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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합판으로 방과 방을 나눈 히말라야 롯지(숙소)는 개인의 사생활이 존중되지 않습니다. 속삭임, 코고는 소리, 화장실 가는 소리 등 작은 울림도 옆방에 아무런 여과 없이 전달됩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커플이 투숙한다면 정말 힘든(?) 밤이 되겠지요. 듣지 않으려고 하면 더 신경이 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니까요.

이번 트레킹에서는 1인 1실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의도입니다. 낯선 곳 혼자 있는 허술한 방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살아 온 날에 대한 반성과 살아 갈 날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이번 트레킹의 가장 큰 선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레킹의 조건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입니다. 즐거운 트레킹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이 세 가지 모두 원활하지 못합니다. 여섯 번째 네팔행인데도 달밧(네팔 고유 음식)을 비롯한 네팔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변비로 인해 화장실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면의 밤은 트레킹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도 집을 떠나 히말라야를 걷는 것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벽, 잠에서 깨어 마을을 돌아봅니다. 건너편 산 능선 위에 별처럼 떠 있는 불빛들이 보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히말라야 까마득한 능선에 걸려있는 다랑이논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모습은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트레킹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타인에 대한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삶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이 느낌은 선진국을 보다 후진국을 여행할 때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소박한 밥상

히말라야의 아침
▲ 소박한 밥상 히말라야의 아침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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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아침 식사는 소박합니다. 삶은 감자 몇 개와 계란 하나 그리고 네팔리들의 전통차인 "찌야" 한 잔이 전부입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하였기에 예정된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트레킹 기간 동안 6시에 일어나 7시에 아침을 하고 8시에 출발하는 '6-7-8'이라는 전형적인 트레킹 매뉴얼대로 하려 합니다. 일찍 시작하고 이른 시간에 트레킹을 끝내는 것이 다음날을 위해 좋은 일이니까요.

오르고 또 오르고

티르케둥가(1,577m)에 있는 현수교를 건너자 마의 3000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푼힐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곳입니다. 해발 600m를 급격히 올려야 하기에 경사와 계단이 장난이 아닙니다. 이 계단을 오르는데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계단이든 인생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고 한 발작 한 발작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는 것이 진리겠지요.

티르케퉁가를 지나며
▲ 현수교를 건너며 티르케퉁가를 지나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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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리(2120m)에서 걸어온 곳을 바라봅니다. 아침에 출발한 힐레와 티르케퉁가 마을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두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히말라야에서는 시간은 의미가 없나 봅니다. 오늘 우리는 깊은 계곡과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는 의미겠지요. 히말라야에서는 빠르고 느림이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상태에 맞추어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습니다.

교육은 인생의 빛

울레리에서 점심을 하고 초등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미리 준비한 학용품과 선물을 전달하고 학교를 둘러봅니다. 조명이 되지 않는 작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행위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도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육만이 아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울레리에서 방문한 초등학교 모습
▲ 학교 교정 울레리에서 방문한 초등학교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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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리의 초등학교
▲ 공부하는 아이들 울레리의 초등학교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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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랑탕 트레킹을 할 때, 샤브르벤시 보딩 스쿨에 있는 입간판이 생각납니다.

"Education is the light of life"

랄리구라스 숲

반탄티(2300m)를 지나니 울창한 밀림 지역이 시작됩니다. 이제 설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랄리구라스(네팔 국화) 우거진 울창한 삼림과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우리를 반겨 줍니다. 꽃은 아직 계절이 아닌지라 피지 않았지만 수십 년을 자란 랄리구라스 숲은 그 자체가 장관입니다.

반탄티를 지나서
▲ 랄리구라스 숲 반탄티를 지나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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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걷는 이 길은 트레커만 걷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 워낭소리 울리며 마방이 지나가는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가미시킵니다. 한두 명의 마부가 수십 마리의 말을 한치의 오차 없이 인도하는 모습은 전문가란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고파파니 가는 길에서 만난 마방 행렬
▲ 마방 행렬 고파파니 가는 길에서 만난 마방 행렬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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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전망대의 관문 '고라파니'

오늘 아침 힐레에서 출발하여 8시간 쯤 지나자 오늘의 목적지 고라파니(2853m)가 보입니다. 고라파니의 '고라'는 '말'을 의미하고 '파니'는 '물'을 의미합니다. 말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는 의미겠지요. 안나푸르나 자락에는 '따또파니', '깔로파니' 등 '파니'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습니다. 물이 인간 생활 터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 인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푼힐 전망대의 관문 고라파니 모습
▲ 고라파니 마을 푼힐 전망대의 관문 고라파니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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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파니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볼 때 마다 마을의 모습이 변해 있습니다. 푸른색의 양철 지붕으로 치장한 거대한 롯지가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롯지에는 Wifi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산중 도시의 모습입니다. 푼힐 전망대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고라파니에서 바라 본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모습입니다. 사람의 힘이 닿지 않은 곳에 자연은 1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저를 반겨 주고 있습니다.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과는 달리 히말라야는 늘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끓어 오르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답다'란 단어 밖에 할 수 없는 제 부족한 어휘에 화가 납니다.

고라파니에서 만난 안나푸르나
▲ 안나푸르나 고라파니에서 만난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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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파니에서 본 안나푸르나 모습
▲ 안나푸르나 고라파니에서 본 안나푸르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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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려하고 규모가 있는 롯지 대신 포터가 권하는 소박한 롯지에 숙박합니다. 세상의 이해관계가 히말라야라고 예외일 수 없기에 가급적 포터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롯지를 선택합니다. 롯지에는 25살 먹은 우리나라 젊은이 세 명이 먼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항공료를 제외하고 1인당 50만 원을 가지고 네팔과 인도 여행을 5주간 하겠다고 합니다. 젊음이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겠지요.


태그:#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고라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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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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