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남인도 타밀나드주 영성공동체 오로빌에서 만다라 작가로 잘 알려진 '김성애(55·인도 화가명 : 사라시자)'화가가 한국에서 목공예에 심취해 조각가로서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2월 인도를 떠나 이태리 로마주 '카시노'라는 지역 산 속에서 자연 꿀을 생산하며 목공예를 하고 있는 것. 김 화가는 지난해 12월 21일 입국해 현재 서울 종로 인사동 한 공방에서 목공예 조각에 혼혈을 쏟고 있다.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그를 지난 22일 저녁 인사동 한 공방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사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초창기에 조각가로 활동했다. 결혼해 가정생활과 자식을 키우느라 조각을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인도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신세계의 영적작품에 관심이 가 만나라를 그려왔다. 그동안 인도와 한국을 오가며 아홉 차례 그림 전시를 했다. 아들도 다 키워 대학을 졸업했으니, 이제야 엄마로서의 시간이 자유로울 것 같다. 조각을 그만 둔지 25년 만에 다시 조각을 시작하게 됐고, 하고 싶은 조각을 하게 돼 너무 기쁘다. 종로 인사동 한 공방에서 두 달째 조각을 배우고 있다."
그는 3년 후 목공예 조각전을 갖겠다고 말했다.
"조각을 시작한 지 너무 오래돼 칼질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과거 칼질 기억을 되살리려 열심히 하니 좋다. 조각칼을 만지니 원초의 힘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조각을 배우니 화가로서 붓에서 못 느꼈던 뭔가를 느낀다." 김 화가는 이날 지난 15년 동안 남인도에서 '만다라'를 그려 온 것은 조각으로 가기까지의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림은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각은 칼질·망치질·드릴 등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인도에서 그런 공간이 없었고, 조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작년 2월 남편의 고향 이태리로 건너간 것은 조각을 위해서이다. 이태리 로마 가시노 지역의 자연 숲속에서는 얼마든지 톱·대패·드릴 등의 기구를 쓰면서 소리를 내고 작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인도에서 붓을 잡고 만다라를 그려온 것은 조각을 하기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조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이태리 남편 부르노씨에게 고맙다고 했다.
"남편이 조각을 할 수 있는 장소 등을 마련해 줬다. 남편의 뒷받침 없이는 조각을 할 수 없지 않는가. 자연 꿀을 생산하면서 살고 있고, 그곳은 숲이나 나무가 워낙 많다. 조각을 위해 나무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남편의 숲이니까 올리브 나무든 참나무든 잘라 말려서 쓰면 재료비는 들지 않는다. 이제 진정 작업만 몰두하면 된다. 남편이 작업장도 지어주고 전기톱, 드릴 등 필요한 도구들도 사줬다." 두 달 동안 조각을 배운 서울 종로 인사동 공방에서 6개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자랑했다.
"그동안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평면에서의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조각을 해보니 평면에 더해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나는 기질이 조각가라는 것을 느꼈다. 조각을 하면 그림보다 입체감과 운동감이 더욱 느껴진다. 조각은 행위이다. 움직이면서 몸으로 부딪히는 활동량이 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세상에 태어난 느낌이 든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조각을 시작한 것이 '제3의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제1의 인생은 한국 생활이었고, 인도의 화가로서의 생활이 제2의 인생이었다. 제3의 인생은 조각가로서 변신한 이탈리아의 삶이다." 김 화가는 3이라는 숫자를 너무 좋아한다고도 했다.
"나는 항상 세 번을 해야 뭔가 된다. 어릴적 엄마가 나를 보고 3번을 해야 뭔가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운전면허도 3번 만에 땄고, 대학도 3수를 했다. 세 번 만에 통과하는 징크스가 있다. 참 이상하다. 이번에 조각을 다시 한 것도 제3의 인생이다."
지인들이 대부분이 그에게 말년의 삶이 성취될 것이라고 했다고도 했다. 그는 그래서인지 자신의 삶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말년의 내 인생의 완성이 조각에 달려 있다. 3년 후 로마 한국대사관에서 멋진 목공예(조각) 전시회를 할 것이다. 벌써 예약을 끝낸 상태이다." 그는 여태까지 '만다라' 화가로 유명세를 탔다. 조각도 마찬가지로 만다라와 연관된 주제로 대작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깊이 있게 죽는 그 날까지 내 인생의 조각을 완성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심혈을 쏟은 공방 목공예 작업이 완료된 시점인 3월 1일 이탈리아로 떠난다.
김 화가는 영혼이 깃든 만다라 화가(사라시자)로 인도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현재 이태리 로마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카시노 지역에서 남편 부르노 씨와 자연 벌꿀을 생산하며 살고 있다.
그는 이화여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인도로 건너가 샨티니께딴 타고르대학 비스바 바라티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수필집 <머나먼 인도>를 낸 바 있다. 만다라 화가인 김씨는 남인도 영성공동체 오로빌에서 '사라시자(Sarasija)'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물에 핀 연꽃'을 의미한다. 그는 인도와 한국을 오가면서 만다라를 주제로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