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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산에서 롯의 아내를 만나다

 유다 광야의 엔게디 오아시스
 유다 광야의 엔게디 오아시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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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날보다 한 시간쯤 빨리 일어났다. 오늘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리코(제리코)에서 이집트의 카이로까지 가야한다. 예리코에서 사해를 따라 내려가 홍해의 에일라트에 이른 다음 타바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타바 국경을 넘으면 바로 이집트 땅이 되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카이로, 기자로 갈 예정이다. 국경의 검문, 도로 사정 등에 따라 다르지만, 길에서 12시간 정도는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 게 좋다.

우리는 오전 6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갈 길이 정말 멀다. 7시에 드디어 예리코를 떠난다. 길은 사해 서쪽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다. 길은 넓지 않지만, 비교적 좋은 편이다. 버스는 시속 90㎞ 정도로 달린다. 그동안 날씨가 참 좋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흐리다. 사해가 있어 수증기가 생기고 그게 안개로 변한 것 같다. 그나마 오늘은 문화유산 답사나 특별한 이슈가 없어 다행이다.

 마사다
 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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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느덧 엔 게디(Ein Gedi)와 마사다(Masada)를 지나간다. 엔 게디는 유다 광야의 남동쪽, 사해에 연해 있는 오아시스다. 엔은 히브리어로 샘을 뜻하고, 게디는 어린 염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엔 게디는 염소 샘이라는 뜻을 가진 오아시스다. 이 지역에는 산에 사는 염소라고 볼 수 있는 누비안 아이벡스(Ibex) 등 희귀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1953년 설립된 엔 게디 키부츠가 유명하다. 엔게디 키부츠에는 240명의 구성원이 농업과 관광에 종사하고 있다.

엔게디에서 남쪽으로 15㎞쯤 떨어진 마사다는 이스라엘 민족 최후의 요새다. 기원후 73년 로마군에 맞서 마사다를 지키던 유대인 960명이 자결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마사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성지가 되었고,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01년 마사다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렸고, 그로인해 더 많은 관광객이 그곳을 찾고 있다.

 소돔산
 소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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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를 지나면 길은 소돔산(Mt. Sodom)으로 이어진다. 소돔산은 암염으로 이루어진 소금산이다. 소돔산은 사해보다 226m 높지만 해발로 따지면 여전히 -170m다. 기후의 영향으로 소금산의 일부가 갈라지거나 떨어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롯(Lot)의 아내'라고 이름 붙여진 소금 기둥이다. 롯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성서 '창세기 19장 1-29절 소돔이 망하다' 편에 나온다.

야훼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한다. 그때 도시를 멸하기 위해 소돔에 온 천사 둘을 롯이 극진히 대접한다. 그 때문에 야훼는 롯을 가상히 여겨, 롯의 가족들을 구원해주려고 한다.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천사들은 롯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 데도 머물지 마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

 롯의 아내 바위
 롯의 아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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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야훼가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어 도시와 땅, 동식물, 사람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 소금 기둥이 소돔산의 갈라진 기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잠시 이 소금 기둥 앞에 서서 소돔산과 사해를 살펴본다. 그렇게 살아남은 롯과 두 딸은 모압족과 암몬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엔 타마르 지역에서 사해는 끝나고 길은 90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8시 10분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하체바(Hatzeva) 휴게소에 들른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하체바는 키부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군인들 그리고 90번 도로를 오가는 차량 운전사들이나 들르는 정말 외딴 휴게소다. 그렇지만 이곳도 오아시스라서 그런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몇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땅 에일라트를 떠나며

 아카바만
 아카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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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남쪽부터 아카바(Aqava)만에 이르기까지를 우리는 아라바(Arava) 광야라 부른다.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은 아라바 광야를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국경 서쪽으로 나 있는 90번 도로를 타고 에일라트(Eilat)까지 갈 예정이다. 헤체바에서 에일라트까지는 150㎞ 정도로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차는 중간에 쉬지 않고 시속 100㎞ 정도로 달린다.

중간중간 종려나무 단지도 보이고, 조강목이라 불리는 시팀나무도 보이고, 황량한 사막도 보인다. 1시간 20분쯤 아라바 광야를 달리니 드디어 에일라트 외곽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국제공항도 있다. 그것은 에일라트가 아카바만을 거쳐 홍해로 나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에일라트는 항구도시와 관광도시로 인구가 4만6600명이다.

 에일라트 시내
 에일라트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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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라트가 관광도시가 된 것은 연중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바닷물 온도가 20-26℃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호텔, 리조트, 카지노, 수족관, 요트장, 스킨 스쿠버 다이빙 시설 등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탐조 여행, 낙타 여행, 산호 체험, 돌고래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관광을 위해 에일라트를 찾은 것이 아니고 국경 통과를 위해 찾은 것이어서 이들을 체험하고 구경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찾은 1월의 에일라트는 겨울이어서 그런지 기온이 21℃ 정도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전체적으로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유다 광야를 지나 사해에 도착하면서부터 더위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에일라트에 와서야 나는 오리털 잠바를 벗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옷차림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상대적으로 좀 더 더운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이스라엘 에일라트 검문소
 이스라엘 에일라트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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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우리는 5일 동안 이스라엘 안내를 맡았던 현지 가이드와 운전사와 작별을 한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 마음이 짠하다. 성서지리를 연구한 이철규 해설사는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배우고 확인할 수 있었다. 문명교류를 연구하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적절한 가이드였던 것 같다.  

타바 검문소 이집트 관리, 코미디언 뺨치는 너스레로 분위기 돋워

에일라트 검문소에서 받는 출국 수속은 비교적 일찍 끝난다. 우리가 아침 일찍 도착해서 출국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행정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지역을 나가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스라엘의 입국과 출국에는 별도의 비자 용지를 사용한다. 여권에 이스라엘 입출국 증거가 남으면 이슬람 국가의 입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단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만 그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타바 검문소 가는 길
 타바 검문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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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스라엘을 떠나 타바 검문소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먼저 짐과 여권에 대해 간단한 검사를 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이집트 관리가 완전 코미디언이다. 우리가 '코리언'이라고 하자, 대뜸 '사우스인지, 노스인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노스코리아'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소위 김정일 지도자에 대한 열광과 환호 그리고 숭배를 이야기하며, 주민들이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자 그제야 몸짓을 그치며,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를 브래드 피트로, 아내를 줄리아 로버츠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돋군다. 아니, 그럼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그 사이 줄리아 로버츠로 바뀌었나? 내가 농담 삼아 아내에게, "당신이 줄리아 로버츠는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브래드 피트는 아니잖아?" 하고 물어본다. 여하튼 이 작은 해프닝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다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타바 검문소
 타바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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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타바 검문소 입국장을 나오면서 우리는 이집트 행정의 경직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나온 현지 가이드를 통해 여권에 타바검문소 직인을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타바검문소 직인이 찍히면 앞으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슬람 국가에 입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레바논, 시리아, 이란이다. 가이드와 검문소 직원 사이에 한 30분 이상을 실랑이를 하고 직원이 왔다갔다했지만, 결국 별도의 입국 도장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 후 우리는 타바검문소를 나올 수 있었다. 밖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부터 온 버스와 제정희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 때문에 1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 같다. 그런데 이집트 현지인이 셋이나 된다. 운전기사가 2명, 현지 가이드 1명, 거기다 검문소 통과 가이드까지 현지인이 넷이나 되는 것이다. 운전기사가 둘인 것은 타바에서 카이로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두 명이 교대하며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카바만 해변에서 만난 상추쌈 정식

 오아시스 도시 타바 풍경
 오아시스 도시 타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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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자 바로 왼쪽으로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진다. 이곳 타바에서 시나이 반도를 횡단해 수에즈와 카이로로 넘어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다. 하나는 시나이 반도 중북부를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이다. 이 길에서는 미틀라(Mitla) 고개가 유명하다. 다른 하나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길이다. 해발 2285m의 시나이산(일명: 모세산) 옆으로 난 와티야(Watia) 고개를 넘는 중남부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좀 더 가까운 이 두 길로 가지 않고, 시나이 반도의 남쪽 해변도로를 타고 누에바, 다합, 샤름 알 셰이크, 라스 아부 루데를 거쳐 수에즈로 간다. 해변을 따라 시나이 반도를 일주하는 길이다. 그러니까 삼각형의 긴 두 변을 택해 수에즈로 가는 비경제적인 행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게 이집트 관광의 현실이다. 지난해 중북부를 관통하는 지름길에서 베두인에 의한 관광객 억류사건이 발생, 외국인에게 그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란다.

 누에바 가는 길
 누에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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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별수 없이 우리는 시나이반도 일주도로를 탄다. 길 주변으로 높은 산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해발 1041m의 가즐라니(Ghazlani)산이 있고, 그 주변으로 검붉은 색의 협곡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누에바(Nuweiba)까지 70㎞를 차로 1시간 정도 달린다. 그곳의 한인식당에 점심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걸 현지식으로 해결했으니, 한식을 한 번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에바는 베두인족들이 살던 오지였으나 1985년 페리 항구가 설립되면서 관광지로 조금씩 발전해 왔다. 페리는 누에바에서 요르단의 아카바까지 매일 운행된다. 우리는 항구에서 멀지않는 한국식당으로 갔다. 미리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는데,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이 다 맛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상추쌈이 가장 맛있다. 상추에 수분이 적고 씹는 맛이 좋다. 그리고 우리 상추보다 훨씬 단단하다. 밥을 먹으면서 더 주문한 것이 바로 상추다. 채소는 더운 지방 또는 사막의 것이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이집트 와서 알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회로 이스라엘 여행은 끝난다. 타바검문소를 넘으면서 이집트 땅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4회 연재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문명을 살펴보았다. 앞으로는 유럽문명의 원류인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명을 살펴볼 것이다. 사막에 꽃핀 고대 이집트문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려고 한다.



태그:#마사다, #소돔산, #에일라트, #타바, #아카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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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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