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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천의 노을.
 광주천의 노을.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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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교, 광암교를 지나 벚꽃길을 따라 흐르는 광주천은 이제 영산강과 만나기 위해 숨을 고른다. 한결 고와진 물의 결은 깊어지는 연습을 한다. 깊게 흐르는 물이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물은 알고 있다.

광주천 따라 걷기 5구간은 여여(如如)하게 빛나는 광주천 풍광이 일품이다. 특히 상무대교 인근에서 조망하는 노을은 장관이어서 일부러 상무대교 둔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자연학습장과 생태정화습지, 예향 수변공원, 철새도래지, 억새숲 등 이어지고 있어 편하게 걷는 이들이 많다. '힐링 유행시대'의 한 풍속일 수 있다. 하지만 걷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일상에서 솟은 억지스럽지 않은 마음과 생각으로 그저 편하게 물과 함께 흘러가는 싶을 뿐이라는 게 저절로 보인다. 과도한 포장도 문제지만 억지 해석도 불편하고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광주천 전체 구간 중 5구간이 가장 유려하고 완만한 풍경을 지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5구간이 흘러가는 곳은 광주에서 가장 교통량 많고 분주한 곳이다.

광주천 5구간 천변 좌로에는 광주 종합버스터미널과 쇼핑과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유스퀘어, 기아자동차공장, 광주시청 등이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서로 마중하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 인사한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과 실어 나르는 사람이 서로 배웅하고, 이런저런 공사(公事)를 원하는 사람과 이를 살피는 사람이 서로 서명을 한다.

광역도시의 번잡함과 분주함이 오롯이 살아 있는 5구간 천변 좌로와 자연생태의 수더분함이 낙낙하게 흐르는 천변 우로. 한 구간이 품고 있는 두 가지 풍경은 도시를 사는 이들의 마음을 닮았다. '절대'나 '단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의적인 도시의 일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번잡함과 분주함이 오롯이 살아 있는 광주천 5구간

광주천 5구간 억새밭 사이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지난 가을 촬영)
 광주천 5구간 억새밭 사이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지난 가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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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노벨평화살 수상자들의 부조물이 있다.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노벨평화살 수상자들의 부조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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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천 자연학습장 건너편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은 광주사람들에게 공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인구 100만 명이 넘게 사는 광역도시 규모에 비해 광주는 생산시설이 열악한 편이다. 기아자동차공장은 그런 광주에서 그나마 제때에 월급 주는 몇 안 되는 산업체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 그 친척까지 함께 어깨가 절로 으쓱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또 1980년 오월항쟁 당시에는 시민군들이 와서 트럭과 버스 등을 가져가기도 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아세아자동차'라는 이름이었는데 광주 시민군들은 군용으로 납품하던 '아세아 트럭'과 '아세아 버스'를 몰고 가 계엄군에 맞섰다.

기아자동차를 지나면 5.18기념공원이 있다. 5.18기념공원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육군 전투병과사령부 즉 상무대가 있던 곳이다. 1994년 12월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자 김영삼 정부는 상무대 이전 부지에 상무지구라는 신도시 계획을 세웠다.

그 신도심 재개발지구에 약 10만 평의 규모로 만든 공원이 5·18기념공원이다. 5.18기념공원은 5·18자료실과 공연·행사시설을 갖춘 5·18기념문화관, 시민군조각상·추모공간 등으로 구성된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대동광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공원 내에는 '무각사'라는 절이 있는데 원래 이 절은 1972년 상무대 내 군법당으로 창건한 것이다. 상무대가 이전하고 나서는 불교 신자들은 물론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 회향(回向)의 명소처럼 되었다. 시민들은 아무 때나 편하게 무각사 경내를 산책하거나 약속을 잡아 차를 마시러 온다. 주차장에서는 '보물섬'이라는 벼룩시장도 열리는데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소장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아름다운 장터다.

무각사의 '전두환 종', 어디로 갔을까

특히 무각사에는 '전두환 각하'라는 시주 이름이 새겨진 종이 있었다. 시민들은 이 종을 '전두환 종'이라고 불렀다. 광주학살 책임자가 광주에 있는 절에 종을 시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종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무각사 측은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명 '전두환 종'을 철거했는데 그 이후 이 종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상무대 영창 전경. 1980년 오월 당시 계엄군은 작은 방에 시민군과 민주인사 150명씩 가두고 구타했다.
 상무대 영창 전경. 1980년 오월 당시 계엄군은 작은 방에 시민군과 민주인사 150명씩 가두고 구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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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자유공원에 있는 들불7열사 조형물.
 5.18자유공원에 있는 들불7열사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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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컨벤션센터 건너편에 있는 5.18자유공원 역시 상무대가 이전하면서 만든 공원이다. 이 공원엔 이전 복원된 상무대 영창과 군사법정, 들불열사 기념비 등이 있다. 1980년 오월항쟁 당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여섯 개의 감방엔 광주지역 민주인사들과 잡혀온 시민군들로 넘쳐났다. 그좁은 방에 계엄군은 150명씩을 수감했다.

그리고 상무대 법정에선 무장한 헌병이 도열한 가운데 421명이 약식 군사재판을 받았다. 이미 상무대 헌병대 건물에서 살인적인 고문을 받으며 기소를 받아 군사법정에 섰던 광주시민들에게 법관은 판관이 아닌 계엄군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상무대 영창이 복원된 자리 인근에 철새 도래지가 있다. 해마다 오월은 찾아오고 새로운 오월이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그날의 사람들은 한 명 두 명씩 세월의 장막 뒤로 사라져 간다. 그들이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망각을 강요한다. 학살자에게 "사과하라"고 말 한마디 쏘아붙이지 못한 자들이 죽임 당한 자들에게 잊으라고, 그만 이야기하라고 윽박지른다. 반복되는 윽박지름과는 상관없이 철새는 해마다 광주천을 찾아오고 있다. 해마다 어김없이 오월이 다시 오듯.

이제 광주천은 영산강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강이 된 광주천은 흑산바다 건너 동중국해를 지나 남중국해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햇살 좋은 날에 태평양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때로 피로 물들고, 때로 눈물로 물들었던 광주천은 마침내 바다와 함께 해원(解寃)할 것이다.

상무교의 노을. 이제 광주천은 영산강을 만나 바다로나아간다.
 상무교의 노을. 이제 광주천은 영산강을 만나 바다로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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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광주천 따라 걷기 5구간은 '광천 2교-광암교(유스퀘어, 시티투어 승강장)-벚꽃길-동천교(억새숲)-유촌2교-5.18기념공원-무진대교-상무대교'입니다.



태그:#광주천 따라걷기, #5.18, #들불, #김대중,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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