기업 이전에도 그를 지켜왔다. 이윤의 3분의 2 이상 환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꼭 사회적기업이 아니더라고 기업 경영마인드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기업의 목적이 '존속'에 있다고 본다. "존속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윤도 내야 하지만 노사갈등도 해소하고 지역과 상생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저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경영은 당장은 잘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오래 존속할 수 없죠, 회사 가치를 높이고 직원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효율면에서도 더 좋습니다." 그의 단단한 믿음에 우리 모두의 희망 한 자락이 걸리는 기분이다. 

이 대표의 이러한 가치관은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평소에 남에게 주는 일의 기쁨을 너무나도 잘 아는 분이었다고 한다. "거리에 모르는 할머니가 지나가도 불러서 요구르트라도 하나 건네시곤 했어요. 어머니를 보면서 손해 보는 듯이, 좀 부족한 듯이 사는 게 오히려 나를 위한 거란 걸 깨달았죠." 이 대표는 자신이 조금 더 가지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자신이 조금 덜 가질 때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이다. 주는 일의 기쁨을 아는 기업인. 세상 모든 기업인이 이 대표와 같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그는 예비적사회적기업이 되면서 이전에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던 지역사회 환원이 좀 더 체계화되고 구체화되었다고 전한다. 제도적이고 안정적인 기부가 이뤄지고 취약계층 고용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를 하고 판매봉사를 하는 것으로 독거노인을 지원하고, 안성시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직원들이 월 1회 봉사를 나가기도 한다. 또 인근 중학교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결연을 맺어 매월 일정액을 지원한다. "봉사와 기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제가 주는 것보다 얻어오는 것이 몇 배 더 많아요."

지속가능한 경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기업

2012년 현대에프앤비는 20억 원의 매출을 기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전에 직원 2명에 일용직 6명이던 회사규모도 커져 19명 직원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장 증축도 했고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는 더 많은 고용을 이룰 전망이다. 정부는 사회적기업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이 대표는 사회적기업이 회사 이미지 제고에 좋은 기여를 한다고 전했다. 또 국가로부터 회사 운영에 필요한 회계, 인사, 노무 등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단다.

그러나 그런 도움과 별개로 이 대표의 '정직'이 진정한 사회적기업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이전에는 판매하기 위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2010년 내 아이가 하루 2~3개를 먹어도 괜찮은 음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래서 원가가 높고 마진이 낮더라도 건강하고 질 좋은 음료를 만들기 위해 몰두했고, 그런 그의 고집이 이 경쟁만이 전부인 시장에서도 뿌리를 내려, 매출 신장을 가져온 셈이다. 현재 뚜레주르, 이마트, 롯데월드, 세븐일레븐 등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에프앤비가 생산하는 어린이음료에는 무농약 과즙이 40% 이상 함유되어 있으며, 설탕도 유기농설탕만 사용한다. 다른 음료가 10% 수준의 과즙에 나머지는 설탕으로 맛을 내는 것에 비하면 무척 건강한 음료다. 누구든 제 아이에게 먹일 음료라면 그렇게 만들 것이었다.

하지만 영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생산하는 제품이면 하자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 그를 가로 막아섰던 것. 공고한 사회적 편견과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회적기업이라고 구매를 강요하거나 호의에 의존하려 들어선 안 된다고 여긴다. 영업은 동등하게 하고, 무엇보다 우선시 할 것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야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도 변화할 수 있다고 그가 말한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소비자들의 작은 관심과 주의가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는 판매망을 뚫을 수 있는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한여향씨는 올해 쉰일곱인 중국 교포다. 회사 다니기 어떠하냐고 물으니 "좋아요" 한다. 나이도 많고 약자인 자신을 고용해주고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늘 마음을 써준다고 했다. 그녀는 재밌게도 회사 분위기에 대해 "단결이 좋다"고 표현했다. 좋은 의도로 경영해나가는 기업이니, 또 가족적인 분위기와 높은 수준의 직원복지가 이뤄지는 기업이니 단결이 좋은 회사일 것이다. 언제까지 다닐 생각이냐고 물으니 그만두라고 하기 전까지는 쭉 다니고 싶다고 한다.

노동탄압을 주도하고, 탈세를 일삼는 대기업의 이야기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2011년 탈세 상위 100대 대기업의 탈세액은 2조 7000억 원에 달했다. 그런 기업에 비하면 현대에프앤비의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가?

이 대표는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빠다. 얘기하다보니 셋째가 다음 주에 출산예정이라고 한다. 또 인근 학교에서 '좋은 아버지들의 모임' 회장이란다. 그는 마찬가지로 착한 기업을 운영해 우리사회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억대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보다 현대에프엔비가 훨씬 앞서 나가는 선진기업이라고 말하겠다. 이제 막 움을 트는 우리 사회의 싱그러운 초목을 하나 보는 듯하다. 기어이 우리에게도 봄은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성신문 홈페이지에 2월 20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사회적 기업#어린이음료#협동조합#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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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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