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소설가 서아무개(작고)씨가 국어 교사로 강릉의 모 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서씨는 일년쯤 되어 유명 문학잡지에 '강릉의 삼다'라는 수필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경포호수에 물이 흐리고 바람이 많고, 여자들의 정조관념이 흐리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본 시민들이 발끈, 결국 서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강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일이다. 이때만 해도 경포호수는 거의 방치된 상태여서 여름에 큰비가 내리면 사방에서 흙탕물이 모여들어 호수는 금세 붉은 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흙더미로 호수가 급격하게 줄어 들고 방풍림 역할을 하던 송정의 솔밭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상당수 없어져 봄이오면 바다에서 부는 샛바람으로 매섭게 추웠다.
그랬던 경포호수가 복원사업을 거치면서 오늘날은 물이 거울처럼 맑아졌고 어렸던 송정의 소나무 숲도 큰나무로 잘 자라주어 지금은 경치뿐만 아니라 방풍림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호수에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떠났던 철새들도 속속 돌아왔다. 벚나무들이 길게 늘어선 산책로는 강릉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정순자(67)씨 내외는 경포대를 한바퀴 둘러본 후 호수를 내려다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매년 한 번씩 다녀가지만 호수 물이 적어 진 것 같고 인공보수로 인해 예전의 자연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 다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끗한 물과 잘 정돈된 호수 둘레길,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 숲, 찾아오는 철새들을 보면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변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경포대도 복원 사업 이전에는 사방으로 벽이 없어 경포대 정자각에 앉아 있으면 사방이 환하게 트여 시원함을 주었다. 그러나 2008년 보수 및 복원 사업을 거치면서 서쪽의 5칸, 남쪽의 2칸, 북쩍의 2칸을 판자로 벽을 만들고 정자각 안에도 단을 만들어 놓아 내부가 어두워 복원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경포대는 2008년 도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를 원형대로 복원하면서 내부가 어둡고 답답하여 시민들은 예전처럼 정자각이 확 트였으면 한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도유형문화재인만큼 고증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확인한 후 도문화재위원들의 심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생태하천 조성사업 등 경포호수 주위로 복원 공사가 끝나가 속속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강릉시는 대표 하천인 경포천을 정비해 '고향의 강'으로 복원하는 등 2016년까지 모든 사업을 끝낼 예정으로 있다. 시 관계자의 의하면 경포 습지는 4월에 완공, 경포호수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지난 5일 아침 일찍 호수 둘레길 산책을 나섰다. 3월이지만 아직 해변에서는 새초롬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어 차갑다. 하지만 맑은 호수의 상큼한 바람으로 마음은 한결 시원해 진다. 호수 주변의 산책길 따라 부지런히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인다. 겨우내 답답했던지 청설모도 봄나들이 나섰다.
호수 산책길을 여기저기 돌아보니 숲에는 새가 다른 동물에 잡아 먹힌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건 자연생태계가 잘 복원되고 있다는 증거다. 여러가지 복원공사가 마무리 되면 경포호수 일대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