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서울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하기로 하고 오는 11일 직접 그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재보선 출마를 두고 "과연 출마가 적절한가"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안 전 후보의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인 진보정의당 등은, 안 전 후보가 야권연대에 대한 그 어떤 양해나 협의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노희찬 전 의원 측에 출마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의 이번 출마 논란을 접하면서 지난 대선 기간 안철수 전 후보와 그의 지지모임측이 보였던 행보가 떠오른다.
지역단체들, 일정까지 취소하고 면담 약속을 잡았건만...
안철수 전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많은 국민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심어줬다. 특히 기성 정치권에 실망을 경험한 절박한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더 없는 희망을 심어줬던 것이 사실이다. 그외 여러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었다.
지난해 9월과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철수 전 후보는 9월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대선 출마를 두고 '긴가민가' 하던 국민들에게 공식적인 출마선언을 한 것이다. 이어 안 전 후보는 전국을 돌며 국민들의 열기를 북돋았다. 전국에서는 그의 지지모임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속속 결성됐다.
당시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는 여런 난제가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인 직후였고, 현대차 정규직들도 주간연속 2교대제를 앞두고 사측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허가를 반려한 구청장이 기소되는 지경까지 이른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가 막 개점해 지역 중소상인들이 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둘러싸인 울산의 환경단체가 원전 추가유치와 인근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을 두고 연일 항의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울산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었다. 급기야 10일 17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두 명이 송전철탑에서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조합원 두 명이 철탑에 오른지 5일이 지난 10월 22일, 안철수 전 후보 측에서 연락이 왔다. 오는 25일 울산을 방문하려는데, 꼭 방문해야 할 곳을 정해 섭외를 해달라는 것이다. 몇 번을 거절하다 나쁜일이 아닌 것 같아 울산에서 가장 긴박한 곳을 꼽아 알려줬다.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장, 코스트코 중소상인 농성장, 현대차 정규직노조, 울산환경운동 연합이 그곳이다.
그날 다시 안 후보측은 "10일 25일 안 후보의 울산 방문시 그들과 면담을 하려하니 시간 약속까지 잡아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섭외 결과 일부는 흔쾌히, 일부는 안 후보측의 일부 문제를 드는 한편, 자신들의 일정을 들어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대선을 앞두고 지역 현안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며 설득하다시피해 겨우 일정을 조정했다.
당시 안 후보의 갑작스런 25일 울산 방문에 일정을 맞추려다보니 여러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필자의 요청에 현대차노조측은 25일 노조의 회의일정까지 조정했고, 지역 중소상인들은 서울에서의 행사를 취소하면서까지 안 전 후보와의 면담일정을 잡았다. 울산환경운동연합도 그날 교육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 이 모든 양보가 절박한 심정에다 안철수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 후 그가 보여온 결의에 찬 행보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10월 23일 안철수 후보측은 "지역과 중앙의 의견 차이 때문"이라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철탑농성장만 방문하고 그외 일정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의 거센 항의에 안 후보측에서 나머지 3개 단체에 양해를 구했다.
드디어 지난해 10월 25일, 안철수 후보는 울산의 철탑농성장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철탑에서 농성중인 최병승씨와 통화하며 그의 건강을 물었다. 또한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법 규정에 허점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10일 뒤에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측에 불법파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이메일을 보내 "재벌총수 등 사회적, 경제적 특권층 누구라도 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해 엄정한 법 적용을 촉구하고, 검찰을 개혁해 공정한 법 집행기관이 되도록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약속했다. 벼랑끝에 몰려 있던 비정규직들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안철수 후보와 지지모임이 찾은 곳은?...사람이 모이는 곳안 후보가 10월 25일 철탑농성장 방문에 이어 간 곳은 울산 남구 무거동 울산대학교 앞 바보사거리였다. 울산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거리다. 안 후보가 바보사거리를 방문하자 젊은이들이 구믈처럼 모여들었다. 방송 생중계는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대화를 나누는 안 부호와,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지지모임 인사의 환한 모습을 스크린에 잡았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단체에서 필자에게 항의했다. 일정까지 조정하며 면담시간을 내줬지만 하루만에 일정을 취소한 안 후보측이 간 곳이 젊음의 거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 단체 회원은 "안 후보는 가고 싶은 곳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만 가냐"고 필자에게 항의했다. 당시 필자를 믿고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약속 시간을 잡아준 그들이기에 화가 날만도 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이후 필자의 전화통화마저 거부하고 있다.
그뒤 안철수 전 후보의 울산지역 지지모임은 안후보 울산 방문 1주일 뒤인 11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그들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고, 정치와 경제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안고 안철수 후보가 뛰기 시작했다"며 "국민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또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울산은 물론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며 "울산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현안들을 상세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정책의제와 대안들을 찾아내 시민과 함께 만든 정책공약으로 다듬어낼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 뒤 기자회견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를 정책의 최대 현안으로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3주 뒤인 11월 23일, 안철수 전 후보는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대선 후보를 양보했다.
그 뒤 안철수 후보와 그의 지지모임은 현대차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안 후보처럼 대선 후보를 사퇴한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지금도 비정규직들과 함께 천막을 치며 동조 농성을 벌이는 철탑농성장이지만, 안철수 전 후보 지지모임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