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월 25일이 되면 18대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원회 토론회 자리에서 "안해도 되는 거면 공약하지 않았다"며 공약 이행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래서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과학정책 공약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의 과학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창의산업'이라 이름 지어진 과학관련 정책의 첫 번째 공약인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이미 확정되어 장관까지 내정되었다. 지난 정부에서 과학기술부를 없애 과학기술 전담부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그 대안으로 박근혜 당선인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공약들은 미래창조과학부에 비해 공론화 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과학기술인의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과 복지 향상, 공약이전 글(
석사 이상 임시직 연구원은 왜 늘어날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기술계 정부 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은 사회 전체 평균을 뛰어넘는 심각한 수준으로 과학기술인들의 연구환경은 참으로 열악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과학기술인들의 불안정한 연구환경에 대한 문제인식은 있지만 그 해결방안은 구체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제시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연구기관의 자율성 확보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관리제도를 개선한다고만 되어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2008년 다음 아고라에 양심선언을 한 김이태 연구원의 경우에서 보여지 듯,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찬성 논리만 강요될 뿐이었다.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원 및 연구기관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약집에는 비정규직 연구원 증가에 대한 문제 인식은 담겨져 있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해결방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은 없는 반면, 과학기술 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법률까지 제시되어 있다. 몇몇 연구자에 해당되는 유공자에 대한 예우 개선도 필요하지만 전체의 5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연구원의 일자리 확보가 보다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요즘 만연한 이공계 기피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이공계 연구자들의 안정된 일자리의 부재라고 생각된다. 박근혜 당선인 역시 이공계 출신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출연연에서부터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국가연구개발 투자 2017년 5%까지 확대, 공약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성장을 외치며 R&D예산을 매년 9%가 넘게 증가시켰지만 당장 눈에 띄는 성과만을 강조해 상대적으로 원천기술과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국가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2017년까지 GDP대비 5%로 올리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기초연구 지원 비중을 4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앞으로 세워질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존의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산학협력 업무 뿐 아니라, 신성장동력 발굴사업 그리고 정보통신기술(ICT)까지 아우르는 거대부처이다. 거대부처에서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초과학 부분은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연구개발 투자 확대에 대한 공약은 있지만 그에 따른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최근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4대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 후퇴 논란이 있었듯, 구체적인 재원마련 없이는 국가연구개발 투자 확대도 말에 그칠 뿐이다.
한편 최근 장관으로 내정된 김종훈은 벤처기업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이룬 인물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을 홀대하지 않을지 우려 된다. 또한 서남표 KAIST 총장과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과학정책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창의적 '국가연구개발' 혁신시스템 재정립, 공약지난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특징 중 하나는 '연구비 몰아주기'였다. 지난 정부에서 새로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IBS) 신설사업을 벌였는데, WCU사업에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총 8250억 원이 쓰였고, IBS사업에는 50개 연구단에 100억 원씩, 10년간 앞으로 총 5조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한 해의 과학기술분야 예산이 4조 원 정도임을 고려하면 이들은 매우 거대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메가톤급 연구비로 인해 그동안 불가능했던 연구들을 새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비와 더불어서 새로운 연구비를 신설한 것이 아니라, 한정된 예산으로 대규모 연구비를 책정하다 보니 기존의 1~2억 원 정도의 소규모 연구비는 점차 없어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소규모 연구과제에는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지방대와 중견대학의 연구진들이 대거 몰려 경쟁률이 1:10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지난 정부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정부에 이어 앞으로도 소수의 연구단에 연구비 몰아주기를 계속 한다면 공룡연구단을 제외한 소규모 연구단들은 고사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과학 인프라 확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과학 발전에 역행하는 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치며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는 작년 12월 16일에 열린 3차 대선 토론회에서 연구자들의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PBS 제도(프로젝트 중심 운영제도)에 대해서도 해결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공약집에서는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되어 있지 않았다.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높은 PBS 비율이 지적되고 있는 만큼 출연금 대비 PBS의 비율을 현재 50%에서 미국, 독일 등의 선진국과 같이 30%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는 앞으로 부족한 부분들은 개선하고 보완하여 이공계 출신의 첫 대통령으로서 과학강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