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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로(Centro) 거리를 걷는 사람들. 이 사람들도 모두 집이 있는데, 나만 집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센트로(Centro) 거리를 걷는 사람들. 이 사람들도 모두 집이 있는데, 나만 집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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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필요한 걸 세 가지만 꼽으라면 의식주를 들 수 있다. 지난 2월 4일, 말라가(Málaga)에 처음 발을 들이자마자 내가 찾아 헤맨 건 바로 집이었다. 외국에 도착하면 당장 구경부터 하고 싶을 것 같았는데, 정작 내 몸 뉘일 곳 하나 없으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정작 말도 못할 뿐더러 방법 또한 모르니 갑갑하기만 했다. 일단은 부딪혀 보는 게 맞다 싶어서 같은 학교에서 함께 입국한 누나와 함께 나갔다. 주로 여행자들이 묵는 '오아시스 호스텔' 밖으로 나가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어다. 잠시 들리는 여행객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붙잡았다.

말라가 생활 처음에 묵었던 오아시스 호스텔 앞.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학생들이 지금까지 함께하는 인연이 됐다.
 말라가 생활 처음에 묵었던 오아시스 호스텔 앞.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학생들이 지금까지 함께하는 인연이 됐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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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하다 만난 인연

신이 도우셨다. 둘 다 교환학생이었고, 집을 구하고 있었다. 알라메다 거리(Alameda principal)의 패스트푸드 체인 '타코벨(taco bell)'에서 점심을 먹으며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말라가 거주 한국 학생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집을 사고 파는 인터넷 누리집 목록이 있다고 했다. 이 중 한 곳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원하는 집을 골라 메일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간단해 보였지만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와 누나는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오늘 만난 둘은 스페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당분간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잠깐 주제를 벗어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함께 여행을 떠날 정도로 친한 형과 친구들을 그렇게 만난 것이다.

집(피소, piso)를 검색해 볼 수 있는 인터넷 누리집의 한 예시
 집(피소, piso)를 검색해 볼 수 있는 인터넷 누리집의 한 예시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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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해서 들은 "영국으로 꺼져라" 알고 보니...

이곳의 공동주거 주택은 플랫(flat)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피소(piso, 층이라는 뜻)라고도 불렀다. 교환학생 페이지를 보니, 스페인어를 공부할 요량이면 학원이 많은 '엘 팔로(El Palo)'에 집을 구할 것을 추천했다. 대학수업을 주로 들을 생각이면 대학캠퍼스가 있는 '떼아띠노(Teatino)' 주변이나 '엘 에히도(El ejido)'가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애초 시내 중심인 '센트로(Centro)'를 점찍었다. 축제가 열리는 중심지인데다가 놀 만한 곳은 전부 여기 있었던 것. 거기다 엘 팔로와 학교 수업들을 건물이 있는 떼아띠노의 중간에 있었으니 내겐 여기가 금상첨화였다.

노트북을 켜고 집 몇 개를 점찍었다. 메일을 보내고 학원을 다니면서 나흘을 지냈다. 전화가 왔다. 9자리로 된 스페인 전화번호가 아직도 생소하던 찰나, "올라(Hola, 안녕하세요)" 그리고 속사포로 이어지는 스페인어. 아, 이것이 멘탈붕괴인가 싶었다. 옆에는 도와줄 형도 없었다.

"난 스페인어 못해요"라고 공손하게 말하고 싶었다. 생각나는 단어 몇 개 주워서 "노 아블라 에스빠뇰(No habla español)"이라 했다. 그러니 갑자기 돌아오는 영어 욕설. 대략 "Go England!"가 들어간 욕이었고, 맞받아 칠 새 없이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말라가의 중심 알라메다 거리 근처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집을 찾는게 쉽지는 않았고, 비쌌다. 마음만 급해져 왔다.
 나는 말라가의 중심 알라메다 거리 근처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집을 찾는게 쉽지는 않았고, 비쌌다. 마음만 급해져 왔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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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세계에서 한국인이 제일 다혈질이라 생각했더니 이건 더하지 않나. 뒤통수를 뭐로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라서 나았지 아침이었으면 하루가 재수 없을 뻔했다. 당시에는 화만 났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외국이든 어디에서든 화내봐야 득 될 거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화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내가 말한 말의 뜻을 곱씹어 보니 "(당신) 스페인어 말하지 마"라는 명령투의 문장이었다. 이런, 내가 정신 나갔지. 원래는 "푸에도 아블라르 잉글레스(¿Puedo Hablar Ingels?, (제가) 영어로 말해도 될까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지금도 그 집주인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그 사람은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한글을 읽진 못하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드디어 구한 나의 몸 뉘일 곳

다음날,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개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라이노(Rayno)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눈에 병이 있어서 평소에 멀리 있는 걸 잘 못본다고 했다. 전날의 충격이 있어서였을까, 중개업자에게 연민을 느껴서 였을까. 월 290유로(한화로 약 40만 원)의 방값과 월세와 같은 가격의 보증금은 부담스런 금액이었지만 집은 마냥 좋아보였다. 고민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

드디어 집을 구했다 2월동안 산 집은 말라가 항구 바로 앞 건물의 5층에 있었다(화살표).
 드디어 집을 구했다 2월동안 산 집은 말라가 항구 바로 앞 건물의 5층에 있었다(화살표).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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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을 세 개만 보고 끝냈다.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 함께 출발해 함께 집을 구하기 시작한 누나는 5개를 더 보고 지금도 더 나은 집을 찾고 있다. 한 번은 집을 보기 위해서 엘 에히도에서 항구 너머까지 1시간을 걷고 다시 되돌아오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잠시 동안은 '내가 너무 날림으로 비싼 집을 구한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집 없는 설움에 등을 떠밀려서 흥정할 마음의 여유조차 찾지 못한 건 아니었냐는 후회다.

다행히 후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한 달 뒤 알라메다 거리 바로 뒤, 말라가 시장(Mercado de Atarazanas) 바로 앞 입지가 더 좋은 집으로 옮기는 조건으로 센트로와 조금 떨어진 말라가 항구 앞에 집을 구했다. 거실에서 문을 열면 항구의 전경이 나를 반겼고, 갈매기 우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워줬다. 부엌에는 오븐에 전기 인덕션(가스레인지 대신 전기로 작동하는 조리대)이 있어서 요리를 좋아하는 내 맘을 사로잡았다.

2월 동안 살 집. 거실과 방이 떨어져 있어서 친구들을 불러 놀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월 동안 살 집. 거실과 방이 떨어져 있어서 친구들을 불러 놀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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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풀자마자 찍었다. 방은 작았지만 사람들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이삿짐을 풀자마자 찍었다. 방은 작았지만 사람들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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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사는 플랫 메이트(flatmate)가 맘에 들었다. 이제 학기를 마치고 떠나는 독일 여학생, 이제 막 말라가에 온 호주 남학생 그리고 인도인 남편을 데리고 있는 폴란드 여학생 부부가 있었다. 무엇보다 호주 남학생인 대니얼과는 죽이 너무 잘 맞았고, 집을 옮긴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비록 방은 좁고 추웠지만 배려 넘치는 사람들이 있으니 심신이 편안했다. 그리고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집을 구한 것도 우연히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ddobagimedia.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말라가, #교환학생, #스페인, #피소,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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