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강정비사업 이전에 찾아왔던 수리들 3종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 금강정비사업 이전에 찾아왔던 수리들 3종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갑자기 여러분들의 살고 있는 집이 철거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황당하고 어안이 벙벙한 걸 떠나서,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에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개발행위는 사람이 사는 집이 철거되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개발로 갑자기 집을 잃어버린 동물은 사람들처럼 타도시로 이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강제철거로 쫓겨난 세입자 신세처럼 도시민빈이 되거나, 살 곳을 찾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세종시 합강리의 터줏대감이던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참수리, 독수리가 금강정비사업으로 이런 세입자 신세가 되었다.

흔히 독수리라고 불리는 조류는 최상위 포식자로 그 개체수가 본래 적다. 산 속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의 개체가 수만 마리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먹이 피라미드상 최상위 포식자는 하위층의 동식물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엄밀하게 구분하면 독수리(Vulture)는 최상위 포식자라기보다는 썩은 개체를 먹는 청소부의 역할을 하고, 수리(eagle)류가 사냥을 해서 먹이를 먹는 최상위 포식자이다.

수리는 개체수가 많지도 않고 자신의 고유 영역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동시기가 아니면 떼를 지어 다니지 않고 단독생활이나 가족단위 생활을 한다. 이런 최상위 포식자의 특성 때문에 개체 수가 적어, 서식처가 훼손돼 사라질 경우 쉽게 종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리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지정하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는 많은 조류들 중에 수리류가 상당히 많은 이유도 본래 적은 개체군에, 산업화와 서식처 파괴로 그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떠날 채비를 하는 흰꼬리수리 성조 이렇게 비행을 한 이후 합강리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천연기념물인 흰꼬리수리는 국내에서도 매우 보기 힘든 겨울철새이다.
▲ 떠날 채비를 하는 흰꼬리수리 성조 이렇게 비행을 한 이후 합강리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천연기념물인 흰꼬리수리는 국내에서도 매우 보기 힘든 겨울철새이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많은 수리는 대부분이 몽고나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의 큰강가나 넓은 하천변 농경지에서 월동한다. 그래서 수리류의 주요 월동지는 4대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런 월동지에 빨간불이 켜지게 만든 것이 4대강 사업이다. 필자가 자주 찾는 금강에도 4대강 사업 이후 수리류의 서식에 급격한 교란이 발생했다. 금강의 중요한 수리류 월동지였던 합강리에 4대강 사업이 시작하면서 수리류가 급격히 감소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하기 전 합강리에는 검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독수리 등의 수리 약 10여 마리가 매년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월동을 해왔다. 2007년에는 흰꼬리수리, 참수리, 검독수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먹이 경쟁을 하는 진풍경까지 관찰되었다. 새를 관찰하는 탐조인이라면 3종류의 수리를 한꺼번에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이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는 종이다.

이렇게 수리류의 월동지로서 역할해온 합강리에 금강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된 2009년 이후 수리류들이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2010년, 2011년, 2012년에는 한 마리도 관찰할 수 없었다. 수리 관찰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흰꼬리수리가 전부였다. 필자는 매년 겨울 합강리를 찾아 허탕치기를 반복했다. 지난겨울에도 2012년 11월부터 지금까지 8번이나 수리류를 찾아서 합강리에 다녀왔다.(관련기사 : <4대강 포클레인이 삼켜버린 검독수리떼>)

수리가 머물러 채식하던 하중도를 준설하는 모습 가장 많은 습지를 보전한 합강리 유역도 이처럼 하중도에 대한 준설이 진행되었다.
▲ 수리가 머물러 채식하던 하중도를 준설하는 모습 가장 많은 습지를 보전한 합강리 유역도 이처럼 하중도에 대한 준설이 진행되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어렵게 다시 수리류를 만날 수 있었다. 겨울철새들이 북상하는 시기인 2월 28일 합강리에서 4마리의 수리를 발견한 것이다. 얼마나 기쁘던지 정신 없이 사진을 찍었다. 겨우내 발견되지 않은 수리 4마리가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다시 찾아왔다는 안도감은 잠시, 1일과 3일 두 번에 걸쳐 다시 합강리를 찾았지만 그때는 수리를 찾지 못했다.

더 남쪽에서 월동한 수리류가 시베리아로 북상하던 중에 잠시 합강리에 들른 것으로 생각된다. 합강리에 다양하게 발달했던 하중도(하천 중간에 있는 섬)는 준설로 대부분 사라졌다. 사람을 경계하는 수리가 편안히 쉬기 위해서는 하중도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수리류가 관찰된 곳은 역시 합강리 인근에 재퇴적된 하중도 모래톱이었다.

이 하중도 모래톱 역시 공주보와 세종보가 만수위를 유지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주보와 세종보가 정기점검을 위해 수문을 개방하면서 수위가 낮아진 탓에 재퇴적된 부분이 드러났다. 이렇게 우연히 드러난 하중도에, 북상 중인 수리가 잠시 쉬어가게 된 것을 운 좋게 필자가 관찰한 것이라고 추정된다.(관련기사 : <금강에 다시 나타난 모래섬, 정말 고맙네>)

재퇴적된 모래에 찾아온 수리들 좌측 1개체만 참수리이고 나머지 3개체는 흰꼬리 수리이다.
▲ 재퇴적된 모래에 찾아온 수리들 좌측 1개체만 참수리이고 나머지 3개체는 흰꼬리 수리이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10마리의 수리류 월동을 한꺼번에 관찰하던, 과거 철새도래지로서의 합강리는 이제 없다. 우연히 찾아오는 수리류라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행히 재퇴적이 진행되고 물의 흐름을 찾아서 합강리가 과거처럼 하중도와 모래톱, 습지가 발달한 지역으로 복원된다면, 우연히 찾아온 수리가 다시 월동지로 선택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강리에 퇴적되는 모래의 추가준설을 중단하고, 세종보와 공주보, 백제보의 수문을 조정하여 하중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 2013년 겨울 우리나라를 찾아올 수리들을 위해서라도 금강의 재자연화를 서둘어야 한다. 수리들의 휴식처인 하중도를 복원하고, 은신와 먹이 채식지로서의 습지를 복원한다면, 합강리는 아직 월동지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추가준설을 하고 공원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인다면, 합강리에서 수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렇게 서식처가 파괴되면서 수리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면 멸종위기종인 수리는 진짜로 멸종될 것이다. 이 멸종의 끝에는 사람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합강리에 습지를 준설중인 모습 2011년 넓은 습지를 보전했으나 수리들에게 안정적인 휴식처는 사라졌다.
▲ 합강리에 습지를 준설중인 모습 2011년 넓은 습지를 보전했으나 수리들에게 안정적인 휴식처는 사라졌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수리#흰꼬리수리#합강리#금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이 기자의 최신기사중대백이의 삶과 죽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