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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식이 열릴 거실의 꽃장식
입학식이 열릴 거실의 꽃장식 ⓒ 강정민

"입학생 한 명이 안 보이네요?"
"피곤했나 봐요. 잠이 들었어요."

입학식을 시작하는 해야 이 순간, 하필 주인공이 잠이 들어있단다. 어떡하나?

지난 1일, 일곱 살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푸른숲아이들의집'으로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모들이 어린이집 운영에 돌아가며 책임지는 어린이집이다. 올 한해 나는 어린이집의 '이사' 직을 맡았다. 그런 이유로 입학식 시작 시각보다 한 시간 빨리 와서 입학식을 준비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막내 아이랑 같이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탔다. 멀지 않은 길인데 도로가 꽉 막혀있다. 평소에는 3분이면 지나가는 길인데 20분이 지나도 꿈쩍하지를 않는다. '사고가 났나? 걸어갈까?' 막내만 없으면 걸어가는 게 빠를 텐데 막내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버스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사거리에 경찰이 수신호를 하며 차량 흐름을 돕는다. 경찰이 없었으면 길이 더 막혔을 텐데 사거리를 지나니 그나마 길이 뚫린다. 다행히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다. 연휴라 나들이 차가 많아서 길이 막혔나 보다. 집 앞 도로는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어서 이런 날이면 더 막힌다.

유치원에 도착하니 평소와는 달리 현관 신발장에도 부엌에도 꽃장식이 돼 있다. 내가 입학생이 된듯 기분이 좋다. 마음도 차분해 진다. 인사를 나눈  유치원 부모들은 모두 길이 막혀서 오느라 힘들었다고 한마디씩 한다. 어떤 사람은 평소보다 한 시간이 더 걸렸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거리가 가까운 나는 양반이다. 시간이 좀 지나니 입학생 가족들이 속속 도착한다.

 어린이집 현관 신발장의 꽃장식
어린이집 현관 신발장의 꽃장식 ⓒ 강정민

나는 이름표를 안 단 가족들에게 부엌에서 이름표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오늘 입학할 아이들을 데리고 현관 나오신다. 다섯 살 한 아이는 문턱을 내려가는 게 힘겨운지 선생님에게 팔을 잡아달란다. 짓궃은 다섯 살 아이는 친구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겁을 준다. 겁이 난 아인 선생님 치마 폭을 파고든다. 아이들은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고 각자 자기 볼 일 보느라 바쁘다. 입장을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이 불안 불안하다. 냉큼 아이들 곁에 가서 섰다. 아이들은 아빠들이 무지개 문을 만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다. 그런데 입학해야 할 아이는 여섯 중에 한 명이 안 보인다. 왜 한 명이 안 보이는지 선생님께 물었다.

"피곤했나 봐요. 잠이 들었어요."

아이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무척 속이 상하겠다. 하긴 잠이 든 녀석은 오전에 형의 학교 입학식에 따라 갔다 왔단다. 그러니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정작 자기 입학식에서는 자고 있으니 어쩌면 좋나? 입학식 도중이라도 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빠들이 만든 '무지개 문'을 아이들이 통과하면 거실에는 엄마와 선생님이 아이들을 함박 웃음을 보이며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빠들이 만들어 준 '무지개 문'이라는 게 뭐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빠들은 둘씩 짝을 지어서 마주 보며 예쁜 색의 헝겊을 들고 펄럭펄럭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지개 문'을 만든 아빠들 눈이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평소에는 별로 웃지 않았던 아빠들일 텐데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활짝 펴있다.

선생님은 다섯 살 아이들부터 한 명 한 명 무지개 문을 통과하게 이름을 불러 주셨다. 작고 앙증맞은 한 아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빠가 만들어준 무지개 문을 지난다. 아이가 문을 통과하는 그 순간 한 아이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아이는 엄마에게 안기고 선생님이 주신 화환을 머리에 쓰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들어가는 다섯 살 아이는 발걸음이 남 다르다. '우당탕'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맨 마지막 여섯 살 아이는 쏜살같이 빠르게 들어간다. 동생들 천천히 들어가는 것 기다리는 게 힘겨웠는지 빠르게 뛰어 들어간다.

아이들이 다 들어가자 아빠들은 천을 개어서 내게 준다. 나는 예쁜 헝겊을 바구니에 위에 올려 두면서 입가에 웃음을 머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사실 우리 집 막내 녀석은 2학기 입학으로 입학식에 부모들이 참여를 못했다. 그래서 '무지개 문' 지나기도 없었다. 이 모습을 막내가 지켜보았으면 뭐라 할 텐데, 다행히 지금은 딱지치기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초에 불을 붙이는 모습
초에 불을 붙이는 모습 ⓒ 강정민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앞에 놓인 초에 불을 붙여 주셨다. 다행히 잠들어 있던 아이도 잠에서 깼다. 아이들의 엄마나 아빠는 한 명씩 나와서 아이에게 꽃씨주머니를 목에 걸어주고 꼭 안아 준다. 곧이어 부모는 아이에게 쓴 편지를 읽는다. 아이들 표정은 뭔 말인지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못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들의 표정은 모두 진지하다. 기뻐서 방글 웃으며 편지를 읽는 부모도 있고 눈물을 참으며 편지를 읽는 부모도 있다.

"뱃속의 작은아기가 세상에서 처음 엄마를 만났던 그날, 너를 품에 안아보기도 전에 우리 아기는 간호사 누나들에게 둘러싸여 응급실로 뛰어야 했고, 이른 아침에 태어난 너를 그렇게.. 밤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너와의 첫 만남......

엄마는 이제 '수민이 엄마' 가 되어 우리 수민이가 바라보고 느끼게 될 푸른숲은 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볼게. 사랑해 수민아, 그리고 고마워."

 아빠가 아이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모습
아빠가 아이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모습 ⓒ 강정민

둘러앉은 부모들은 따뜻한 웃음으로 편지를 읽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아이와 부모는 아이 앞에 촛불을 끈다. 그렇게 입학식이 끝이 났다. 아이들은 먼 훗날 자신의 어린이집 입학식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가 일곱 살이라 이렇게 어린이집 입학식을 구경하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싶다. 아쉽다.

덧붙이는 글 | 푸른숲아이들의집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푸른숲아이들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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