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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갑자기 차량 한 대가 내 차를 추월해서 길을 가로막고 급정거했다. 이미 화가 많이 난 듯한 운전사 아저씨가 내 차로 다가와서 삿대질과 무슨 표현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는 이야기를 한다. 입모양으로 봐서 육두문자와 "야! 야! 아니! 귀 먹었어?" 하는 투의 막말인 것 같은데, 고래고래 소리를 치신다. 당황해서 창을 열고 왜 그러시냐고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그랬더니 서행을 하면서 먼저 가겠다고 신호를 하고 경적을 울리고 속도를 높였는데 내가 그냥 직진해버려서 충돌할 뻔했다고 하신다. 그냥 고개를 꾸벅꾸벅 하면서 "제가 소리를 못 들어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귀먹었냐고 그냥 무심히 말했는데 정말로 귀먹었다는 사람을 만난 것이 믿기지가 않으신지, 계속 뭐라고 큰 소리로 투덜거리셨다.

나는 계속 웃으면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팔을 잡으면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화내지 마세요!" 하고 꾸벅꾸벅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1년에도 여러 번 경험한다.

운전기피증만 심해지고... 결국 '목숨 건 모험'을 결단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 이종락

언젠가는 서울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내 차로 손님을 터미널까지 모시게 되었다. 그 손님은 내 청력이 나쁘다는 것을 사전에 안내받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웃고 잘 말하는 나를 보고 금세 잊어먹었는지, 아니면 조금만 못 들을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쉴 새 없이 말하셨다. 그래서 차가 잠시 정차했을 때 내가 말하였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는 말을 못 들으니 이야기는 안 하시면 좋겠어요."

그 뒤부터 내릴 때까지 손님은 창문 위의 손잡이를 잡고 무척 경직된 자세로 계셨다. 뒷자석에 앉은 그분을 룸미러로 흘끔흘끔 보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내 소임은 그분을 무사히 터미널에 내려드리는 것이니 그냥 개의치 않고 잘 모셔다 드렸다.

운전한 지 15년이 다 돼가지만 내게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은 요원하다.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차량 자체에서 나오는 소리와 탑승한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거나, 또는 먼저가겠다고 추월신호를 보내는 차량의 경적 등을 못 듣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사고 위험이 높다. 그래서 내 차는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애마가 무척 자랑스럽고, 내가 운전을 하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차에 태우거나, 또는 누군가의 무거운 악기를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이 마치 꿈 속의 일 같고 축복받은 것 같아 정말 정말 고맙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던 때, 내가 운전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가족들이 무척 반대해서 배우지 못했다. 가족은 내가 중증장애인에다 기계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위험하지 않은 환경에서 평화롭게 삶의 길을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먹고사는 것과 직결된 일을 해야 할 때가 돼서, 나는 불혹이 돼서야 운전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서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가장 새로운 기계인 애마를 만나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운 좋게 필기와 기능시험에 쉽게 붙었지만 아무도 주행연수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주행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차를 끌고 밖에 나가기면 하면 이리저리 부딪혀 점점 운전기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차하는 것도 한 번도 배우지 못해서 네모난 공간에 주차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카센터 사장은 차가 주인을 잘못 만나 불쌍하다는 농담도 하였다.

운전 경력은 15년...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은 멀구나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나는 아무도 몰래 모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고속도로를 주행해보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기도를 한 후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로 출발했다.

시속 70킬로미터로 회덕인터체인지를 지나고 나니 그 뒤부터는 넓은 도로가 좁아지고 구불구불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더욱 저속으로 가게 되었고, 덤프트럭들 때문에 두려움도 생겨 갓길에 급정거 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휴게소에서 다시 호흡을 한참 숨을 고르고 하면서 운전을 했다.

모험이라고 시작했지만 사실은 정말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고,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3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경주 석굴암까지의 길을 가는데 7시간 30분이 걸렸다. 돌아오는 길은 5시간 30분이 걸렸다. 경주를 왕복하면서 간담이 졸아들었던 위험한 운전의 경험은 그 뒤 시내주행에 무척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고속도로에서 만난 덤프트럭보다 위험한 차량은 없었고, 그때의 속도보다 더 높은 속도도 내지 않아도 되었고, 석굴암 올라가는 길과 그곳에서 기림사까지의 지그재그 길보다 더 가파른 도로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무척 간담이 졸아들어서 더 이상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주차와 운전이 서툴고 워셔액도 스스로 채울 줄 모른다. 하지만 장애차별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와 무관하게 전국 어디든지 다양한 계층과 잘 소통하면서 교육현장에서 잘 살아가고 있게 된 것에는 나의 애마의 역할이 크다.

단순히 운전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사회적 상황을 잘 견디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요원한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함께하는 애마가 있어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응모 글



#청각장애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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