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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사과와 양파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사과와 양파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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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따로 생활하고 있는 딸들이 집엘 오면 가끔은 맛난 것 좀 먹으러 가자고 아양을 떤다. '맛난 것? 뭐가 먹고 싶은데?'하고 물으면 식구들 각자가 먹고 싶은 걸 말한다. 아내는 두부요리를 먹고 싶다고 한다. 큰 딸은 지글거리며 구워먹을 수 있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고, 작은 딸은 싱싱한 회를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얼큰한 칼국수가 먹고 싶다.

네 식구가 주장하는 입맛이 제각각이다. 맛나다고 추천하는 게 다 다르니, 어디로 가 무엇을 먹을까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러 갈 때도 마찬가지다. '뭘 먹으러 갈까'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맛있는 거'라고 말한다. 이때 '맛있는 거 뭐?' 하고 물으면 맛있다고 추천하는 게 각양각색이다. 맛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제각각일까? 

어느 공중파 방송에서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사람들에게 사과와 양파를 먹게 하고는 이 둘을 구분하게 하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았더라도 사과와 양파를 구분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 결과는 아주 의외였다.

껍질만 몇 개 벗겨도 눈물이 질질 흐르는 양파를 사과를 씹어 먹듯 아주 맛있게 우걱우걱 씹어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맛의 실체가 무척이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제대로 구분 할 수 없는 게 맛이란 말인가? 답은 '그렇다' 이다.

맛의 정체를 낱낱이 해부해 설명하다

<맛이란 무엇인가> 표지 사진
 <맛이란 무엇인가> 표지 사진
ⓒ 예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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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회사에서 식품 및 향료연구가로 재직하고 있는 최낙언씨가 지은 <맛이란 무엇인가>(예문당)는 '맛은 향이 지배하고 향은 뇌가 지배한다'라는 부제를 달고 '맛'의 정체를 낱낱이 해부한다.

인간들이 입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은 5가지, 신맛, 쓴맛, 짠맛, 단맛 그리고 감칠맛 이 5가지뿐이란다. 또 식품 성분의 98%는 무미, 무취, 무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표현하거나 느끼는 그 무수한 맛, 사과 맛, 딸기 맛, 오이 맛, 소고기 맛, 고소한 맛, 쌉싸름 한 맛, 짭조롬 한 맛, 새콤한 맛, 달착지근한 맛, 텁텁한 맛, 회 맛, 초코 맛… 등등은 도대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해 우리가 느끼는 맛은 식품을 섭취할 때 느끼는 '감각의 총합'이라고 한다. 미각, 후각, 촉각에 온도감각, 통각, 내장감각(영양), 감정, 분위기, 취향, 심상과 문화까지가 합해져서 내놓는 감각의 총합이 맛이라고 한다.

<맛이란 무엇인가>는 맛을 결정하거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음식물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 분자의 구조와 크기, 향, 미각, 후각, 촉각에 온도감각, 통각, 내장감각(영양), 감정, 분위기, 취향, 심상 등)의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개발 과정은 물론 그 결과가 식품문화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각종 사례와 결과로 설명하고 있어, '맛'에 대한 실체를 좀 더 입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발효, 숙성시킨 음식, 예를 들어 간장이나 된장이 익으면 익을수록 맛이 더해지는 이유는 글루탐산이 많은 콩이 분해되며 유리 글루탐산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루탐산에 대한 내용은 이미 음식물의 분자구조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5가지 맛과 향이 음식 고유의 영역이라면 이를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인체 반응과 기억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자 역할이다. 이런 반응과 기억에 따라서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같은 메뉴의 음식이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는 음식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반응과 기억 때문이다. 

임신부가 쓴 맛에 민감한 것은 태아를 지키려는 모성본능

쓴맛에 대해 9세 이하의 아이들에 있어서는 성별 차이가 발견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여성들은 쓴맛을 더 잘 느끼게 되고 특히 임신 중에는 민감도가 매우 높아진다. 이것은 태아를 지키려는 모성본능과 관련되어 있다. 쓴맛이나 떫은맛은 독성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 <맛이란 무엇인가> 63쪽

맛과 인체, 아주 원초적이고 참으로 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반응이자 조화다. 저자는 천연조미료와 인공조미료(MSG)가 과학적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고기를 익힐 때나는 그 맛과 향도 이미 조리, 열을 가하는 인공이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순수한 자연의 맛은 아니라고 한다.

양파는 양파 나름대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지만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잘 구분하지 못한다
 양파는 양파 나름대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지만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잘 구분하지 못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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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맛과 향을 기억하거나 판단하는 뇌 구조에 대해서까지 설명하고, 맛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과의 관계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맛에 대한 실체를 밝혀주는 설명은 맛 자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향기 나는 TV나 영화가 왜 쉽지 않은지를 디지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는 맛이 좋은 음식이 무조건 좋은 음식이었다. 지금은 영향과 무관하고 감각에만 충실하게 행동한다. 요리를 하면 몸에 좋아 그 맛과 향을 좋아했던 것인데, 이제는 영향과 무관하게 향과 맛만 좋도록 요리를 한다. 맛있는 것이면 몸에 좋은 것이라는 순리도 뒤집어 져서, 쓴 것이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 건강에는 안 좋은 식품이라는 엉터리 이야기마저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정말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맛이 있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 <맛이란 무엇인가> 283쪽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면서도 '맛이 뭐냐'고 물으면 답 할 수 없었던 '맛'. 맛의 실체와 변천사, 더 나아가 미래의 맛과 향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맛이란 무엇인가>에서 과학적이고 지혜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 비만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도 아주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맛의 실체를 알고 느끼는 맛이 훨씬 맛있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맛이란 무엇인가>┃지은이 최낙언┃펴낸곳 예문당┃2013.3.5┃값 1만 3800원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 맛은 향이 지배하고 향은 뇌가 지배한다

최낙언 지음, 예문당(2013)


태그:#맛이란 무엇인가, #최낙언, #예문당, #향, #글루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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