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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달마산 미황사. 전각이 화려하지 않아 언뜻 고택 같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전각이 화려하지 않아 언뜻 고택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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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미인이 '진짜 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미인이기 때문이다. 여행지도 똑같다. 따로 덧칠하지 않아도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곳이 빼어난 여행지다.

'땅끝'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가 그런 곳이다. 단청을 하지 않은, 민낯 그대로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뒷산의 빛바랜 기암괴석도 장관이다. 요사채를 감싸고 있는 돌담과 장독대도 고향집 같다. 괘불제·한문학당·산사음악회도 정겹다. 주지 금강스님도 오래 된 친구 같다.

지난 3일, 미황사로 발길을 향했다. 지명 탓일까. '땅끝' 해남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조금은 먼 여정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하늘도 모처럼 파랗다.

주차장에 대형버스 몇 대가 서 있다. 산악회원들이 타고 온 버스다. 벌써 산에서 내려오는 회원들도 보인다. 나의 늑장과 게으름이 쑥스러운 순간이다. 절집으로 가는 길이 호젓하다. 바람은 차갑다. 햇살이 다사로워도 계절을 속일 수는 없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일주문을 지나자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섶으로 동백나무와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어우러져 있다.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이 새빨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다. 자하루가 보인다. 꽤나 널찍한 누각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 때 이용되는 공간이다.

검은 소가 쓰러진 자리에 절이 세워졌네

거북 문양 석조물.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져 있다.
 거북 문양 석조물.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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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하지 않은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사진 오른쪽 아래)에 새겨진 거북문양 석조물이 보인다.
 단청하지 않은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사진 오른쪽 아래)에 새겨진 거북문양 석조물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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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美黃寺)는 오래된 절집이다. 역사가 1200년을 웃돈다. 검은 돌에서 튀어나온 검정빛깔의 소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옮기는데, 산골짜기에서 소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세운 절집이 미황사다. 창건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빛바랜 전각이 달마산 봉우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치 하나인 듯 자연스럽다. 단청이 다 벗겨진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대표 건축물이다. 나무 빛깔만으로도 마음을 잡아끈다. 보물 제947호로 지정돼 있다. 소박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보전을 빛내주는 게 주춧돌이다. 여기에 게·거북이 등 갖가지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앙증맞다. 대웅보전이 더 여유롭게 보인다. 석조물의 위치도 재밌다.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재밌다.

응진전은 대웅보전과 달리 화려하다. 대웅보전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요사채를 감싸고 있는 돌담도 정겹다. 그 옆으로 솟은 나무는 가지만 남아 앙상하지만 스산하지 않다. 장독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난다.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도 애틋하다. 전각과 요사채 사이도 비교적 넓다.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넉넉한 여유가 배어있다. 저만치 보이는 풍광도 눈을 호사시킨다.

꽃게 문양 석조물. 미황사 부도전에서 만난다.
 꽃게 문양 석조물. 미황사 부도전에서 만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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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문양 석조물이 새겨진 미황사 부도전. 기암괴석을 뽐내는 달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동물 문양 석조물이 새겨진 미황사 부도전. 기암괴석을 뽐내는 달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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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을 한 바퀴 돌아 산길로 접어든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한산하다. 오순도순 얘기하며 걷기에 딱 좋다. 경내에서 나와 20여 분 걸었을까. 숲길의 시야가 환히 트인다. 달마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 부도밭이 있다. 얕은 기단 위에 담을 ㄷ자로 둘렀다. 아늑해 보인다. 부도에 이끼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세월의 더께가 배어난다. 그 부도에 석조물이 새겨져 있다. 얼핏 봐선 알아볼 수 없다. 여기서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눈을 크게 떠야 보인다.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가 보인다. 한쪽 다리로 선 오리도 있다. 갓 태어난 아기 사슴도 새겨져 있다. 문어를 닮은 귀신과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도 있다. 하나같이 해학적이다. 소박한 절집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선다.

해질녘 미황사,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황사 숲길. 부도전으로 가는 길이다.
 미황사 숲길. 부도전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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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요사채 풍경. 장독대와 어우러진 돌담이 흡사 고택 같다.
 미황사 요사채 풍경. 장독대와 어우러진 돌담이 흡사 고택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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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밭에서 길은 산정으로 이어진다. 등산로인 셈이다. 작은 금샘을 거쳐 기암괴석이 줄지어 선 산꼭대기로 간다. 산꼭대기 여기저기에 바위봉우리가 불쑥불쑥 솟아 있다. 기암괴석들의 동창회 같다.

길이 기암괴석 사이로 나 있다. 흡사 공룡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것 같다. 발 아래로 보이는 절집과 다도해 풍광도 장관이다. 길은 헬기장을 거쳐 다시 미황사로 내려온다. 능선을 따라 뉘엿뉘엿 걸어도 두세 시간이면 거뜬하다.

절벽 위에 둥지를 튼 도솔암도 아찔하다. 미황사에서 산길로 연결된다. 송신탑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도해 절경과 달마산 기암괴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 무렵 미황사는 감탄사를 토해내게 한다. 절집 뒤로 펼쳐진 기암괴석도 지는 햇살에 붉게 물들어 황금빛으로 변한다. 그 풍광이 환상적이다. 미황사에 가면 삼황(三黃)을 봐야 한다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 미황사의 불상과 달마산의 바위, 그리고 누렇게 물드는 석양이 그만큼 아름답다.

미황사를 더 미황사답게 하는 시간이다. 달마산 준봉과 어우러진 절집이 달빛 아래에서 고요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새벽녘도 황홀하다. 아름다운 절집 미황사가 한결 더 편안하게 다가선다.

미황사 대웅보전. 단청을 하지 않은 민낯 그대로여서 더 아름답다.
 미황사 대웅보전. 단청을 하지 않은 민낯 그대로여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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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죽림나들목에서 영암-순천간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무위사 나들목으로 나간다. 여기서 13번 국도를 타고 해남읍을 거쳐 완도 방면으로 가다가 황산삼거리에서 구산리 방면으로 우회전, 현산농협을 지나면 미황사로 연결된다.



태그:#미황사, #달마산, #석조물,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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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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