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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당시 호남의 극장 수는 총 120개로, 광주시 15개를 포함한 전남 66개, 전주시를 포함한 전북 40개, 그리고 제주도 14개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영화 산업 부진으로 문을 닫은 극장의 수가 늘어나면서 1979년에 이르면 광주시를 제외한 전남 지역의 극장은 37개로 줄어든다." (위경혜의 <호남의 극장문화사> 113쪽에서) 

위경혜의 <호남의 극장문화사> 책표지
 위경혜의 <호남의 극장문화사> 책표지
ⓒ 위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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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극장문화사>는 전라남북도 28개 시·군 지역 극장문화사를 연구·분석한 책으로, 한국 영화의 중흥기로 불리는 1950년대와 상대적 침체기로 평가되는 1970년대에 집중하여 호남 지역의 영화 수용과 발달의 역사를 다뤘다. 특히 구술과 자료를 토대로 개항장 목포, 군산 등 일부 지역의 식민시기 극장 문화를 소개하고 있어 흥미를 돋운다.

제목부터 호남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저자 위경혜(48)는 "한국이라는 단일사회 가운데에서도 지리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 변별성을 갖는 지역이고, 해방 이후와 1950년대 초중반 산업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영화 제작이 이루어졌던 지역, 특히 전북이 한국 영화의 중흥기 도래와 함께 제작보다 배급과 상영 중심지가 됐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근대의 표상인 영화와 도시가 맺는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일제 식민시기(1910) 이전부터 등장한 극장의 성격과 지리적인 위치를 살펴, 도시 공간의 사회성과 역사성에 무게를 두었다"고 덧붙인다.

호남에 극장의 최초 등장은 근대화와 식민화가 시작되던 시기로 1904년 목포시를 선두로 군산시, 광주광역시, 전주시 순으로 생겨났다. 호남의 주요 도시 극장은 대부분 1900년대 초반부터 1920년대 중반에 걸쳐 생겨나 근대문물 영화가 지역에 선보이는 기반을 마련한다. 초창기 극장 프로그램은 가부키(歌舞伎), 창(唱), 활동사진 등 이접적인 스타일이었다.

호남지역 극장의 생성과 소멸시기, 상영작, 극장 공간의 성격, 관객의 성향 등이 수록된 <호남의 극장문화사>는 저자가 2006년 4월~2007년 1월까지 만난 극장 운영자와 영사기사, 변사, 순업(巡業) 종사자, 지역 문화기관 담당자, 국악인 등 62명과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료사진과 극장 위치도를 삽입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판소리와 굿으로 대표되는 구연·구술 중심의 문화적 전통이 오랫동안 내려온 호남 지역에서는 특히 변사가 영화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알 수 있었다"며 "호남 관객은 극장 스크린을 벗어나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변사의 연행(演行) 영화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시골과 섬마을 주민들 영화관람 욕망 채워줬던 '순업'

여수시로 통합되기 전 여천시 ‘나이롱극장’. (당시 ‘나이롱’은 가짜를 의미했음)
 여수시로 통합되기 전 여천시 ‘나이롱극장’. (당시 ‘나이롱’은 가짜를 의미했음)
ⓒ 위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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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호남의 읍면 단위 시골과 섬마을 주민의 영화관람 욕망을 채워줬던 순업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로뗀바리'(露天張り)로도 불리었던 순업은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특히 1950년대 호남의 순업은 변사 동행이 필수였다. 낡은 영사기와 자막 없는 필름, 그리고 영화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시골 마을 관객들 때문이었다.

"도둑과 순경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변사가 '앞에 가는 놈이 순경, 뒤에 가는 놈이 도둑놈' 이렇게 말하는 거여, 또 다른 영화로는 불란서 파리 수도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 영화가 있었는데, 일본의 파리라고 소개를 혔어, 관객들이 웃으니까 '일본의 파리나 불란서의 파리나 파리는 파리였던 것이다'라고 허는 거여"(본문 236쪽에서)

"1950년대 영광군 불갑면 순업 일행의 가설무대에는 재미난 일들도 벌어졌다. 당시 마을에 한쪽 눈을 실명한 어른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데리고 가설극장에 영화를 보러왔다. 그가 입장 요금을 한 사람만 지급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다 제지를 당하자 '나는 눈이 한 짝이라···'하면서 넘겼다는 에피소드는 당시 풍경을 재미나게 전하고 있다."(본문 141쪽에서)

순업은 대부분 7~8명의 개인이 팀을 꾸려 운영했다. 하지만 상설관을 운영하는 극장 운영자들도 극장 운영과는 별개로 '순회영화반'을 두어 순업에 동참하였다. 섬이 많은 호남의 해안 지역에서의 순업은 외딴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고, 호남 지역 영화수용의 특징이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었는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흥행에 실패하여 지급할 여관비도 없어 밤중에 도망간 공연단체, 극장 주인의 영화 검열, 영화 상영 도중의 정전, 지역을 따라 차례대로 필름이 배급되던 당시 필름이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는 동안의 재미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소개한다.

"마을에 순업 일행이 들어오면 공짜표를 바라고 영사를 위한 배터리, 앰프(확성기), 스피커 등 기자재 운반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중략) 마을 뒷산에서 선전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우물가에 들른 순업 일행은 처녀들 중 일부러 한 명에게만 표를 주었다. 공짜표를 받은 처녀가 표를 받지 못한 다른 처녀들을 부추겨 영화를 보러왔기 때문이었다."(본문 86쪽 발췌정리) 

호남지역 극장 흥행, 1970년대 이후 내리막길로 들어서

공연을 알리는 동춘서커스단 모습. 58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공연을 알리는 동춘서커스단 모습. 58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 위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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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극장 문화사>는 일제강점기 영화 상영과 해방 이후 3년간의 미군정 실시, 정부수립 2년 후에 일어난 한국전쟁 등으로 영화제작 환경이 열악했던 1950년대 극장 무대에 올랐던 순극(純劇)과 창극, 여성국극, 남진, 나훈아 쇼, 극장 무대 밖에서 인기리에 공연됐던 서커스단 유래와 규모,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당시 서커스 단체에서 코미디와 연극을 하던 인력은 대부분 TV 방송국이나 야간업소 가수로 활동했다. 유명한 대중가요 작곡가 이봉조가 동춘 서커스단에서 나팔을 불었으며, 색소폰 연주 선두주자 장운태도 함께 활동하였다. 한국의 TV 방송 코미디 개척자라 할 수 있는 희극배우 서영춘, 남철·남성남, 백금녀 등이 동춘 서커스단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식민시기 목포에 대해 기술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가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가수 이난영(본명 이옥순·李玉順)이다. 1916년 목포의 양동 산동네에서 태어난 이난영은 초등학교를 마치기 이전 제주도에서 식모로 일하는 엄마를 찾아갔다가 극장을 운영하는 주인의 눈에 띄어 막간 가수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본문 118쪽에서)

전북 고창은 시골임에도 여성국극단과 악극단의 인기가 좋아서 임춘앵과 전옥, 낙랑악극단이 다녀갔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1952년경에도 가수 남인수와 현인의 공연이 있었다고 한다. 김승호도 한국전쟁 기간에 고창을 자주 찾은 연예인 중 한 사람. 배우나 가수들이 극장에서 공연하면 무대 위로 뛰어올라 소란을 피우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다.  

호남 지역 극장의 흥행은 1970년대 흑백 TV가 보급되고 방송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면서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하다가 컬러 TV가 기본 혼수품으로 자리매김 되는 1980년대 중반부터 결정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다. 고속도로 확장, 자가용 증가, 새로운 놀이문화 등장,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등은 영화 및 극장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는데 한몫을 더했다.

호남지역 극장 순례를 마친 저자는 "1950~1970년대 호남 지역의 극장은 근대적 규율을 습득하고 교육과 계몽이 이루어지는 근대 '문화 공간'이자,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다른 스타일과 형식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가치와 제도가 충돌,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새로운 이해가 발생하는 공간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덧붙이는 글 | 저자 위경혜는 1965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유치원 시절부터 전남 강진에서 살았고, 전남대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서른이 되는 해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 과정을 수학했다. 현재는 전남대 강사로, 광주에 극장박물관이나 영상 아카이브(Archive)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극장문화사 - 영화 수용의 지역성, 호남 역사문화 연구총서

위경혜 지음, 다할미디어(2007)


태그:#호남지역, #극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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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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