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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2>의 겉표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2>의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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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혐의를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다', '누군가 고발을 당했다' 모두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뉴스 기사들이다. 피의자가 유명인이거나 더욱 자극적인 죄명이라면 금상첨화다. 온갖 매체들은 낚시성 제목을 곁들인 추측 보도를 쏟아낸다.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을 담보로 한 자칭 전문가들이 향후 소송이나 수사의 진로를 예측한 글들로 넘쳐난다.

모두 하나같이 사건의 당사자가 유죄임을 전제로 한 이야기들이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시작도 하기 전인데 말이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의 인생은, 심지어 지나온 과거까지도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어 버린다.

독일 로트바일에서 개업의로 일하던 일흔두 살의 페너는 자신의 아내 잉그리트를 도끼로 토막을 내어 잔인하게 살해했다. 살인을 끝낸 페너는 담담하게 세면대에서 머리와 얼굴에 묻은 피를 씻고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이름과 주소를 말했다. 그리고 짧게 용건을 말했다.

"내가 잉그리트를 잘게 만들어 놨소. 당장 오시오."

경찰은 페너의 전화를 받은 지 불과 몇 분 만에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도착한 경관은 29년째 이 지역에서 근속했으며, 그의 가족 모두 페너의 환자였다. 경관을 바라보며 페너는 아내의 시신이 있는 지하실 열쇠를 건넸다.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페너를 힐난하며 8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페너는 단지 3년 형을 언도받았다. 구속 명령도 집행되지 않았다. 형무소에서 잠만 자고 하루 일과를 자유롭게 외부에서 보낼 수 있는 자유 공개 형벌로 대체되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를 쓴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변호사가 실제로 맡아 진행했던 사건을 간추린 것이다. 언뜻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내를, 그것도 매우 잔인하게 살인한 사람이 받은 형벌치고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문제를 법철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이 사건에는 변호할 게 없었다. 다만 법철학으로 다룰 문제가 있었을 따름이다. 즉, 처벌이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형벌을 내릴까? 변론에서 나는 처벌을 내려야 할 이유를 찾으려 시도했다. 이론은 차고 넘쳐 난다. 형벌은 충격을 주어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는 게 그 하나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 또 형벌은 범인에게 다시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거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법이란 이런 이론들을 종합하고 통일한 것이라야 한다. 다만, 페너의 경우에 들어맞는 이론은 없다. 그 어떤 것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24~25쪽)

사실 이 살인사건의 배후에는 50년 간 쌓여있던, 스스로의 맹세로 평생 가두어 두었던 분노라는 압축가스가 있었다. 페너가 꾹꾹 눌러왔던 그것이 터져버린 것이다.

베너는 결혼 초기부터 잉그리트의 욕설과 무시에 시달렸다. 페너의 행동은 모두 잉그리트의 표적이 되었다. 비난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와이셔츠가 이렇게 지저분하냐, 신문 좀 구기지 말고 읽어라, 이상한 냄새가 난다, 늘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방식이 유치하다. 매우 시시콜콜한 것까지 트집을 잡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던 페너는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50년을 살았다.

하지만 페너는 결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 즉 '잉그리트를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꿋꿋이 버텼다. 지역에서 자상하고 솜씨 좋은 의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페너의 이런 사정을 알았던 환자들은 심지어 그를 성자라고까지 여겼다. 재판장에 증인으로 섰던 우편배달부는 '어떻게 해서 그가 지금껏 참고 살아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며,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는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부당함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누가 페너에게 죗값을 물을 수 있는가? 그를 처벌한다고 해서 정의가 바로 섰다고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

페너를 법정에서 변호했던 저자는 말한다.

"재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의 문제가 첫 번째다. 그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죄 여부를 판단하면서 목사처럼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었다면,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가 두 번째 문제이다. 범인의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일에는 언제나 도덕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첫 번째 문제에만 향해있었다. 두 권의 책에 실린 총 26편의 사건들은 이러한 우리의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살인을 했다는 사실관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치열하게 얽힌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아야만 한다는 당위성 또한 알려준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건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의 삶을 자의적인 잣대로 재단해버린다. '관심'과 '사랑'이라는 겉포장을 쓰고 남이 살아온 굴곡진 인생을 멋대로 유린한다. 저마다의 삶이 소중하듯 그의 삶도 소중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삶도 세상과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맞물려 있기에, 우리와 어느 부분에서 접점을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이 들려주는 범죄 현장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 어긋남과 충돌이 빚은 고독한 무채화 같은 풍경. 진정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망과 욕망이 빗나간 지점을 찾아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2>,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갤리온 펴냄, 2011.03, 1만원.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갤리온(2010)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갤리온#김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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