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전쟁 범죄의 진실을 알린 스물다섯 청년이 있다. 그의 폭로 앞에 우리는 평화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의 이름은 브래들리 매닝. 그는 이라크에 파병됐던 미군 정보분석병이었다. 201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10년을 맞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이름이다.
이라크 전쟁을 '끝마치다'매닝이 밝힌 한 영상은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미군 헬기 조종사가 게임을 하듯 웃으며 이라크 민간인들을 사살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매닝은 세계적인 고발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이라크·아프간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39만여 건의 군사기밀자료를 폭로했다.
주요 내용은 ▲ 2004년 이라크 미군 해병대, 의도적으로 어린이와 여성 등 24명 사살 ▲ 2006년 이라크 미군 병사, 여자와 아이들 등 일가족 9명 의도적 사살(당시 이는 오폭으로 왜곡돼 보도됨) ▲ 2007년 아프간 미군 특수부대, 학교를 공습해 7명 아이들 사망 등이었다. 이로써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진실 앞에 수많은 전쟁범죄들이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거짓 명분으로 자행됐음이 증명됐다.
이 폭로로 인해 미국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전세계 여론은 거세졌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하고 종전을 선언했다.
'매닝의 용기', 세계로 퍼지다진실의 힘은 강했다. 아랍 혁명의 시작이었던 튀니지 혁명의 배경에는 매닝이 폭로한 25만 건의 미국 외교기밀전문이 있었다. 튀니지 혁명의 계기가 됐던 튀니지 청년의 분신 열흘 전, 매닝이 폭로한 미국의 외교전문이 밝혀졌다.
그 내용은 대통령 일가가 혈연·혼인 관계를 통해 튀니지 정계·재계를 주무르고 있으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집트 혁명 첫 대규모 시위(분노의 날) 한 달 전에는 당시 29년째 정권을 이어온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종 전까지 권좌에 앉을 것"이라고 했다는 외교 전문이 밝혀졌다.
하지만 매닝의 용기있는 행동의 대가는 참혹했다. 매닝은 '간첩죄'라는 명목으로 미군에 구속돼 현재 1000일 넘게 불법 구금 상태에 놓여있다. 그는 약 11개월 동안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을 독방에 갇혀 있었으며, 속옷을 벗게 하는 등의 모욕적인 조치가 아무런 제재 없이 취해졌다. 올해 6월에 예정된 첫 재판서 매닝은 종신형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매닝의 용기에 감동한 전 세계의 시민들은 "내가 바로 매닝이다! 나를 먼저 구속하라!"고 외치며 석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시민들도 "매닝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영웅"이라며 매닝의 석방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속에서 매닝은 2011년부터 3년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브래들리 매닝의 용기 있는 행동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며 성명을 내기도 했다.
매닝은 지난 2월, 법정 사전심리를 통해 "미국의 전쟁 속에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첨단 무기 앞에도 진실과 양심은 결코 꺾일 수 없다는 듯, 지금 매닝은 선한 양심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이런 매닝을 지키는 것은 21세기 전쟁과 분쟁 속에서 희생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고, 사라진 진실을 바로 보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나눔문화 홈페이지(nanum.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