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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국가 사적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 않은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여름(위)과 가을 풍경. 부여, 공주, 고령 등 고분으로 유명한 곳은 많지만 이처럼 고분들이 많이 운집해 있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대단한 국가 사적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 않은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여름(위)과 가을 풍경. 부여, 공주, 고령 등 고분으로 유명한 곳은 많지만 이처럼 고분들이 많이 운집해 있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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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에 가면 읍내의 주산(主山)에서 대가야 고분군을 구경할 수 있다. 산이름에 '임금 주'를 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고령은 대가야의 도읍지였다. 과연 고령은 대가야의 왕이 머물러 있던 왕궁터답게 엄청난 고분들을 보여준다.

주산 고분들은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 대가야 전성기의 무덤들로 여겨진다. 이곳 고분군은 특히 봉분들이 평지에 있지 않고 산 능선을 타고 정상부까지 줄을 지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름이 높다. 또 발굴 때 순장(殉葬)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북 고령 주산 고분군. 거대한 고분들이 산 능선을 따라 줄을 지어 놓여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찍을 수 없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경북 고령 주산 고분군. 거대한 고분들이 산 능선을 따라 줄을 지어 놓여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찍을 수 없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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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 고분군이 대가야의 흔적이라면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의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주산 고분군이 200여 기의 엄청난 무덤들로 이루어진 데 반해 능산리 고분군은 불과 7기밖에 없어 찾아간 나그네들을 못내 아쉽게 한다. 대가야가 일찍 신라에 항복한 데 반해 백제는 끝까지 패권을 다투었던 강국이었던 탓에 나당 연합군이 고분들을 마구 뭉개버린 것일까? 그렇게 혼자 짐작해 보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백제의 혼'이라 불리는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 고분군에는 경주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무덤이 하나 있다. 바로 의자왕의 무덤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무덤은 경주에 없지만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무덤은 부여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능산리 고분군의 의자왕릉(오른쪽)과 태자 융의 묘. 물론 가묘이다.
 능산리 고분군의 의자왕릉(오른쪽)과 태자 융의 묘. 물론 가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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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능산리 고분군의 의자왕 무덤을 "의자왕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고 그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능산리의 의자왕 무덤은 2000년 중국 하남성 낙양시 맹진현 봉황대촌에서 의자왕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 그 자리의 흙을 가져와 만든 가묘이다. 그래도, 비록 의자왕릉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곳에 서면 애잔한 마음이 가슴 한켠을 휩쓸고 지나간다. 나그네가 답사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능산리 고분군도 국가 사적이지만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 또한 국가사적이다. 능산리 고분군이 백제의 사비 시대(538~660) 왕족묘라면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 시대(475-538)의 것으로 추정된다. 송산리 고분군이 유명해진 것은 그 중 한 고분이 무령왕의 묘소로 확인된 1971년 이후부터다.

송산리 고분군에서는 모두 7기의 옛날 무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송산리 고분군은, 능산리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고령 주산 고분군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다. 세 곳 모두 옛날 무덤들이 산 일원에 옹기종기 모여 고분군을 이루고 있지만, 숫자상 각각 7기뿐인 송산리와 능산리 고분군은 주산 고분군에 견줘 규모상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송산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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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구시가 자랑하는 불로동 고분군은 이들과 견줄 때 어떤 수준일까? 오늘 필자는 내용에 어울리는 지명도를 못 얻은 불로동 고분군을 소개하려 한다. 무덤들이 축조된 연대,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숫자를 기준으로 할 때 불로동 고분군은 널리 알려져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답사지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불로동 고분군은 4-5세기에 축조된 무덤들이다. 이는, 불로동 고분군이 고령의 주산 고분군이나 부여 능산리, 공주 송산리 고분군보다 앞선 시대의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경주의 진평왕릉, 선덕여왕릉, 무열왕릉 등등보다도 먼저 축조되었다.

게다가 불로동 고분군은 모두 211기나 되는 많은 무덤들로 이루어져 있다. 200여 기를 헤아리는 주산 고분군은 그래도 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두 합한 숫자이지만, 불로동 고분군은 산책로를 따라 얕은 언덕에 모조리 운집해 있어 남다른 장관을 보여준다. 만약 봉분들이 요즘의 개인 묘지들처럼 크기가 작았더라면 근래에 생긴 공동묘지가 아닐까 착각할 지경이다. 그만큼 이 지역은 신라에 흡수되기 이전까지는 막강한 세력을 가진 집단이 웅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스모스가 핀 불로동 고분군
 코스모스가 핀 불로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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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불로동 고분군에 불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산림청이 건조한 날씨, 예년보다 높은 온도, 드센 강풍 때문에 '산불 우려가 크다'며 걱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는데, 전국적으로 20여 곳에 산불이 나는 와중에 국가 사적인 불로동 고분군도 불에 탔다. 발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30분 동안 타오른 불은 고분군 중 500㎡의 잔디밭을 시커멓게 만들었다고 했다.

'문화재 애호가' 또는 '역사유적 답사가'를 자처하는 필자가, 그것도 대구에 살면서 불로동 고분군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곳에 아니 가볼 수는 없다. 불이 난 이튿날 아침 조간신문을 받은 필자는 부랴부랴 불로동 고분군으로 달려갔다. 화마가 지나간 무덤들은 마치 빡빡깎은 맨머리에 먹을 뿌린 듯 처참한 모습이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평상시라면 절대 올라갈 수 없는 봉분 꼭대기까지 올라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무덤 주위의 나무들도 불에 타 죽어 어떤 것은 밑둥만 남겨진 채 잘라졌고, 더러는 하늘을 향해 높게 세워둔 숯처럼 시커멓게 서 있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은 '물이 지나간 곳은 남은 게 없지만, 불에 탄 데는 남는 게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불은 났지만 고분들은 무너지지 않고 고이 남아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잔디가 탔으니 봄이 오면 더 새파랗고 튼튼한 새싹이 날 거야'하고 말했다. 아주 긍정적인 생각이다. 물론 이곳과 같은 사적지에 불이 나서는 결코 안 되지만, 그나마 대여섯 봉분만 검게 그슬리고 나머지 200여 기들은 무사했으니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에 탄 불로동 고분의 모습. 봉분의 하단만 노란 잔디가 남았고 윗부분들은 모두 타서 검게 변했다.
 불에 탄 불로동 고분의 모습. 봉분의 하단만 노란 잔디가 남았고 윗부분들은 모두 타서 검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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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불에 탔지만, 거의 대부분은 피해를 입지 않은 불로동 고분군, 여전히 아름답고 산책길도 멋지다. 우리나라 대표 고분은 천마총, 황릉대총, 봉황대 등이지만 그들은 고분'군'이라기 보다 '대'고분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볼 때, 아직 불로동 고분군을 답사하지 못한 분들은 이곳을 꼭 방문해보실 것을 권한다.

'불에 탄 고분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이 기회에 그 광경까지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닙니까!'하고 말하면 지나친 망언인가. 주변에 팔공산과 신숭겸장군 유적지도 있고,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수림도 있으니 빨리 발걸음들을 해보시라.   

불에 타서 죽어버린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그루터기만 남긴 풍경. 멀리 고분 사이에 화재 뒤 청소를 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에 타서 죽어버린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그루터기만 남긴 풍경. 멀리 고분 사이에 화재 뒤 청소를 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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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고분군을 청소하고 있는 광경. 사진 왼쪽 앞에 검게 그을린 나무가 애처롭다.
 불에 탄 고분군을 청소하고 있는 광경. 사진 왼쪽 앞에 검게 그을린 나무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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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불로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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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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