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찬호가 쓴 <돈의 인문학> 겉 표지
김찬호가 쓴 <돈의 인문학> 겉 표지 ⓒ 문학과지성사
당신에게 필요한 돈은 얼마인가요? '10억 만들기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행복해질까요? 돈을 축척하고자 하는 욕망은 맹목적인 데다가 끝도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보다 더 맹목적인 돈에 대한 욕망은 왜 끝이 없을까요? 김찬호가 쓴 <돈의 인문학>은 돈과 삶의 관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철학적 작업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돈은 '프라이버시'에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수입이나 재산은 물론 지갑은 부부사이에도 은밀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또 돈에 대한 느낌이나 욕망 역시 솔직하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의 인문학>은 돈과 삶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돈에 관한 흥미 있는 작은 주제들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돈이 좋은 일곱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간편하게 소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돈은 한순간 획들 할 수 있고 소유권 유지도 수월합니다. 셋째, 간단하게 증여됩니다. 넷째, 은닉이 쉽습니다. 다섯째, 가치중립적입니다. 여섯째, 널리 통용됩니다. 일곱째, 자가 증식을 합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이 생기며, 돈 때문에 권력을 세우기도 하고, 돈 때문에 권력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돈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바로 이 느낌 때문에 돈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지요.

저자는 이 책에서 '돈의 기원' '사람의 몸값' '연봉과 보상금' '숫자의 함정' '재난 상황에서의 돈' '통화의 남발과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여러 자료와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박보다 더 위험한 부동산 투자

특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투기 경제와 부동산에 대한 성찰은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부동산 투기가 도박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도박은 참가자들끼리 벌이는 게임이지만, 부동산은 투기판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집값이 저절로 뛰어올라 부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오로지 내 집 마련을 위해 성실히 일하며 돈을 모아왔는데 꿈이 점점 멀어지기도 한다."(본문 중에서)

부동산 시장은 수백만 명이 수억 원씩 판돈을 걸고 뛰어들 뿐만 아니라 은행 돈까지 빌려 띄어드는 거대한 도박장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세계적 규모에서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게 돼 많은 사람들이 돈의 연계 고리에 더욱 긴밀하게 얽히게 됐습니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라고 불리는 '도박장'은 집값이 낮아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을 위기에 몰아넣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형국인 셈입니다.

저자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사실은 수많은 머니게임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끝없이 성장하는 로또 시장, 세계최고의 도박 중독율, 상식을 뛰어넘는 재테크 열기와 주식 투자 현상이 그 근거입니다. 투자 금액이 늘어나고 참가자 수도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투기 자본의 이동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빨라졌다고 합니다.

규모와 숫자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파국의 위험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습니다. 판이 커질수록 전문가들조차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어지고, 누군가는 늘 손해를 감수하는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시장이 확대될수록 노동자·소비자·투자자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서로 충돌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보다 소비자의 힘이 세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던 샐러리맨이 퇴근 후에 쇼핑을 할 때는 깍듯한 대접을 받는다... (중략) 그런데 소비자보다도 힘이 센 것은 투자자가 아닐까. 다만 그 힘이 일상에서 좀처럼 의식되지 않을 뿐이다."(본문 중에서)

투자자의 힘이 세다는 것은 돈의 힘이 막강한 탓이고, 이 때 돈은 일종의 유전자처럼 자기 증식과 복제를 통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돈은 오로지 더 많은 돈으로 불어나기 위해 줄기차게 나아갈 뿐이라는 것이지요.

빈곤 탈출을 돕는 착한 돈

그러나 '돈'에 이런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빈곤 탈출을 위해 움직이는 그라민 은행의 소액 대출과 지역 화폐의 존재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금융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저 신용자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008년 현재 그라민은행은 누적 대출기금 75억여 달러, 방글라데시 전역에 2500여 개의 지점을 두고 770만여 명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다. 대출금 상환율은 99%에 이른다."(본문 중에서)

그라민 은행의 성공사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몇 가지 비슷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비슷한 성과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돈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공동체 내에서 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과 지역도 소개됩니다. 바로 지역 화폐입니다. 198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레츠는 1996년 한국에도 소개됐습니다.

지역 화폐를 통한 거래는 시장경제에서 배제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해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공동체에 재능을 제공하고, 경제적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지역 화폐가 '돈을 통해 사회적 관계와 협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우애의 경제를 디자인하자고 제안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우애의 경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저자는 생활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비즈니스·지역 화폐·재활용 가게·공정 무역 등의 경제적 실험들을 통해 비시장 내지 반시장의 영역이 확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돈의 성격을 바꿔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도구로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투자하는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합니다. 눈먼 돈의 행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저자는 우리에게 확장된 돈의 개념에 주목해보라고 권유합니다. 독자들에게 '당신의 자산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뺀 자산으로 '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가치에 주목합니다. 사회적 관계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환산해보겠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중한 병에 걸려 큰돈이 필요한데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주변 지인들로부터 십시일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액수는 얼마쯤 될까? 셈하기가 어렵다면 이렇게 계산해보자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그 사람이 같은 위기에 처했을 경우 그에게 얼마 정도 도움을 줄 용의가 있는가?"(본문 중에서)

A는 100만 원, B는 50만 원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적은 그 합계 금액이 바로 내가 잠재적으로 받을 수 있는 원조입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상대방도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지식·경험·관심·시간 같은 다른 관계망들도 중요하겠지요. 아무튼 그런 관계망들도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돈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 많은 인생이 행복한 인생인 것이지요.

돈과의 관례를 리모델링하라

저자 김찬호는 책의 말미에 돈과의 관계를 리모델링하라고 권유합니다. 결핍과 풍요의 역설에 주목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김승희 시인의 시 <식탁이 밥을 차린다>를 인용합니다.

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
니나리치가 나를 뿌린다
CNN이 나를 시청한다
타임즈가 나를 구독한다
신발이 나를 신는다
길이 나를 걸어간다
신용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신용카드가 나를 분실 신고한다

시인은 결핍과 풍요의 역설을 이야기하는데, 소비 사회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도 경험하지 못한 물질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 어느 시대에도 경험한지 못한 결핍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저자는 결핍감의 근원을 설명하는 종교철학자 파니카르의 인터뷰를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슈퍼마켓에서 서로 다른 10개의 상품을 놓고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일까요? 이미 결정된 제안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면 제안이 많아질수록 자유도 많아진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소비는 자유가 아닙니다. 부처는 바라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본문 중에서)

소비는 결코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소비를 통해 더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뜻도 있지요. 절대빈곤의 상태가 아니라면 돈이 아닌 삶의 보람과 행복의 원천을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의 원천은 자연과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자연을 가치의 근원으로 보지 않으면 파멸과 고갈을 피할 수 없고, 사람을 도구로 삼을 때 사회는 난폭해질 수밖에 없지요.

"마음의 힘과 창조성이 사람 사이의 협동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 돈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돈이 욕망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나의 필요와 타인의 능력을 이어주는 가교가 돼야 함은 물론입니다.

돈과 새로운 관계 맺기는 사람과 사람의 새로운 관계 맺기, 사람과 자연의 관계 맺기와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돈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면 삶의 존귀함과 부유함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2011)


#돈#김찬호#인문학#사회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