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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거슬러 올라가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말그대로 노동자 세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정당이다.

1987년부터 3년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 세력의 힘을 확인한 노동계는 1995년 민주노총으로 출범했다. 그 원동력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노동자였다. 민주노총의 힘은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이자 당시 각각 5만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 규모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 역시 대규모 사업장 힘에 기인한 바 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사업장이 있는 울산은 '진보정치 일번지'라 불리며 국회의원과 구청장, 지방의원을 대거 배출했다.

통합진보당이 시민들의 선택을 받아 울산을 '진보정치 일번지'로 각인시킨 하이라이트는 2010년 지방선거였다. 5개 구군 중 북구청장 1명(동구청장은 다음해 재선거 당선), 25명 중 시의원 7명, 60명 중 구의원 17명을 당선시켜 울산 전체 의석 수의 30%를 차지했다.

민주당을 침묵시키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맞서는 양당체제를 구축한 민주노동당은 당시 "2012년 총선에서 울산의 6개 지역구 중 3개,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울산광역시장을 당선시키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012년 총선에서 한 석도 차지 못한 통합진보당은 지방선거를 1년 4개월 가량 남겨 두고 더 큰 위기감에 싸여 있다. 이대로라면 참패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진보정치 일번지 울산은 정녕, 정치 지명에서 사라질 것인가?

낮은 곳으로 임하겠다는 통합진보당, 실상은?

2013년 1월 시무식을 가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이 초심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2013년 1월 시무식을 가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이 초심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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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통합진보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 무능력과 동지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집에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성찰해서 해결하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당내 부정경선 논란을 거치며 위기를 맞았지만 진보정치 일번지 울산은 그 여파가 미미한 것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뒤늦게 전직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등 전직 울산당원 두 명이 구속되는가 하면,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김진영 시의원 등이 탈당하면서 내부 분열이 일었다.

이런데도 통합진보당은 불만을 토로하는 이탈자들을 붙잡거나 혹은 포용하기 보다는 "그들이 주장한 이탈자의 수가 실제로 맞지 않다"며 언론에 항의하는 사후 약방문 대응을 보였다. 만나본 몇몇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울산은 탈당자가 몇 명 안 된다", "털 것은 털고 가야 한다"며 오히려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한 입장마저 내비쳤다.

2013년 연초 시무식을 가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은 당내 분위기를 다잡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노동자, 농민, 중소상인, 서민들의 삶에 함께하는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후 기염을 토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과연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을까?

지난 1월의 일이다. 대법판결에 따른 정규직화와 회사 측 신규채용 반대 등을 요구하며 철탑농성을 이어가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이들 노조의 조합원 두 명이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위원장 등 지도부가 회사 측의 신규채용안에 합의하려하자 당에서 이를 막아달라고 하소연한 것.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입장은, 정규직 노조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통합진보당 주요당원인데 당에서 신규채용 합의를 하지 말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통합진보당이 정규직 노조위원장을 설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19일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노조 문제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비정규직들이 서운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일은 통합진보당이 처한 상황을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4만여 명의 현대차 정규직노동자, 수천 명에 이르는 정규직노동자 당원. 진보정치 일번지에서 이들은 선거 때면 표밭이며 당을 운영하는 자금의 필수 요소다. 통합진보당이 현대차 정규직노조 지도부에 싫은 소리를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낮은 자세, 낮은 곳으로 임하겠다며 민심을 수습하던 당초 입장과는 달라 보인다.

신뢰를 잃고 있는 '무기력한 진보정치'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울산, 아산, 전주공장)가 2012년 10월 25일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 농성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 질의서를전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안철수 후보가 현장을 방문하자 비정규직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울산, 아산, 전주공장)가 2012년 10월 25일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 농성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 질의서를전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안철수 후보가 현장을 방문하자 비정규직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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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8대 대통령 선거를 2개월 가량 앞둔 10월 중순의 일이다. 당시 안철수 후보 측에서 요청이 왔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어려운 것 같다, 철탑농성장을 방문하려 하니 일정 등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비정규직노조 측에 연락해 10월 25일 철탑농성장 방문 일정을 조율토록 협조했다. 비정규직노조는 안철수 후보의 방문을 흔쾌히 반겼다.

미안한 말이지만, 비정규직들은 역설적이게도 수차례나 철탑농성장을 방문해 정규직화를 약속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보다, 철탑농성장에서 함께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함께한 통합진보당보다 생면부지 안철수 후보에게 더 기대를 거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그동안 통합진보당이 땀 흘리며, 때론 추위에 떨며 노동자들과 동거동락을 함께 했지만 막상 그들에게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승리한 후 울산에서는 한나라당 지방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봇물을 이뤘고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원전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또다시 원전을 유치한 일, 과거 공해도시의 주범으로 불렸던 고황유를 석유화학업체 가동원료로 사용하는 조례를 통과한 일 등이다.

또 울산에서는 공영주차장 부지가 용도변경된 후 아파트로 변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26억원의 로비자금, 도시의 허파로 불린 문수산 자락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44억 원의 공공재산이 사라진 사건 등이 모두 미궁으로 빠졌다. 하지만 막상 제1 야당이라는 통합진보당이 이들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통합진보당의 위기는 여기에서 나온다. 구호는 거창하고 1인 시위나 집회는 열리지만, 의석 30%를 선택해줬던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다 노동자대투쟁이 발생한 지 25년이 지나면서 현실화 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들의 보수화, 정규직노조와의 관계에 대처하는 통합진보당의 대처에 서운함마저 느끼고 있는 일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입장은 통합진보당이 흘려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함께 고락을 같이해온 동지들이 왜 당을 박차고 나가는지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진짜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상대적 배려와 1인 시위나 집회보다 더 성공력 있는 정치적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동지들에게 신뢰받고 잃어버린 시민 재산 수십 억원을 되찾아 오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만 진보정치 일번지라는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오는 2014년 지방선거와 이어지는 총선에서 또다시 지난 탈당 사태의 한 이유가 된 '여기는 우리, 저기는 너희식' 야권연대에 기댄다면, 진보정치 일번지는 새누리당의 거대한 공세 앞에 지리멸렬할 것이 분명하다.


태그:#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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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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