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7일 저녁,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정종삼씨 부부가 철야농성장에서 동구 지역상인들을 돕기 위해 울산 시민들이 서명한 용지를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27일 저녁, 울산 동구 방어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정종삼씨 부부가 철야농성장에서 동구 지역상인들을 돕기 위해 울산 시민들이 서명한 용지를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제 말이 맞았죠. 결국 2차 저지선도 무너진 겁니다. 이제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될 겁니다."

27일 오후 9시, 울산 동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 방어점' 바로 맞은편에 쳐진 비닐천막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디스카운트마트' 주인 정종삼씨(42)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홈플러스가 지난달 2월 25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점을 개점한 후 지난 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인근 동네슈퍼가 폐업한 날이다.

그는 지난 16일 현장취재 때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익스플러스의 영향으로 골목상가 1차 방어선이 이미 무너졌고 곧 2차 방어선도 무너질 것 같다" 고 했다. 그 말을 상기한 것이다.(관련기사 : <노점상과 공생하던 골목상가, 왜 전쟁터 되었나>)

그는 최근 지역 상인들이 만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점 철수를 위한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지난 21일에는 울산상인대회를 열고 상복을 입고 거리행진을 하며 익스플러스 자진 폐점을 요구했고, 현재 거의 매일 밤 비닐천막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금껏 촛불 한번 들어보지 않았다는 그가 어느 날 투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율, 골목슈퍼 2.5% 대형마트 1.5%... 왜 이렇나"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지난 16일 기사에 누리꾼들이 수백 개의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댓글 중 절반 이상은 동네슈퍼와 정좀삼씨를 나무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주로 '동네슈퍼는 카드가 안 된다. 대형마트가 가격이 더 싸다. 지금껏 사회현실에 참여하지 않다 자기가 어려워지니 나선다' 등이었다. 그에게 이런 지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씨는 일부는 반박했지만 현실참여 부분에서는 겸허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현재 동네슈퍼들도 대부분 카드 결제를 받고 있다. 혹시 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사회현실을 봐야 한다. 대형마트와 골프장의 카드 수수료율이 1.5%인데 반해 골목슈퍼는 2.5%다. 이게 말이 되나. 중소상인들이 하루 종일 일해 번 돈 2.5%를 금융사가 가져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대형마트보다 배 가까이 수수료율이 높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동네슈퍼들이 대형마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항변했다. 그는 "똑같은 물건인데 한쪽이 싸다면 유통과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납품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결국 힘없는 중소납품업자들이 부담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현실참여가 없었다는 누리꾼 지적에 대해서는 송구한 뜻을 비췄다. 그러면서 정씨 부부가 슈퍼마켓을 천직으로 삼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정종삼씨는 울산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 급여의 절반도 안 되는 데 회의를 느꼈다. 결국 아내와 슈퍼마켓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10년 전의 일이다.

10년 동안 4곳의 슈퍼마켓을 옮기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다. 현재 운영 중인 '디스카운트마트'는 종업원을 둘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크다. 그는 점점 불어나는 규모에 "슈퍼마켓이 천직이구나" 생각했단다. 하루하루가 신나는 날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4년 전 인근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면서 이들 부부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정종삼씨는 "홈플러스와 우리 가게는 버스로 네 정류장 거리다. 처음에는 설마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말했다. 결국 대형마트의 공세는 인근 골목슈퍼는 물론 3km가량 떨어진 정씨 가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런던 차에 한 달 전 다시 바로 인근에 홈플러스 익스플러스가 기습 개점하자 부부가 거리로 나선 것이다.

동네 주민들도 응원... "우리 모두의 일이다"

27일 저녁 10시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왼쪽)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점 철수를 위한 대책위원회' 철야 농성장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가운데 30대 동네 아저씨(가운데) 대책위를 응원하기 위해 야참을 준비해 왔다
 27일 저녁 10시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왼쪽)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점 철수를 위한 대책위원회' 철야 농성장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가운데 30대 동네 아저씨(가운데) 대책위를 응원하기 위해 야참을 준비해 왔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이곳은 15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지만 현재는 울산 동구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현대중공업 종사자들이 많이 살고 평균 소득도 높은 편이다. 또한 이 지역에 상가도 밀집돼 있지만 지역상인들이 노점상들의 '1·6장'(매월 1과 6이 들어가는 날 서는 장)과 '토요장'을 허용하면서 서로 공생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얌전하던 정씨 부부가 '투사'가 된 것에 놀라는 눈치다. 뚜레주르, 파리바게트 등 대기업 빵집과 한 골목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네 빵집 '비원' 주인은 "홈플러스 익스플러스가 들어선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레서 우리 대신 나서주는 정씨 부부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삼씨가 대책위원장이 된 것은 아내의 영향이 컸다. 아내는 "남편이 대책위 활동을 망설이기에 적극 나서라고 했다. 또 남편이 출퇴근 투쟁을 한다기에 '가게는 내게 맡기고 철야 투쟁을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동구청에까지 거짓말을 하고 살짝 기습개점 한 것도 그렇고 홈플러스가 중소상인과의 상생 약속을 어긴 것도 정말 괘씸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홈플러스가 약속을 어겼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11년 홈플러스가 이웃 북구에 '익스프레스 매곡점'을 개점하자 지역 중소상인들이 반발했었고, 그해 6월 3일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와 홈플러스는 울산시가 입회인으로 참관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협약서에는 "양측은 정기적인 회동을 통해 상호공존과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협력방안을 협의키로 한다. 위 협약사항에 대해 양측이 상호 상생을 위해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고 중대한 위반 사항이 도출되었을 경우에는 협약서가 무효가 된다"고 돼 있다. 홈플러스는 이 약속을 어기고 중소상인과 협의 없이 홈플러스 익스플러스를 기습개점 한 것이다.

비닐천막에서 대화를 한 시간가량 이어가던 오후 10시쯤, 비닐천막 농성장에 직장인인 30대의 주민 한 사람이 야참을 들고 왔다. 그는 "주민들을 대신해 대기업과 싸우는 정씨 부부에게 힘내라고 말하려고 왔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한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김종훈 동구청장이었다. 김 청장은 "주민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 이웃 사람인 골목상가를 이용해 더불어 사는 지역이 되기를 당부드린다"며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지역 상인들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홈플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