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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북 경산에서 또 한 명의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몸을 던지려는 그 순간 얼마나 괴롭고 또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현직 교사로서 비통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런 일도 잦아서인지 슬픔조차 시나브로 둔감해지는 것만 같다. 불과 엊그제의 일인데도 철 지난 얘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올해도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고, 또 어디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이어갈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다. 그는 유서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런 식으로는 절대 학교폭력을 못 잡는다. CCTV의 사각지대가 많고 화질도 나쁘니 좋은 걸로 교체해야 한다'고 적었다.

학교폭력, 고화질 CCVT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

유서에 적힌 내용 때문일까. 정부가 바뀌고 새 장관이 임명됐지만, 첫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게 고작 고화질 CCTV의 확대 설치란다. 학교폭력이 주로 일어나는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인데, 얼마 안 가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모습조차 CCTV에 찍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다는 주장은 학교폭력 근절이라는 여론 속에 '한가한' 얘기라며 조롱받게 될 처지다. 

지난 11일 경북 경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 학교폭력에 피해를 당한 사실을 담은 유서
 지난 11일 경북 경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 학교폭력에 피해를 당한 사실을 담은 유서
ⓒ 경북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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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접한 아이들과 교사의 반응은 하나같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학교폭력이 CCTV 탓'이냐며 다들 한껏 조롱했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일선 학교마다 CCTV는 차고도 넘친다. 그늘진 건물 뒤편은 말할 것도 없고, 각 층 복도와 급식소, 매점과 교문 등 학교 내 곳곳을 촘촘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외려 사각지대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결국 남은 곳은, 유서에서 언급한 대로, 학교폭력이 주로 일어난다는 교실과 화장실뿐이다. 학교를 고화질 CCTV로 '도배'해서 얻으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여론에 따른 생색내기일 뿐, 별 효과가 없을 거라는 건 그들 역시 모르진 않을 거다. 몇 해 전부터 CCTV가 전국의 학교마다 유행처럼 확산됐지만, 학교폭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거칠게 말해서,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1년 365일 감시체제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에 가당키나 한가. 예산 낭비가 불 보듯 뻔한데도 애꿎게 CCTV의 부족과 화질을 탓하며 확대 설치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감추려는 행태이며 전형적인 책임 회피다. 반대 의견을 묵살한 채 강행한 나머지 발생한 예산 낭비 등의 피해는, 늘 그래왔듯, 오롯이 국민들 몫이다.

또, 이달 25일부터 30일까지 전국 525만 명 초, 중, 고등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해마다 두 차례 정기적인 실태조사는 해왔지만, 이번의 경우는 학교폭력 엄단에 대한 새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자못 남다르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학교폭력 실태를 정부가 나서서 직접 조사하니 학생 너희들 긴장하라'는 엄포일 뿐, 별 효과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교사들은 전수조사 계획을 접하고는 '군대에서 후임병들에게 받는 소원수리와 뭐가 다르냐'며 반문했다. 그들은 또 하나의 '잡무'를 받아든 채, 대통령도 관료도 학교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혀를 끌끌 찼다.

정부가 주관한 두 차례의 실태조사 외에 학교 자체적으로도 실시하는 것만도 연중 수차례다. 그런데도 이름 공개를 꺼리는 까닭에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간혹 피해 사례가 적혀있어도 사실 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거론된 이름만으로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겠지만,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는 얘기다. 곧,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와 교사가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리라 여기지 않을뿐더러, 적어도 그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조차 접었다. 그러한 현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실시하는 실태조사는 그저 멀쩡한 수업시간만 축낸다고 여긴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경찰대 졸업식에 참석해 학교폭력을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과 함께 '4대 악'으로 규정하고, 경찰이 '4대 악' 척결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 길이 외롭고 힘들지 않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학교폭력은 공식적으로 학교와 교사의 손을 떠나 온전히 경찰의 손에 내맡겨지게 됐다.

지난해 학교마다 담당경찰관이 지명돼 학교를 수시로 순찰하고, 학교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학교가 사법기관화하더니, 이젠 학교와 교사더러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서 아예 손을 떼라는 투다. 학교 내 CCTV를 경찰이 통합 관제하고, 폭력 서클을 단속한다며 경찰이 학교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할 모양새다.

이제 교사들의 역할은 정부의 '수족'이 돼 충실하게 지침을 따르고,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지식만 전달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잖아도 사제지간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아이들과 교사와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판에, 정부가 외려 학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며 숨통을 끊어내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학교폭력 대책, 유명무실

지난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말만 요란했다. 일진 경보제, 배움터 지킴이, 복수 담임제, 쿨링오프제, 학교폭력 신고전화(117) 운영, 학교스포츠 시간 개설, 학교폭력가해기록 생활기록부 기록 등 100여 개 가까이나 되는, 그야말로 백화점식 종합대책이었다. 담당자인 학생부장들조차 다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화려'했지만, 하나같이 대증요법에 불과했고 결국 불과 한 해만에 유명무실해진 것들이 수두룩하다.

한 고등학교 1층 현관 쪽에 있는 CCTV.
 한 고등학교 1층 현관 쪽에 있는 CCTV.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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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화려하고 다채로웠던' 탓인지, 지난 14일 현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지난 정부 때의 것들을 발췌해 짜깁기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해가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어느새 '대증요법'에 길들여진 관료사회의 무감각과 타성은 서글프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

이젠 말 꺼내기조차 새삼스럽지만,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교현장을 모르는, 또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관료들과, 아이들을 치안 대상으로 보려는 경찰에게 학교를 내맡길 수는 없다. 원인이야 어떠하든, 학교폭력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끼리, 또 아이들과 교사들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어차피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경찰을 비롯한 외부기관에 처리를 맡기고 방관하는 순간 학교는 더 이상 학교일 수 없게 된다.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는 꼭 그만큼 교사들의 자괴감은 깊어진다. 학교폭력은 반드시 '교육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미우나 고우나 교사의 역할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대책으로는 절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조금은 생뚱맞지만,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유니세프나 월드비전 등 기부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관심을 가져달라고 독려 중이다. 아이들과 학교폭력의 원인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가장이 돼 살아가는 에티오피아 소년과 헐벗고 굶주린 북한의 어린 아이들을 지정 기부를 통해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사진 등을 통해 그들의 고통스런 삶을 보여주며 측은한 마음을 스스로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다. 맹자가 설파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굳이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이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기성세대 역시 성찰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특히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같은 반 친구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대개 눈 감아버리는 세태다. 방관자도 가해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런 교실 내 분위기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게 바로 학교폭력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감화시키지 못하면, 그 어떤 노력도 백년하청이다.

부디 고화질 CCTV를 확대 설치해서 학교폭력을 잡겠다는 '삼류 코미디'는 그만두고, 그럴 예산이 있다면 차라리 학교마다에 전문상담사를 한 명이라도 더 배치해 달라. 학교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그들을 상시 감시하는 싸늘한 '렌즈'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주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태그:#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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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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