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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줄인 우리아이들은 금성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따라부르면서 자랐습니다
▲ 금성라디오. 사십 줄인 우리아이들은 금성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따라부르면서 자랐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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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가 부실해진 큰 형님을 생각해서 고깃집에 안 가고 바지락 칼국수를 먹습니다. 설을 보내고 나서 첫 점심 모임입니다. 예상대로 자랑거리들이 쏟아졌습니다. 손자들이 세배하는 모습이 어찌나 의젓하고도 대견한지 세뱃돈 나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고들 했습니다. 자식들이 준 봉투 이야기도 합니다. 나는 손자도 없고, 자식들에게서 봉투도 받지를 못해서 묵묵히 칼국수만 먹습니다(이런 때는 봉투를 줄 줄을 모르는 자식들이 이상한 건지 묵묵히 칼국수만을 먹는 내가 이상한 건 지를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자식 중에서도 사위가 쥐어주는 봉투가 제일 무겁다고 하자 모두 맞장구를 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건너편에 친구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사위가 봉투도 주고 선물도 줬다고."
"선물? 무슨 선물을 받았는데?"
"글쎄 생각도 안 했는데 사위가 용량이 큰 전자동세탁기를 들여놔 주었지 뭐야. 쓰던 건 너무 구형이고 용량도 작아서 차렵이불빨래도 못 했는데 말야"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합니다. 나도 부러웠습니다.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는 친구입니다. 사위가 지병을 앓는 장모에게 큰마음 먹고 효도했나 봅니다. 

"그동안 이불은 욕조에 세제 풀어서 담가놓고 발로 밟아서 빨고는 했는데, 어찌나 편한지를 몰라. 세탁, 헹구기, 탈수까지 세탁기가 알아서 하니까."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성능이 좋습니다
▲ 골드스타 이조식 세탁기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성능이 좋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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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는 한 번 장만하면 오랫동안 사용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집 세탁기는 딱 십 년 되었지' '우리도 그쯤 되었지 아마'하고 세탁기를 사던 시절에 이런저런 추억들을 쏟아내며 이야기꽃들을 피웠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경제관념이 높았던 큰 형님이 물었습니다.

"근데 쓰던 세탁기는 어쨌어? 아직 멀쩡하다며?"
"폐기했어요."
"그랬군."

큰 형님의 그 말이 내 귀에는 '이 사람아~' 하고 나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당연하지 않나요?' 하는 눈빛이더니 폐기한 세탁기를 장만하던 때만 해도 남편이 어깨에 힘을 주고 돈을 벌던 시절이었다면서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네 하고 웃습니다. 

나는 아직도 백조 한 쌍 그림이 있는 골드 스타 제품인 2조식 자동세탁기를 사용합니다. 팔 소매를 걷어부치고 지켜 서서 세탁이 다 된 세탁물을 탈수기에 옮겨 넣었다가 다시 꺼내어 헹구고 또 탈수기에 넣고, 그렇게 세 번은 반복해야 빨래가 깨끗해집니다. 그래도 나는 한 번도 번거롭거나 힘들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용량이 3,5kg밖에 안 되어 이불빨래는 못합니다.

지금 사십 줄에 들어선 아들애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84년에 장만을 했습니다.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지금까지 한 번도 고장이 난 적이 없습니다. 나 역시 이불빨래를 욕조에 세제를 풀어서 담가놓았다가 발로 밟아서 빨고는 하는데 언젠가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전자동세탁기를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기쁘면서도 한마디로 거절을 했습니다. 세탁기와 정이 들기도 하였고, 성능 좋고 멀쩡한 세탁기를 폐기할 생각을 하니까 뭉칫돈을 버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에 큰 형님이 내게 물었습니다(큰 형님은 이혼한 막내아들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자네 아직도 그 옛날 세탁기 쓰나?" 
"그럼요. 형님네는 바꾸셨어요?"

"글쎄 작년 가을에 시골 가서 한 열흘을 있다가 왔더니 그 사이에 며느리가 와서는 그걸 버리고 신제품을 들여놨지 뭐야."

그러자 건너편에 친구가 버럭 소리쳐 물었습니다.

"의논도 없이 버리고 들여놨어요?"
"그랬다고. 의논하지 않은 것도 속상하고 죽은 영감 사랑이 담긴 세탁기를 함부로 버린 것도 속상하고, 마음이 막 아프고..."
"싸가지가 없어도 한참 없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속이 없는 게 아니라 효성이 너무 지나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고 섭섭해도 큰형님이 며느리를 예쁘게 봐주시라고 합니다.

나는 팔순을 바라보는 큰 형님이 사용하던 그 오래된 세탁기를 알고 있습니다. 연년생인 두 아들이 대학에 다니게 되자 빨래가 많아졌는데 매일같이 손빨래하다 보니 손목이 약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시절만 해도 세탁기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월급쟁이가 두 아들을 대학 공부시키면서 세탁기를 장만하려면 한동안은 생활비를 이렇게 저렇게 아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만해서 오랜 세월 동안 덕 봤는데 폐기 차에 실려 떠나는 것도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골드스타 이조식 세탁기가 고장이 나면 폐기해야 합니다. 부품을 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폐기하면 나도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오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세탁기 말고 골드스타 제품이 또 있습니다. 금성 김치냉장고와 왕관 모양의 마크가 붙은 금성 라디오가 있는 것입니다. 금성 김치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수납장으로 사용하고, 금성 라디오는 예쁜 추억 때문에 모셔 두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금성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자랐습니다. 그 예쁜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명해서 모셔 둔 것입니다.     

이제는 고장이 나서 수납장으로 사용합니다
▲ 금성 김치냉장고 이제는 고장이 나서 수납장으로 사용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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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님이 문득 말했습니다.

"며느리가 얼마 전에 몇 년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팔았어. 그 승용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는데 가슴이 막 아프더라는 거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지. 너도 당해 봤구나. 아암 당해 봐야 내 맘을 알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
"어머, 복수하셨네!. 복수!"

건너편 친구가 큰형님을 위로하려고 일부러 '딱'하고 손뼉부터 치고는 큰소리로 말하자 모두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습니다. 그제야 큰형님도 제대로 위로를 받아 마음이 확 풀렸는지 함박꽃처럼 환한 얼굴로 크게 웃었습니다. 


태그:#골드스타 제품, #금성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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