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지동시장은 요즈음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바로 곁에는 이름이 없어 '무명시장'이라고 호탕하게 웃는 장사꾼이 있는 시장이 있다. 점포라야 한 30여 곳. 그 중에는 문을 닫은 지가 오래인 상점도 있다. 지동시장에서 남수문 곁으로 터진 성 밑을 지나게 되면 만나게 되는 골목시장. 이곳은 남수동에 속한다.
27일 오후 시장 구경에 나섰다. 수원천 옆에 자리한 수원사라는 절집 담을 끼고 몇 개의 노점상이 줄지어 있고, 그 앞쪽으로 소망세광교회 앞으로 이어진 골목으로 점포들이 있다. 한가한 듯, 한편에선 문 닫힌 점포 앞에서 윷놀이들도 하고 있다. 인구 120만의 대도시 수원에, 이렇게 한적한 시골의 장거리 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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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수원천을 끼고 형성된 장거리는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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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장 좁은 골목에 양편으로 상점이 있어 마치 어느 시골의 장터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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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이름이 없어, 그냥 '무명시장'이랄까!"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생선가게며 과일상회, 야채, 신발가게, 기름집에 옷 수선집도 있다. 허름한 식당도 있고, 열쇠집도 있다. 그야말로 어느 작은 면 단위의 장거리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곳의 백미는 일방통행 길가에 있는 1960대의 점포들이다. 대장간, 솜틀집, 국수집들이 나란히 옛 간판을 간직한 채 자리하기 때문이다. 장을 느릿하게 걸으면서 구경을 한다.
"이 장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요?""이 장? 모르지. 이름이 없어. 그냥 '무명장'이라고 불러.""무명장요?""이름이 없으니 무명장이지."호탕하게 웃는 웃음을 뒤로하고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대장간 앞으로 가니, 마침 시뻘겋게 불을 지피고 한창 쇠를 담금질 하고 있다. 몇 번이고 불에 달궜다 물에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가게 앞에 서 있는 손님에게 무엇을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산에 약초를 캘 때 쓰려고 주문한 것으로, '호파'라고 부른단다. 괭이처럼 캐는 것이 아니고 식물 밑으로 집어 넣어 그대로 떠 올릴 때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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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철공소 인구 120만의 수원에 남아있는 철공소. 안으로 들어가면 대장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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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명 직원을 거느렸던 정대봉 장인간판에는 붉은 글씨로 '동래철공소'라고 쓰여 있다. 화덕에는 뻘건 불이 연신 불꽃을 뱉어낸다. 올해 62세라고 밝히는 대장장이 정대봉씨. 이곳에 와서 풀무질을 한 지 벌써 15년째란다. 원래 이 집은 처삼촌인 고 김달봉씨이 40여 년간 운영을 하던 철공소였다. 그것을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본인이 맡아서 한다는 것.
"저요, 한때는 부하직원을 70명이나 거느렸었죠. 용인 풍덕천 쪽에 있는 회사에 공장장이었는데, 일본도 자주 다녔고요. 그때 제 월급이 350만 원에 공장장 수당 30만 원을 더 받았어요. 그리고 차도 한 대 내주고요.""그런데 왜 그만두셨어요?""그곳에 물류창고가 들어왔거든요. 그래도 할 일은 다했죠. 아들 둘 다 대학 보내고 장가보내면서 아파트 한 채씩은 해주었으니까요. 원래 제가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가 있었나 봐요.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와 세 번만 분해하면 바로 다 조작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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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굼질 대장간에서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를 다루는 동래대장간 정대봉 대장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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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공장에 들어가 공장장이 쇠를 다루는 것을 보고, 남들보다 먼저 실습을 마쳤단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을 한 사람이 공장장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저 그래도요. TV에도 여러 번 나오고, 신문에도 자주 났어요.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와요."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아마 지난 세월이 생각나는가 보다. 요즈음은 직접 찾아와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단골들 때문에 열심을 낸다고 한다.
항상 부지런함이 몸에 밴 대장장이"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날은 하루 종일 서 있어요.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문을 닫죠. 음식점의 칼, 미장용 가위, 농사꾼의 낫, 심지어는 무속인들의 작두까지 만들어 보았다죠. 아마 나만큼 그동안 쇠를 많이 다룬 사람도 흔치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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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치질 요즈음은 손으로 망치질을 하지 않는다. 기계로 달구어진 쇠를 망치질을 하고 있는 정대봉 대장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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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재미있느냐는 물음에 재미없었으면 이 날까지 쇠를 다루고 있겠느냐고 하면서, 지금도 오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50년 동안 자리를 지킨 동래철공소. 그리고 그곳에서 2대를 물리며 15년간 쇠를 다룬 대장장이 정대봉씨.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철공소의 모습에서, 옛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e수원뉴스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