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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보조금을 부당하게 지급한 혐의로 시장직을 잃었던 신정훈 전 전남 나주시장. 그가 지난 1월 29일 3년 만에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됐다. 그는 사면복권이 되자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 기반인 나주 지역을 '다시 시작해보자'는 각오로 6일 동안 약 100km를 걸었다고 한다.

'나주 순례'를 마친 신 전 시장을 지난 25일 오후 나주에서 만났다. 광주전남 지역 정치권 안팎에서 신 전 시장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전남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도의원 재선·시장 재선에 성공한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따지며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했다가 구속됐다. 1987년 7월 출소한 그는 고향 나주로 내려와 배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에 뛰어든다. 그리고 1995년 농민회의 결정에 따라 '제도 정치권'에 진출한다. 그리고 화훼단지에 지원금을 교부한 것이 불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 시장직을 잃기까지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에게 유죄가 내려지자 법조계에서는 '단체장의 고유한 정책 결정권이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는 지난 3년을 "정치적 멀미가 심했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단지 일을 잘하려 했을 뿐인데"라는 억울한 생각이 요동쳐 한동안 대인 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풀뿌리 정치 돕는 데 적극적으로 임할 것"

6일 동안 나주지역을 약 100km 걸어서 순례한 신정훈 전 나주시장. 민주당 텃밭 전남에서 무소속으로 시장 재선에 성공한 괴력을 발휘했던 그가 돌아왔다.
 6일 동안 나주지역을 약 100km 걸어서 순례한 신정훈 전 나주시장. 민주당 텃밭 전남에서 무소속으로 시장 재선에 성공한 괴력을 발휘했던 그가 돌아왔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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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복권 받고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기대하기도 했고, 건의도 했지만 대선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당장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의 당선을 바랐다. 비유를 하자면 상대로부터 사면을 받는 그런 미묘한 느낌이었다."

신 전 시장은 자치분권운동 등을 통해 인연을 쌓아온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그를 도왔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결정 나자 그를 도왔다. 민주당 후보를 도운 무소속 출신의 전임 기초단체장. 정당에 합류할 의사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에둘러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위 '민주당식 정치'를 비판적으로 대해왔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한계도 알았지만 민주당의 역할도 느꼈다. 솔직한 심경을 얘기하자면 그동안 내가 무소속에 너무 안주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한 지역을 제대로 가꾸고 개혁하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결사체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하게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정당 가입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에 합류할지 아니면 창당이 예상되는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지는 아직 정하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두 곳 모두 새로운 정치 상에 대한 구체적 실체가 없고, 함께 하는 분들과 상의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3월 5일부터 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공부는 친구이자 '서울미문화원 사건' 공범인 김민석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정치인은 무대 위에서도 중요하지만 현장 떠나있을 때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더 잘 해야겠더라"며 제안했다고.

신 전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내가 선수로 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는 "나의 경험을 좋은 후배들과 나누고 또 함께 공부해서 잘 준비된 사람이 풀뿌리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념·주장 실현시킬 수 있는 책임감 크게 느껴진다"

그는 시장 재선에 성공하고나서 모두 35건의 고소·고발을 직·간접적으로 당했다. 이 35건의 고소·고발 사건은 대부분 검찰에 의해 각하당하거나 '혐의 없음' 처분 받았다. 말이 쉬어 35건의 고소·고발이지 거의 날마다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심지어 그는 거동이 불편한 시골 노인들을 위한 마을택시를 운영했다고, 농촌 무료급식하고 농기계 임대은행을 운영했다고 고소·고발당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보편적 복지 모범 사례'라고 상 받을 일들이 신 전 시장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이들에겐 고소·고발거리였던 것이다. 그는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는 참았다.

혹독한 정치시련기를 지나온 그에게 길에서 만난 이들은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그는 처음 시장에 당선됐을 때 "손들만 생각난다"고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어른들의 손, 이쁘고 고운 손이 아니라 트랙터에 잘려나간 손, 농사일에 못이 박힌 주민들의 손이 가장 크게 떠올랐다"고 했었다.

"걸으면서 많은 충고를 들었다. '뜻은 가상하지만 온유해져라' '실패와 시련을 잊지 마라, 소중한 경험을 잊어선 안된다'... 3년이나 지났는데 길을 가는 저 어르신이 나를 알아나 보실까 했는데 의외로 다 알아봐주시고 축하해주셨다. 내게 힘과 용기를 줬던 바로 그분들이 다시 내게 용기를 주셨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는 용기와 신념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신념과 주장을 현실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제 정치는 나와는 다른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까지 챙기고 살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길에서 얻은 화두를 그는 어떻게 실현시켜 갈까. 다시 길은 그 앞에 놓여 있다.


태그:#신정훈, #나주, #사면복권, #안철수 신당,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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