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에서 현재 볼 수 있는 전탑 중 가장 오래되고 큰 안동 '신세동 칠층 전탑'(국보 16호). 그러나 '법흥리 칠층 전탑'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볼 수 있는 전탑 중 가장 오래되고 큰 안동 '신세동 칠층 전탑'(국보 16호). 그러나 '법흥리 칠층 전탑'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탑(塔)은 고대 인도어인 범어(산스크리트어) 'Stupa'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화한 말이다. 무덤의 성격을 지녔던 탑은 석가모니 출생 이전에도 인도에 존재했는데, 사람들이 불교적 상징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세기 초 이후부터다. 제자들이 석가모니의 사리 봉안을 위해 축조한 탑을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까닭이다.

불교가 전래되어 왔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목탑이 세워졌다. 그 후 건축 기술이 발달하자 돌을 깎아 탑을 세우기 시작했고, 7세기 초반 미륵사에 최초의 석탑이 탄생했다. 미륵사의 절집들은 조선 중기 이후 자취를 감추었지만 탑만은 지금도 남아 국보 11호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돌로 만든 탑이 많다. 하지만 목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재료의 특성상 영구 보존이 불가능한데다 불에 약하기 때문이다. 만약 황룡사 목탑 등이 지금 건재하다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크게 각광을 받을 터인데, 몽고의 광란으로 전소되고 말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목탑은 모두 없어졌고 석탑은 무수히 건재

석탑에 비해 전탑(塼塔)은 아주 적게 만들어졌던 듯하다.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인 전탑은 나라 안에 5기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것도 석탑이 온 나라 곳곳에 무수히 존재하는데 비해 전탑은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전탑은 벽돌을 먼저 제작한 후 그것을 쌓아 탑을 세워야 했으므로 석탑에 견줘 공정이 복잡하고 경비가 많이 드는 단점 때문에 극소수만 제작된 듯하다.

그런가 하면 모전(模塼)석탑도 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그것으로 탑을 쌓았기 때문에 '전탑을 흉내내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물론 전탑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탑 양식이지만, 그래도 석탑에 비해서는 만들기가 번거로웠으므로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최초의 모전전탑은 국보 30호인 분황사 탑이다. 

 보물 56호인 안동의 '동부동 오층 전탑'. 바로 옆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이곳이 본래 절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보물 56호인 안동의 '동부동 오층 전탑'. 바로 옆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이곳이 본래 절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전탑을 구경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볼일이 있어 경북 안동에 갔다가 내친 걸음에 전탑을 '많이' 구경했다. 나라 안에 5기뿐인데 안동 시내에서 셋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많이' 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팔공산 자락에 외로이 남아 있는 송림사 탑을 본 게 전부였다. 나머지 하나는 여주 신륵사에 있다.

규모가 장대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법흥리 7층 전탑은 원형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한국 최고(最古)의 전탑이다. 당연히 국보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도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으로 올라가는 도로 바로 왼편의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 시대 같으면 장쾌하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즐기려고 정자를 세웠을 법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선 철길이 가로막고 있어 탑은 높이가 17미터나 되는데도 도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원하게 뚫린 접근로도 없어 철둑 아래로 난 지하통로로 들어가야만 어렵사리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철길 때문에 터가 비좁아져서 탑 주변은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다. 통일신라 때에는 법흥사라는 사찰의 마당에서 위용을 뽐냈을 터인데 지금 처지는 스산하기만 하다.

법흥리 전탑 국보 16호, 동부동 전탑 보물 56호

안동역 바로 오른쪽 공터에 위치하고 있는 동부동 오층전탑도 사방이 어수선하기는 법흥리 칠층전탑과 '난형난제' 수준이다. 유료주차장 안을 통과해야 접근할 수 있는데다, 대형 건물들과 간선도로 사이에 끼여 겨우 숨을 쉬는 듯한 형국을 하고 있다. 명색이 국가 지정 보물 56호인데 주변은 거의 난장판에 가깝다.

이 탑도 높이가 8.35m나 된다. 석가탑이 8.2m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탑이 아니다. 하지만 규모가 두 배 이상이나 되는 법흥리 칠층탑을 방금 보고 온 탓에 어쩐지 동부동 오층탑은 작게만 보인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 때문에 은연중 홀대받고 있는 인간세상의 '동생'을 보는 듯하다.
 조탑동 전탑
 조탑동 전탑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곳 전탑에는 볼거리가 하나 덧붙어 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100호인 당간지주가 탑 바로 뒤에 남아 있어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 당간지주는 옛날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당간지주 뒤로 들어가 탑을 그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물 57호 조탑동 오층전탑

둘에 견주면 그래도 조탑동 오층전탑은  숨을 쉬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탑이 너른 잔디밭 가운데에 있고, 다시 사방이 들판이라 전방위적 압박을 받는 신세는 모면했기 때문이다. 법흥동 칠층전탑을 달세, 동부동 오층전탑을 1년 사글세라고 한다면, 조탑동 오층전탑은 적어도 전세 정도는 충분히 되어 보인다.

조탑동 오층전탑도 보물 57호로 지정되어 있다. 1층 몸돌의 감실 좌우에 새겨져 있는 두 인왕상이 어린아이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이 탑의 높이는 8.65m. 1층 몸돌이 벽돌로 만들어지지 않고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 탑만의 유난한 특징이다.

그런데 조탑동 탑은 그 스스로도 전탑 중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지만, 인근에 유별한 방문지를 갖추고 있어 또한 각광을 받고 있다.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이 주거하였던 집이 바로 그것. 마을을 관통하는 옛날 도로를 가운데에 놓고 탑과 선생의 집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탑도 절을 잃고 홀로 남았고, 집 또한 주인을 떠나보내고 저 혼자 쓸쓸히 남아 있으니, 조탑동을 찾은 나그네는 어쩐지 저절로 애잔해진다.

 송림사 전탑과 대웅전. 팔공산 입구에 있다.
 송림사 전탑과 대웅전. 팔공산 입구에 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조탑동 오층전탑을 떠나 대구로 내려오는 중앙고속도로에 몸을 싣는다. 조탑동 탑이 남안동IC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중앙고속도로로 오르기는 정말 간편하다. 한 시간 정도 제한 속도에 맞춰 달리면 다부IC에 닿는다. 여기서 내려 팔공산 자락을 찾아 들어서면 아직 산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송림사가 물가에 서 있다.

송림사(松林寺)라면 솔숲이 울창한 절이 연상되지만, 이름과 사찰의 풍광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그래서 나그네는 잠시 '이 절 일대가 옛날에는 어마어마한 소나무들로 에워싸여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하면서 허전함을 달래게 되지만, 이내 눈길을 사로잡는 황홀경에 홀려 그 허전함은 잊게 된다. 전탑 때문이다. 보물 189호, 높이 16.13m.

 송림사 전탑
 송림사 전탑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이 탑은 본래 감실이 있었는데 과거 언젠가부터 메워져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송림사 오층전탑은 국보인 법흥리 칠층전탑과 모양, 크기, 분위기가 엇비슷한데다, 탑신 위에 상륜부가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보물이다. 물론 지금 현장에서 보는 것은 1959년 보수하면서 원형을 모조해둔 작품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육안으로 12m 이상 높이에서 시작되는 상륜부의 풍령, 보륜, 용차, 칠주 등을 생생하게 감상할 것까지는 없다. 그저 보기만 좋다는 말이다. 

보물 189호 송림사 오층전탑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섯 기의 전탑 중 안동에서 셋, 팔공산 자락에서 하나를 보았다. 나머지 하나는 여주 신륵사에 있는데 아직 못 보았다. 하지만 전체의 80%를 두루 감상하였다. 특히 여주 신륵사의 보물 226호 전탑은 고려 시대의 작품이므로 '나라 안에 남아 있는 삼국 시대 전탑을 100% 다 보았다'고 큰소리도 칠 수 있는 일이다. 이만하면, 숫자로는 네 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전탑을 '많이' 보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2013년 3월 19일에 다녀왔습니다.



#전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