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포대 입구에서 바라 본 천황봉(왼쪽)과 사자봉
 경포대 입구에서 바라 본 천황봉(왼쪽)과 사자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약속시간 오전 9시에 답사대원 22명이 월출산 경포대에 모였다. 경포대는 강릉 경포대만 있는 게 아니다. 월출산에는 금릉 경포대가 있다. 여기서 금릉(金陵)은 월출산 능선에 비치는 석양이 황금빛을 띄어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 같다. 그리고 경포대(鏡布臺)는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베처럼 구불구불하고, 그것이 거울처럼 맑아 경포대가 됐을 것이다.

우리는 대원을 5개 조로 편성해서 바로 산행의 출발지인 월출산 국립공원 야생화단지로 향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국립공원 직원이 벌써 우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야생화 단지는 황량하기만 하다. 우리는 국립공원 직원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바로 사자봉을 향해 출발한다. 선두에는 이홍식 대장이 서고, 마지막에는 김일동 송광사 학예연구사가 선다. 왜냐하면 그들이 월출산의 지리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조릿대 너머 모이는 매봉
 조릿대 너머 모이는 매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은 자연보호를 위해 평상시 출입을 금하고 있다. 우리는 불교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때문에 특별히 출입이 허용된 것이다. 길은 완만하고 비교적 잘 나 있다. 한 20분쯤 오르자 드디어 조릿대 무성한 언덕이 나타나고,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자봉 보다는 우뚝하고 뾰족한 매봉이 먼저 보인다. 사자봉은 매봉의 왼쪽에 있는데 아직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사자봉은 천황봉에서 뻗어 나온 지능선 중 하나로, 그 모습이 사자의 옆모습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무성한 조릿대 너머로 펼쳐지는 사자봉 능선은 정말 웅장하고 기개가 있어 보인다. 요즘이 산불조심 기간이라 그런지 매봉 위로는 산불감시 헬리콥터가 지나간다. 나는 잠시 몸을 돌려 지나 온 길을 되돌아본다. 멀리 동쪽으로 병영과 수인산성, 장흥 방면의 산자락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이룬다. 수인산성은 강진군과 장흥군의 경계를 이루는 수인산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사자봉 아래 귀부형 석등

귀부형 석등
 귀부형 석등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여기서는 또한 가까운 영암 쪽의 사자저수지와 강진 쪽의 양자봉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10분쯤 오르니 다시 평평한 능선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먼저 '금강거사 해주최공 현지묘(錦江居士海州崔公現之墓)'라는 비석을 만난다. 그리고 그 옆에 귀부형 석등이 있다. 석등이라고 하면 하대석과 간주석 그리고 화사석과 옥개석이 있어야 하는데, 하대석에 해당하는 귀부만 있다.

그런데 귀부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귀부의 등에는 간주석을 세웠던 구멍이 깊게 파여 있다. 구멍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석등 주변에 앉아 민학기 선생의 해설을 듣는다. 이곳에 있는 귀부형 석등은 전형적인 석등의 양식을 벗어난 이형 양식이다. 귀부는 좌우의 폭이 좁고 높이가 높으며, 등갑을 상당히 두툼하게 표현했다. 이로 인해 안정감과 균형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네 개의 꽃잎으로 된 복련
 네 개의 꽃잎으로 된 복련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귀부의 머리 부분은 파손되었는데, 남은 부분을 통해 머리가 위로 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부의 머리가 들려있다는 것은 헤엄쳐 나감을 의미한다. 등갑의 상단 간주석 주변에는 꽃잎이 네 개인 복련을 조성했다. 그리고 등갑에는 육각형의 귀갑문이 새겨져 있다. 등갑의 하단부는 팔각형이며, 등갑과 발이 바로 연결되고 있다. 발에는 발가락을 세 개 표현했다. 그리고 발과 발 사이, 뒷발과 꼬리 사이에는 반구형의 장식을 만들어 붙였다. 이것은 거북이 헤엄치는 형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귀부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귀부는 머리를 치켜들고 앞으로 나가는 반야용선의 모습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석등의 조성 시기다. 민학기 선생은 석등 자체만으로는 연대 측정이 어려워, 주변에 있는 탑재를 통해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석등 주변에는 옥개석과 우주가 새겨진 감실 탑재가 널려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개, 초층 탑신석에 감실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천룡사지 귀부
 천룡사지 귀부
ⓒ yinolbu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이 석등의 귀부는 경주 천룡사지 귀부에서 그 친연성을 찾을 수 있다. 천룡사지 귀부는 석등용이 아니라, 경문(經文)을 새긴 돌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 시대 작품이다. 민학기 선생은 이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우왕골 석등형 귀부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학계에 보고된 귀부형 석등으로는 여수 흥국사 석등이 유일하다. 흥국사 석등은 조선 후기인 18세기 중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귀부형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 천룡사지 귀부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고려 후기 월출산 우왕골 석등을 통해 나타났다가, 조선 후기 여수 흥국사 석등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월출산 우왕골 귀부형 석등은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우왕골 양면불 이야기

이순규 원장이 우왕골 양면불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순규 원장이 우왕골 양면불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이제 우왕굴 양면불을 찾아간다. 이 양면불은 사자봉으로 가던 능선길에서 왼쪽으로 100m쯤 아래 위치한다. 그러므로 석등과 석탑 그리고 양면불이 같은 절의 영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면불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길가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뒷면을 보기 위해 뒤집어 놓고 가면, 다음 사람이 와서 전면을 보기 위해 또 뒤집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뒤집히는 신세를 면한 것이 1992년이다.

1992년 4월 25일 남도 불교문화연구회를 이끌던 이순규 원장이 탐진 향토문화연구회와 공동으로 양면불을 일으켜 세웠다. 당시 부처님을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게 좋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상당수 회원이 남향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그 결과 조각이 좀 더 정교하고 예술적인 전면이 남쪽을 향하게 되었다.

우왕골 양면불
 우왕골 양면불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 후 1998년 3월에 양면불을 보수했고, 2006년 3월에 실측을 하는 등 양면불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불상의 역사와 조성 경위, 조각수법 등에 대한 학술적인 논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불상은 하단이 넓고 상단이 좁은 자연석을 이용해, 저부조로 표현한 좌상이다. 높직한 육계와 그 아래 나발이 분명하고, 얼굴 윤곽도 확실하다. 코를 돋을새김으로 표현했고, 눈과 눈썹 그리고 입의 윤곽선도 뚜렷하다.

목은 짧은 편이어서 삼도가 희미하고, 법의의 옷주름이 좌에서 우로 선명하게 이어진다. 수인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었는데, 오른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은 항마촉지인이라는 주장이 가장 우세했다. 다리는 결가부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전면 부처가 이처럼 빛을 받아 조각이 그나마 선명하다면, 후면은 조각의 선명도가 뚝 떨어진다. 그것은 아마 후면이 겉으로 드러나 마모가 심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양면불의 후면
 양면불의 후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불상에 나타나는 나발과 육계, 상호, 법의와 수인, 결가부좌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나 그 형상을 분명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럼 이 불상이 언제 조성되었을까?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한다. 이는 이미 알려진 양면불을 참조하여 내린 결론이다. 이때 참조한 불상이 경주 보리사 석조여래좌상과 남원 만복사지 석불입상이다. 그러나 실제 이들 양면불간 친연성을 찾기는 어렵다.
 
천황봉 가는 길

이들을 보고 나니 오전 계획이 다 끝난 셈이다. 이제 사자봉을 넘어 천황봉 아래 약수터로 가는 일만 남았다. 약수터 근방에 마애삼존불이 있기 때문이다. 사자봉을 넘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고 위험하다. 그 대신 주변의 기암괴석을 가까이서 그리고 높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길은 사자봉을 우회해 나 있다. 사자봉을 넘자 앞에 천황봉에서 형제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암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구정봉과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구정봉과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들 산줄기 동쪽으로 영암 들판이 펼쳐진다. 월출산은 영암과 강진의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이 더 대단해 보인다. 산을 넘으니 이제야 저 멀리 등산객의 모습이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천황사에서 출발 구름다리를 건너고 삼봉 사이 고개를 넘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천황봉 서쪽 구정봉과 향로봉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산의 가운데에는 월출산의 주봉 천황봉이 웅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말 동서로 이어지는 월출산의 주능선이 유장하고 멋지다. 이홍식씨가 이번 답사를 기획하면서 문화재만이 아닌 월출산의 암릉미를 보여주기 위해 계획을 짠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계곡을 따라가는 지름길도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가는 탐방로가 월출산 암릉미를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정규 탐방로가 아니어서 일반 관광객은 들어올 수가 없다.

천황봉 동쪽의 암릉과 영암들
 천황봉 동쪽의 암릉과 영암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남쪽으로는 양자봉과 그 너머 강진만이 펼쳐진다. 사방으로의 조망이 참 좋다. 마지막으로 위험하고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니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이어진다. 이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구름다리와 천황봉 방향에서 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우리는 서쪽 천황봉 방향으로 접어든다. 사람들이 많다. 드디어 천황봉으로 오르고, 경포대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황봉으로 오른다. 나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가는 삼존암지 마애불이 약수터 근방에 있다. 약수터는 천황봉 능선 삼거리에서 경포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쉽지만 일행과 함께 하산길을 택한다. 이곳에서 약수터까지는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약수터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목포에서 배달받은 이학 도시락이다. 그런데 이 도시락이 웬만한 식당밥보다 낫다. 육류, 어류, 채소류가 골고루 갖춰진데다 밥까지 맛있기 때문이다. 또 산행까지 했으니 밥이 안 맛있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3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월출산 불교 문화유산을 찾아 다녔다. 찾아 다녔다고 쓴 것은 이들 문화유산이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찾아 다닌 것은 이들을 세상이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이들 문화재의 특징과 가치에 대해 6회 글을 쓸 예정이다.



태그:#사자봉, #귀부형 석등, #우왕골 양면불, #천황봉, #약수터의 점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