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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이 13일 국회 대표실에서 새로 선임된 비대위원들과 함께 한 기자간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이 13일 국회 대표실에서 새로 선임된 비대위원들과 함께 한 기자간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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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은 '혁신'을 부르짖었다. 민주당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사즉생', '선당후사', 환골탈태'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러나 그 약속은 3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60년 전통 야당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던 민주당의 결의는 지지부진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위원장 선출 방식이다. 당초 민주당은 대선패배의 책임을 진다며 중앙당 지도부뿐 아니라 지역단위 간부들도 모두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지역위원장들은 총사퇴했다. 그러나 현역 지역구 의원은 고스란히 지역위원장 자리에 다시 앉았다. 21일 현재까지 193명의 지역위원장이 확정된 상황. 기존 지역위원장이 재선출 된 경우는 90%에 달한다.

투표율이 낮아도 찬성표만 많으면 지역위원장으로 선출되는 구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역 대의원 혹은 권리당원에게 '찬반'을 물어 50% 이상의 찬성을 얻을 시 지역위원장으로 확정하고 있다. 그런데 투표율 자체가 매우 낮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투표율이 50%를 넘기지 않은 곳이 80%에 달한다.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꼽은 민주당이 지역위원장 선출에서조차 당원의 마음을 담지 못한 것이다.

투표하는 사람만 투표하고, 나머지는 무관심한 채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 이는 대표성의 문제를 불러온다. 또한 동원 가능한 대의원·권리당원 위주로 투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00% 찬성표를 던진 지역구가 79개나 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인단인 대의원을 지역위원장이 선출하는 것 역시 문제다. 지역위원장이 대의원을 뽑고, 또 대의원이 지역위원장을 뽑는 구조다. 기존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제도다.

이처럼 '혁신'한다던 민주당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계속 이렇게 가면 민주당은 곧 문을 닫을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투표율 '3.3%'여도 찬성표만 많으면 지역위원장에 당선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지역위원장 199명(193명 가결, 6명 부결)의 선출대회 결과를 살펴보면, 선거인단의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는 지역구가 154개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의사를 물어 지역을 대표할 위원장을 세운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한 지점이다.

전체 선거인단의 10%도 투표하지 않은 지역구가 5개나 된다. 10~20%를 기록한 지역구도 10곳이다. 충남 아산(김선화 지역위원장)의 경우 전체 선거인단의 3.3%인 25명만이 투표에 참여했으나 이들의 100% 찬성으로 지역위원장이 결정됐다. 충남 당진(어기구 지역위원장) 역시 20명(투표율 4.2%)의 100% 찬성으로 지역위원장이 뽑혔다.

심지어 2009년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가 지난 1월 특사로 피선거권이 회복된 김종률 전 의원도 지역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지역위원장 선출대회에서 김 전 의원은 전체 894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85명(9.5%) 투표, 84명의 찬성으로 위원장에 선출됐다.

이 밖에도 투표율 20~30%는 26곳, 30~40%는 29곳, 40~50%는 34곳, 50~60%는 50곳으로 나타났다. 90% 이상 투표율을 보인 곳은 2곳, 80~90%는 3곳, 70~80%는 25곳, 60~70%는 15곳에 그쳤다. 낮은 투표율 속에, 찬성 비율이 앞도적인 것 또한 대표성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79개 지역구에서 100% 찬성이 나왔고, 90% 이상 찬성을 받은 지역도 97곳이다. 반면, 50% 이상 찬성을 받지 못해 선출안이 부결된 지역은 6개에 그쳤다.

문용식 민주당 혁신위원회 위원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공산당도 아니고 100% 찬성이 나오는 선거가 말이 되냐"고 목소리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 성동을(홍익표 지역위원장)의 경우 17.3%(전체 353명 중 61명)의 투표율에도 100% 찬성으로 지역위원장을 뽑았다. 투표율에 상관없이 '찬성률'만으로 지역위원장을 선출하다보니 벌어진 사태다.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이 지난 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매서운 칼바람에 날이 저물어도 끝까지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뜻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1,000배를 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이 지난 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매서운 칼바람에 날이 저물어도 끝까지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뜻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1,000배를 올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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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투표율은, 투표 날짜와 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인천, 강원, 경북 등의 지역에서는 평일 오후에 1시간 동안 투표하는 곳도 다수다. 투표 시간도 오후 2시, 3시, 5시 등 직장인들이 투표를 하기 부적합한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강원도 지역의 한 대의원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투표를 평일에 한 시간 동안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대선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했던 민주당이라면 당 내 선거도 많은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지역위원장 선거에 누가 출마했고, 후보자가 어떻게 지역을 이끌 것인지에 대해 설명 듣지 못한 채 '투표가 있으니 참가하라'는 문자만 받았다고 한다.  

그는 "대선 때 당의 밑바닥이 죽어 있었다는 걸 문제 삼더니 지금 달라진 것이 뭐가 있냐"며 "선출대회를 통해 당원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과거에 그냥 임명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지역위원회는 권리당원, 대의원들의 투표참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최대한 투표하지 않게 해서, 지역위원회의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질 사람만 투표를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 이렇게 가면 민주당은 곧 문을 닫을 거 같다"고 우려했다.

위원장은 대의원 임명하고 대의원은 위원장 뽑는 '순환 구조'

선거인단 구성도 문제다. 민주당 대의원은 지역위원장이 임명한다. 결국 지역위원장이 뽑은 대의원이 또 다시 지역위원장을 뽑는 구조다. 이 속에서 '현역 의원·현 지역위원장'이 지역위원장을 다시 맡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문 혁신위원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유신정우회(대통령이 임명한 국회의원으로 유신정권을 지탱하는 역할을 함) 같은 구조"라고 힐난했다.

문제는 또 있다. '유령당원'이 지역위원장 선출대회에 선거인단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현행 당규에 따르면, 해당 지역 대의원의 수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권리당원이 선출대회에 참여하게 돼 있다. 그런데 권리당원은 3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할 것을 약속한 후 1개월 당비를 납부할 시 자격을 얻게 된다. 결국 하루 전에 당비를 납부한 사람도 권리당원으로서 지역위원장 선출에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역 의원 역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지난 20일, 지역위원장 선출 결과를 보고한 당무위원회에서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당에서는 진짜 당원을 찾기 위해 당원 정리를 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지역위원장을 선출하면 한쪽에서는 또 유령당원이 만들어지는 거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했다. 그럼에도 당무위는 지역위원장 선출 결과를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 같은 구조는 몇 년 전부터 문제시돼왔다. 이에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전당대회 룰을 확정한 직후, '지역위원장은 30인 이상(외부 위원 절반 이상)으로 구성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단·복수로 추천하고 복수 추천된 지역위원장 후보는 권리당원 전원의 투표로 경선을 치른다'는 개선안 도입을 당 지도부에 권고했다.

지역위원장 후보 심사를 맡는 당 조직강화특위는 계파별로 안배돼 있어, 이 구조를 바꿔야 담합을 깰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지도부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혁신안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 혁신위원의 설명이다.

문 혁신위원은 "당의 국민과 지지자의 요구가 혁신하라는 것이고, 혁신의 출발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며 "그래서 지도부와 지역위원장을 바꾸자는 건데 지역위원장의 경우 기존 인물의 90% 이상이 다시 지역위원장이 되고 있다, 말로만 혁신을 얘기하면서 사실상 혁신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작은 기득권을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만을 강화시켜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지역위원장 선출대회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4월 총선 경쟁을 통해 지역위원장이 된 후 1년이 안 된 시점에 지역위원장을 재선출한 것"이라며 "본래 지역위원장이 대부분 (재선)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절차를 거쳐야 하니 선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보여주기식'이라는 게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지역위원장 선거 과정이 민주주의의 일반적 관점에서 문제 있다는 지적은 인정한다"며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당원 전수조사를 통해 혁신을 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혁신된 모습으로 결과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민주당,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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