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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논문 표절 문제, 안타깝다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직장의 신> 제작발표회에서 국내최초 자발적 계약직 미스김 역의 배우 김혜수가 논문 표절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직장의 신> 제작발표회에서 국내최초 자발적 계약직 미스김 역의 배우 김혜수가 논문 표절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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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논문 표절 때문에 사회가 시끄럽다. 으레 논문 표절이라 하면 공직자 인사청문회장이나 국회의원 공천심사장에서나 흘러나오는 단어이거늘, 이번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TV에서 자주 봐왔던 방송인들이 자신의 논문 표절을 일부 인정한다며 사과하기에 급급하다.

예컨대 스타강사 김미경은 MBC <무릎팍도사> 2부 방영 금지에 이어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고, 김미화 역시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으며, 김혜수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학위를 반납하겠다며 허리를 굽혔다. 학위와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이들의 논문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형국이다.

물론 논문 표절은 부적절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현재 우리의 학사 시스템 속에서 논문 통과는 학위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만큼, 논문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갖다 베낀다면 그것은 공부를 하는 사람의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며, 상아탑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는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논문 표절이 파렴치를 넘어 절도에 가까운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최근 고위 공직자를 뽑는 데 있어서 논문 표절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은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논문표절 때문에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이제 결코 서구 선진국의 일만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번 일련의 사태들이 불편하기만 하다. 분명 논문 표절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언론들이 그 개인들을 마녀사냥 하듯 여론몰이해도 되는지, 그들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혹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조선일보>가 김미경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염병을 던졌던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에 몰락시키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왜 이런 논문 표절이 계속해서 일어나느냐는 것이며, 이를 개인적인 부도덕으로만 치환시켜 비난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 논문 표절은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다. 논문 표절이 개인을 떠나 사회적으로 워낙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미경이 언급했듯 일부 대학에서는 많은 이들이 별 생각 없이 남의 글을 갖다 인용하면서 주석을 달지 않으며 그것이 커다란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 한다.

이는 결국 제대로 된 논문작성과 논문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만큼 논문이 학위를 받는 데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목상으로는 논문작성이 학위수여에 있어서 결정적인 조건이지만 실제로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구색만 맞추면 누구나 제출할 수 있는 논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쓸 수 있고, 심지어 돈만 있으면 대필도 할 수 있는 논문.

그렇다면 학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논문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가 그 사람의 가능성이나 내적 충실함 대신 스펙에만 연연하니 많은 이들이 학위 한 줄을 덧붙이기 위해 학문적 목적은 생략한 채 자본만 투자하게 되고, 학교는 그 학위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대학을 가야 사람 취급을 받는, 그래서 국민 대부분이 대학을 가는 기형적인 사회의 결과물인 것이다.

예전처럼 석박사가 귀하고, 석사 논문만 가지고도 그 분야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평가 된다면 과연 논문이 이런 취급을 받겠는가? 현재 우리 사회의 석사논문 수준은 과거 학부의 졸업시험 대신 제출했던 학사의 논문 수준과 다를 바 없다. 과도한 학력 인플레가 이뤄지며 논문이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논문 표절 논란의 이면에는

구조적으로 논문 표절을 양산하는 사회. 문제는 이런 현실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 언론들이 이 표절 문제에 대해 구조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책임을 더욱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그 책임에 관해서는 공인이라는 이유로 고위 공직자들과 여타 방송인들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자. 과연 그들의 표절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고위 공직자들의 논문 표절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박사 학위를 받거나 교수직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그 논문이 하나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직자에게는 박사학위나  교수직이 위치를 지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반면 앞서 언급했던 방송인들에게 논문은 하나의 구색에 불과하다. 학력 인플레 사회에서 그들의 논문은 한 줄 이력일 뿐이다. 대중들이 그 학위 때문에 그들의 프로그램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 논문 표절 사건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결국 이와 같은 언론의 호들갑이 가져올 역효과 때문이다. 그들의 구분 없는 비판은 오히려 표절을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현상으로 인식시켜, 정작 논문 표절의 책임을 엄하게 묻고 따져야 하는 이들의 죄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고위공직자의 논문 표절과 어느 배우의 논문 표절을 등치시켜 논문 표절의 심각성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엄연히 불법이지만 너무 자주 언급돼 이제는 큰 죄도 아닌 것 같은 위장전입과 같은 꼴이다.

논문 표절은 분명 잘못된 행위이다. 논문을 써봤던 사람으로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그렇다고 모든 논문 표절을 똑같이 싸잡아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회 구조적으로 논문 표절이 양산되는 만큼 그 죄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가려서 비판해야 하며, 표절의 근본적인 근절을 위해서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응시해야 한다. 그것이 동시에 기형적인 우리의 학사 시스템과 학력 인플레를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만만한 연예인들의 논문 표절 시비. 이제 그만하자.


태그:#논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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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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