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군에 있을 때 처음 담배를 배웠다. 충남 해안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소대원들 마음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며 중대장이 전입선물로 담배 한 보루를 사줬다. 담배 끊기가 어려워진 지금을 생각하면 원망스런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고마움이 더 크다. 당시 정확히 하루에 한 갑씩 소비했는데 대부분을 작업으로 고생하던 소대원들과 나눠 피웠다.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으로 소통할 줄 아는 소대장이란 소리 들으며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도 앞으로는 보기 어려워질 듯하다. 지난 14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현행 2500원에서 정확히 80% 증가한 4500원으로 담뱃값 인상안을 발의했다. 정부 역시 OECD 다른 회원국 수준에 맞춰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담배가격은 호주(12000원), 영국(11500원), 프랑스(9480원), 독일(7400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낮은 담배 가격으로 인해 OECD 회원국 중 남성 흡연율은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매년 물가상승률이 3~5%였던 것을 감안하면 2004년 12월 이후 단 한 번도 담뱃값 인상이 없었던 점은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한번에 2000원이나 오른다는 사실, 무작정 받아들이기엔 부담이 크다. 특히 80%의 과한 인상 폭이 문제인데 자세히 살피면 정부의 인상 안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 OECD 다른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최저임금 대비 담배 한 갑에 대한 체감가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정성훈(30)씨도 호주에 처음 갔을 때, "우리나라보다 5배쯤 비싼 담뱃값 때문에 놀랐지만, 실제 임금대비 비교해보니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상기 [표-1] 'OECD 국가별 담배가격 및 최저임금 분석' 자료를 보면 국가별 최저임금 대비 담배 1갑의 체감가격을 알 수 있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우리보다 3~4배 담뱃값이 비싼 나라들도 실제 체감가격은 우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 요구안 맞춰 4500원으로 2000원 가격을 인상할 경우, 최저임금 대비 담뱃값은 다른 OECD 회원국과 비해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92.5).
일본의 자료를 살펴보면 담뱃값 자체는 우리보다 2000원 정도 비싸지만, 체감가격(45.0)은 우리나라(51.4)보다 저렴하다. 그런데도 흡연율은 우리보다 5.4% 낮다. 정부가 강조한 '담뱃값이 낮을수록 흡연율이 높다'는 부분과 차이를 보인다. 저가의 담배가 흡연을 조장한다는 주장과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흡연가? '웰빙'에서 소외된 서민들누구나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는 이유, 단순히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 서민층이 그러한데, 대체로 소득 수준과 직업의 불안정성에 따라 흡연율 차이가 크다. 이 현상은 2000년대 이후, 소위 '웰빙'바람과 맞물려 더욱 뚜렷해 졌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통계 2011'에 따르면 소득 대비 흡연율 추이가 소득수준 상위 그룹일수록 큰 폭으로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소득수준 하위 계층은 다른 그룹에 비해 감소폭이 적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실제 담배 한 갑에 영향을 받는 상당수가 최저임금과 직접 연관되는 저소득층임을 의미한다. 사회불안과 경제악화로 쌓인 스트레스를 담배 이외의 방법으로 풀지 못하는 '웰빙'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 중 1000만 이상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성인 남성 중 47.3%, 여성 중 6.8%에 해당하는 수다. 수치만 놓고 봐도 국민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담뱃값에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 담뱃값을 인상하고자 한다면 국민 눈높이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
최저임금 대비 체감 담배가격이 낮아도 국민의 흡연 수치가 우리보다 낮다. 핵심은 파격적인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국민이 '왜' 담배를 피는지에 대한 원인 고찰과 해결 노력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게 최저임금의 동반 상승 역시 고려돼야 한다. 분명한 건, 담뱃값을 높이면 당장 흡연율은 감소하겠지만, 국민의 스트레스까지 낮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