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어느 정신학 박사의 말이다. 혹자는 여행을 힘 있을 때 많이 다니라 말한다. 늙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을 다니란다. 그런데 여행이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라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이유는 십중팔구 경제적인 비용 때문일 것이리라. 그 놈의 돈이 웬수지만 돈이 주는 진정한 행복은 여행에서 느껴진단다.
23일 밤 김해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 동안 가족여행을 하기 위해 매달 10만원씩 적금을 부은지 만 5년이 넘었다. 같은 회사에서 돼지띠 동갑내기로 만난 친구들이 계모임을 한 지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모임 이름도 해(亥)바라기다. 22명이라는 많은 식구가 떠난 곳은 필리핀 세부다. 우리들의 3박 5일 가족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필리핀 세부는 천혜의 관광지다. 세부와 막탄섬을 연결하는 다리 너머로 세계적인 빈민촌 수상가옥이 즐비해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이면 뭐든지 거래가 된다는 곳. 특히 총기소유가 허가돼 청부살인도 이곳에선 종종 일어난다는 가이드의 말에 잠시 소름이 돋친다.
에머랄드 바다, 망고, 산 미구엘에 푹빠지다동남아는 어디를 가도 깨끗한 바다가 으뜸이다. 그런데 바다를 즐기려면 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따른다. 몇 년 전 다이빙 투어로 유명한 보라카이를 간 적이 있다. 마닐라에서 내려 경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또 차를 타고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세부는 다르다. 호텔에서 15분만 나가도 에메랄드 빛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다이빙과 스노클링 호핑투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동남아의 바다가 다 그렇지만 세부 바다가 좋은 이유는 바다 냄새를 맡아도 습하지 않고 짠 내, 비린내가 안 난다는 사실. 여기선 숨만 쉬어도 행복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막탄섬에 위치한 임페리얼 펠리스 호텔이다. 이 호텔 정말 멋지다. 특히 4일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뷔페다. 특히 매일 매일 넘치도록 먹은 망고는 먹어도 먹어도 입맛이 또 당긴다. 세계적으로 필리핀의 옐로 망고는 유명하다. 특히 세부망고는 나주배에 속할 정도로 가치가 높다. 한국에서 망고 한 개에 1만원쯤 하는 과일을 여기서는 500원이면 살 수 있다. 한국에서 8000원하는 세계 3대 맥주인 산 미구엘 (San Miguel) 맥주가 여기선 1000원이다. 내가 먹은 망고 값만 한국에서 사먹었다 해도 여행본전을 뽑고도 남는 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다이빙 투어가 시작되었다. 사실 다이브 마스터인 나에게는 이번 다이빙은 조금 시시한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이 다 함께 다이빙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깊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아내는 잊을 수 없는 추억까지 만들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족 전체가 체험 다이빙에 나섰다. 샵에서 교육을 받은 후 현지 바다에 도착했다. 가족별로 다이빙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도 장비를 차고 체험다이빙에 나섰다.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생각. 한국에서 다이빙 교육을 안 시킨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가족들은 1인당 100불씩 다이빙 수업료를 내야만 했다. 두 사람 앞에 한 명씩 헬퍼(helper)가 따라 붙었다. 바닷속에서 호흡기를 빼었다 다시 물면 참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문득 아내와 딸에게 호흡기를 빼서 숨을 쉬어 보라고 수신호를 여러 번 보냈다. 딸은 가만 있었지만 아내가 따라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다. 호흡기를 빼었다 다시 물면서 바닷물을 왈칵 들어 마셨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고 헬퍼의 도움으로 아내는 급히 출수를 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어떤 아저씨가 계속 호흡기를 빼라고 수신호를 보내길래 할 수 없이 호흡기를 빼냈다가 물을 왈칵 마셔 정신을 잃을 뻔 했다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다행히 그 아저씨가 남편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난 정신이 휑해졌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나중털어놨다.
"그 아저씨가 바로 나야"이후 아내에게 여행내내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동료들은 "본심이 뭐였냐"며 계속 놀려댔다.
오늘은 아침 일찍 호핑 투어가 있는 날이다. 막탄섬 포구에 가는 길에 지프니 차에 액세서리를 파는 아이들이 차에 매달려 물건을 팔아 달라고 조른다. 한국말을 제법 하는 12살 존(John)과 11살 조너던(Jonathan)은 "한국 사람들은 잘 살고 돈도 많다, 커서 한국에 가고 싶다"며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내보였다. 방카보트에 도착했다. 햇볕에 그을린 필리핀의 어린 아이들. 마치 70년대 어린 시절 우리가 자라왔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방카보트를 오르내릴 때 관광객이 탄 보트를 밀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해맑다.
다금바리 잡는 세부의 '팔없는 어부'들
막탄섬 앞에 보이는 '올랑고'라는 섬은 철새보호구역이다. 여긴 필리핀 특용작물인 놉을 키우는데 이곳에서 제일 부자 섬에 속한다고 한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다. 9600만 명의 인구 중 80%는 하루 법정 최저임금 7불도 못 받는 빈민들이 많은 나라다. 특히 어부들은 아이들이 노동력이다 보니 보통 한 가정에 자녀가 7~8명은 기본이란다. 이들은 한국에서 유명한 고급회 어종인 다금바리 낚시로 생계를 꾸려간다. 열대성 어류인 다금바리는 이곳에서 먹이활동을 해서 저 멀리 제주까지 간다. 10여 년 전 이곳 어부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폭약을 이용해 고기를 잡았다. 콜라병에 화약을 담아 불을 붙여 바다에 던지면 폭발음에 놀란 고기떼가 기절한다. 이때 물위에 떠오른 다금바리를 건져 올리면 쉽게 많은 고기를 잡았다 한다. 우리를 안내한 바비 원 가이드의 말이다.
"<VJ특공대>에서 세브의 팔 없는 어부편에서도 이곳을 촬영했습니다. 어부들이 폭발물을 바다에 던져요. 터지면 상관없는데 던지다 터지면 팔이 잘려 나갑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 팔 없는 어부가 많았죠. 지금은 24시간 경비를 서서 이곳에서 이런 행위가 근절되어 낚시로만 다금바리를 잡고 있습니다."
막탄섬에서 30분을 항해한 방카보트가 올랑고 섬 앞에 정박했다. 필리핀 바닷속 스노클링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우리가 오기 전 4개월 동안 이곳은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좋지 않아 바다체험을 못해 여행사가 피해를 봤다는데 우리 팀은 운이 좋단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은 스노클링으로 바닷속 물고기를 구경했다. 피시 피딩(Fish feeding)용 물고기 밥을 주니 젤리피시가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10m 깊이의 바닷속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물속 구경에 푹 빠졌다.
이어 까오비안섬으로 호핑투어를 떠났다. 그곳은 여기서 약 1시간 정도 배를 타니 착할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를 먹고 자란 산호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마라도쯤 될까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너머로 까오비안 섬이 보인다. 일명 쌍둥이 섬으로 불렸다. 한쪽 섬은 유인도다. 무인도는 여행사 하나투어에서 단독으로 장기 임대해 쓰고 있다. 이곳에서 즐기는 수상레저는 환상 그 자체다. 수심이 낮아 다이빙이 이루어지지 않아 제트스키와 바나나 보트를 맘껏 탈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일행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제트스키를 직접 운전을 하며 스피드를 즐길 수 있었다. 바나나 보트를 탈 때는 그렇게 스피드가 빠르게 느껴졌는데 제트스키를 탄 후 다시 바나나 보트를 타니 심심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제트스키의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
저녁이 되었다. 숙소 베란다에서 마시는 산 미구엘 맥주 맛이 감미롭다. 그림 같은 해변 너머로 필리핀의 석양이 노을 진다.
<기사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