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죽은 자의 세상에서 다시 산 자의 세상으로

나일강, 유람선, 크루즈, 룩소르 신전
 나일강, 유람선, 크루즈, 룩소르 신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멤논의 거상을 보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탄다. 그런데 이번에는 버스가 우릴 나일강변 엘 게지라 선착장에 내려준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강 건너 룩소르까지 5분이면 가기 때문이다. 강 건너에 우리가 타고 온 크루즈선이 보이고 그 뒤로 룩소르 신전이 보인다. 강 위에는 여객선과 펠루카들이 왔다 갔다 한다. 룩소르 선착장에 내리니 정박한 펠루카들을 볼 수 있다.

선착장 계단을 따라 도로에 올라오니 기도하는 무슬림들을 볼 수 있다. 12시가 조금 지났지만 정오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씻는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크루즈선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제 12시 30분에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30분까지 휴식을 취하면 된다. 오후에는 2시 30분부터 카르나크 신전을 보고, 5시부터 룩소르 신전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열을 지어 가는 펠루카
 열을 지어 가는 펠루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먹고 나는 배의 선 데크로 올라간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참 좋다. 이곳에서 나는 나일강 건너 저 멀리 있는 왕가의 계곡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오후에 가게 될 바로 앞 룩소르 신전을 조망해 본다. 둘 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지로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이다. 강에는 배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그때 일군의 펠루카가 열을 지어 운행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돛을 전혀 펼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는 걸까? 바람이 불지 않으니 앞에서 동력선이 이들을 선착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들이 마치 퍼레이드를 하는 것 같다. 역시 강에는 배가 있어야 제 맛이 난다. 관광객들은 선 데크에서 차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오후의 여가를 즐긴다.  

아문 신을 모신 대 신전 카르나크

작은 오벨리스크, 숫양 스핑크스, 탑문
 작은 오벨리스크, 숫양 스핑크스, 탑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2시 30분이 되어 버스에 오른 우리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향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시내 북쪽에 있다. 차는 10분도 되지 않아 우릴 카르나크 신전 주차장에 내려준다. 우리는 관광안내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진과 모형도를 통해 카르나크 신전을 공부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중심이 되는 가장 큰 신전이 아문(Amun) 신전이다. 그리고 아문의 아내 무트(Mut)를 위한 신전이 있고, 아문과 무트의 아들인 몬투(Montu)를 위한 신전이 있다.

이들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운동장이 나온다. 이곳이 아문 신전의 현관에 해당한다. 운동장 너머로 성벽 형태의 제1탑문이 보인다.  좀 더 가까이 가자 작은 오벨리스크가 하나 서 있다. 이곳부터 아문 신전이 시작된다는 표시 같기도 하다. 오벨리스크 뒤로 탑문까지 숫양 머리를 한 스핑크스 수십 마리가 좌우로 도열해 있다. 이들은 신전을 지키는 위병으로 파라오와 신들을 지키고 보호해준다. 신전이 만들어진 신왕국 시대 이 길은 나일강 부두까지 이어졌다.

람세스 3세 신전의 오시리스 석상
 람세스 3세 신전의 오시리스 석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 길을 지나면 제1탑문이 나온다. 탑문은 길이가 113m, 두께가 15m, 높이가 45m에 이른다. 탑문은 벽돌로 만들었으며, 겉면이 떨어져 나가 벽돌이 드러나 보인다. 탑문을 지나면 커다란 전실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가장자리에 스핑크스가 도열해 있고, 좌우로 두 개의 소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 세티 2세 신전이 있고, 반대편에 람세스 3세 신전이 있다. 세티 신전에는 나일강 범람을 기념하는 오페트(Opet) 축제에 사용되는 배를 넣어두었다고 한다.

람세스 3세 신전 입구 문 앞에는 람세스 3세 석상이 좌우를 지키고 있다. 오른쪽의 것은 얼굴이 많이 훼손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 석주가 안마당 좌우로 나란히 서 있다. 이들을 지나면 신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입구에 검은 화강석으로 된 발 부분을 볼 수 있다. 이 석상이 바로 람세스 3세다. 그것은 기단부 측면에 새겨진 카르투쉬 상형문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람세스 3세 석상 기단의 카르투쉬
 람세스 3세 석상 기단의 카르투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 문자는 람세스 3세의 즉위명(Thronname)으로 우세르-마트-라-메리-아문(User-maat-Ra-meri-Amun)이라 읽는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아문의 사랑을 받는 라의 진실은 강하다'가 된다. 그래선지 카르나크 신전을 우리는 아문-라 신전이라고 부른다. 신전 내부에는 특별한 것이 없고, 지성소도 텅 비어 있다. 이들을 보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이제 제2탑문 앞으로 간다. 탑문 입구에 역시 거대한 석상이 있는데, 람세스 2세다. 탑문의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길 양쪽으로 굵은 기둥이 이어지고 그 뒤로 그 보다 가는 기둥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서 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대 열주실이다. 대 열주실은 가로 100m 세로 50m로, 전체 면적이 5000㎡쯤 된다. 이곳에는 16줄에 모두 134개의 기둥이 서 있다. 기둥의 높이는 24m이고 기둥의 둘레는 10m나 된다. 이들 기둥에는 신과 파라오와 관련된 수 많은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기둥과 천장
 카르나크 신전의 기둥과 천장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천정의 채색 카르투쉬
 천정의 채색 카르투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이들 기둥 위에는 지붕이 있었으나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천정 일부에 채색한 그림과 카르투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 표현된 동식물 그리고 자연이 어찌나 사실적이고 선명한지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다. 이들을 보면서 동쪽으로 가면 탑문 너머로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하나는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고 다른 하나는 하쳅수트 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와 스카랍이 담고 있는 수 많은 이야기들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오른쪽)와 하쳅수트 오벨리스크(왼쪽)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오른쪽)와 하쳅수트 오벨리스크(왼쪽)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두 오벨리스크 중 하쳅수트 오벨리스크가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보다 더 크고 정교하다. 그것은 시간이 가면서 오벨리스크 만드는 기술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투트모스 1세는 하쳅수트의 아버지로 기원전 1500년경 13년 정도 이집트를 통치했다. 그는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실 일부와 제4, 제5 탑문 그리고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 오벨리스크로 높이가 21.2m이다.

하쳅수트 오벨리스크는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보다 커 높이가 30m이다. 그녀는 제4탑문과 제5탑문 사이에 오벨리스크를 하나 세웠고,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를 세우다 부러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부러진 오벨리스크의 상단 부분이 현재 제7탑문 앞마당에 넘어져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오벨리스크의 상단 부분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부러진 하쳅수트 오벨리스크의 부조
 부러진 하쳅수트 오벨리스크의 부조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오벨리스크의 상단 삼각뿔 부분에 보면, 하쳅수트가 아문 신으로부터 파라오의 자격을 인정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위 카르투쉬에는 그녀의 즉위명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마트-카-라(Maat-ka-Ra)라고 읽으며, '라의 정의와 생명력'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성으로 남성이 하는 파라오를 했던 여걸 하쳅수트, 그녀는 정치와 건축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통치이념에서도 정의와 생명력을 강조했고, 아문-라신의 사랑을 받았던 최초의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카랍
 스카랍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부러진 오벨리스크 옆에는 스카랍으로 알려진 쇠똥구리 석상이 있다. 이것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부활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부조와 석상으로 신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 주위를 돌며 저승에서 부활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벽에 상형문자로 숫자를 표시한 것이 있다. |, ∩, ϱ의 세 가지 숫자가 보인다. 이게 우리의 1, 10, 100이다. 주변에 있는 상형문자까지 해독하면 숫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집트인들은 이와 같은 정수뿐 아니라 분수와 제곱근(√) 개념까지 사용했다고 하니, 그들의 사고력이 현대인에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을 나오며

이곳을 지나 우리는 아문 신전의 끝에 있는 지성소까지 간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가운데 제단 같은 것만 있고 휑한 편이다. 벽 쪽을 보니 수 많은 신들의 부조가 있고, 천장에는 천신 누트(Nut)를 상징하는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천신 누트와 지신 겝(Geb)이 결혼해 네 자식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아들이 호루스고, 호루스의 부인이 하토르다.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하늘에는 누트 외에 태양신 아몬과 라가 있다. 아몬은 무트와 결혼해 아들 콘수(Khonsu)와 몬투를 낳았다. 그러므로 무트는 천국의 왕비이자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추앙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문과 라는 기원전 21세기 경부터 몬투를 대신해서 테베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신왕국 시대 아문과 라는 오시리스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이 되었다. 그래서 카르나크 신전도 아문과 라에게 바쳐진 것이다.

카르나크 신전에는 아문 신전 외에 몬투와 무트 신전이 있지만, 우리는 이들을 생략한다. 이제 아문 신전을 나오면서 그동안 놓친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3500년 세월을 견딘 신전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곳곳에 파괴되고 훼손된 흔적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흙이나 벽돌로 만든 것들이야 세월 속에 무너져 갔지만, 돌로 만든 것들은 우리 인간에 의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오시리스상을 보호하고 있는 스핑크스
 오시리스상을 보호하고 있는 스핑크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신상과 파라오는 제 자리를 떠나 한 곳에 모여 있기도 하고, 오벨리스크는 이집트를 떠나 파리로, 로마로, 터키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제 이들 문화유산은 제 자리를 모른 채 그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나라로 반출된 유물은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고향을 몰라서, 고향을 알아도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문화유산의 신세를 보면서 또 마음이 아프다.  

아문 신전을 떠나면서 신전을 지키는 스핑크스들을 또 한 번 살펴본다. 이들은 턱 아래 두 발 사이로 파라오를 상징하는 오시리스 상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후대에 만든 화강석 스핑크스도 보인다. 그동안 해가 많이 기울어서 탑문과 신상을 보는 느낌이 다르다. 관광객들도 많이 줄었다. 우리는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 탑문과 스핑크스로를 빠져 나온다. 주자창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룩소르 신전이다.  


태그:#카르나크 신전, #람세스 2세, #아문 신전, #투트모스와 하쳅수트 오벨리스크, #람세스 3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