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외도를 했다. 춘심을 이기지 못해 월장을 한 것이다. 또렷했던 경계는 봄 앞에서 여지없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애초 삼랑진에서 경전선이 끝나는 줄 알았으면서 기어이 낙동강을 따라 월장을 한 것이다. 경전선이야 이곳 원동역에서 한 구간만 더 가면 있는 삼랑진과 광주 송정역으로 되어 있지만 기차는 목포에서 부전까지 달리니 원동역에 온 건 엄밀히 따지면 외도는 아니라며 자위했다.
낙동강에 바짝 붙은 원동역은 한갓진 역인데도 봄철 행락객으로 북적댔다. 매화는 이미 지기 시작했고 승강장 너머 강변으로 죽 늘어서 있는 벚나무엔 꽃망울을 하나 둘 터뜨리기 시작한 성질 급한 벚꽃도 있었다. 역 광장의 버스는 하염없이 서 있었고 기차에서 우르르 내린 손님들은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 모양이 답답했는지 일부 발 빠른 승객들이 하나 둘 걷기 시작했다.
파출소를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역 광장에서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 가기에 파출소에 들어가 매화축제장 가는 길을 물었다. 중년의 지루함이 묻어 있는 경찰은 직선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면 된다고 대충 말했다. 그럼 오른쪽 강변으로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했더니 그쪽에도 매화가 있긴 한데 축제장은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때만 해도 나중에 올 엄청난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축제장은 나타나지 않고...면 소재지를 벗어났을 무렵 앞서 걸어가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도 하지. 1km 남짓 걸었을까. 마침 삼거리가 나와서 길도 물어보고 목도 축일 겸해서 '삼거리 상회'에 들어갔다.
"큰 길 따라 쭉 가면 돼요. 근데 여기서 7, 8km는 가야 되는데 걸어선 힘들 거요. 버스가 있으니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가소." 가게 주인은 아내와 아이를 쳐다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버스 시간요. 짬이 없어. 지 오고 싶으모 오고 가고 싶으모 가는 기 시골버스라. 아, 버스는 반드시 배내골 가는 버스를 타야 되오."
아까 파출소에서 매화축제장 가는 버스가 두 시에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나는 지라 일단 걷다가 버스가 지나가면 잡아타기로 했다. 근데 순매원이 이렇게 멀었나? 이상하네. 분명 역 주위로 알고 있는데... 길을 걸을수록 의문은 커져 갔다. 처음엔 버스보다 걷는 게 좋다던 아이도 점점 지쳐 가는지 한눈을 팔기 시작했다.
마을 담장 너머엔 하얀 목련이 피어났고 노란 개나리가 긴 몸뚱어리를 늘어뜨렸다. 봄을 본 아이가 냉큼 달려갔다. "아, 이쁘다!" 아이의 봄을 잠시 훔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원리 삼거리에서 원동중학교를 지나니 맞은편에서 아가씨 두 명이 걸어온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몇 번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애를 썼으나 번번이 허탕. 차들은 쌩하니 지나갔다. 두 아가씬 결국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축 늘어져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아예 히치하이킹을 단념하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버스다! 반가움도 잠시...함포마을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아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아내와 딸 그리고 나는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버스는 점점 가까이 달려오고 있었다. 온갖 희망을 담고 이제 걷는 것은 끝이라며 버스를 향해 크게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버스 창 너머로 곤란하다는 인상을 짓는 버스기사의 당혹해하는 표정이 비쳤다. 버스는 이미 콩나물시루처럼 빈 틈 없이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속도를 잠시 줄인 버스는 냉랭한 바람을 내며 앞을 지나는가 싶더니 이내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내와 딸애는 허탈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폰을 꺼내서 검색을 했다. '원동매화축제'까지의 거리가 4km가 남은 것으로 나왔다. 버스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일단 용기를 내어 걷자고 위로했다. 30여 분을 걸어도 축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저쪽에서 고갯길을 넘어오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우리처럼 부부와 딸아이 하나였다. 그들은 축제장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알고 봤더니 그곳이 아니라 원동역 쪽에 진짜 축제장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잘못 알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걸음을 옮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여 다시 폰으로 검색했다.
아뿔싸! 축제장소가 두 곳이었다. 폰에서 안내한 '원동매화축제'까지의 거리가 4km가 남은 것도 알고 봤더니 검색한 지점에서 길을 돌려 원동역 방면으로 왔던 길로 돌아가는 유턴한 거리였던 것이었다. 즉 순매원까지의 거리였다. 지도를 자세히 보니 원동에는 매화축제를 하는 곳이 두 곳이었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영포마을과 원동역 옆의 순매원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파출소 경찰이 시키는 대로 걸어 왔으니...
우리가 애초 가고자 한 곳은 원동역 옆 순매원이었다. 영포마을은 오늘 처음 안 것이었다. 하긴 경찰의 탓도 아니다. 경찰은 매화축제장을 물었으니 조금 더 규모가 큰 영포마을을 말한 것일 테고, 순매원은 그냥 강가에 있는 작은 매실농원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행자인 나로선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순매원을 물었던 것이고 영포마을의 존재에 대해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은 지루했고 여행은 비루했다. 대개 여행을 하면 10km 이상을 걷는 게 태반이지만 오늘은 아내와 딸이 함께여서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혼자라면 걷는 것이 당연한데 아이와 아내에게 9km의 아스팔트길은 가혹했다. 무엇보다 따가운 봄 햇살이 걸음을 힘겹게 했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커플이 아직 40분은 더 가야 된다는 말을 했을 때 아내는 절망했고, 아이는 체념했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탄 무리들이 지나가며 "2km" 밖에 남지 않았다고 소리쳤지만 아내는 이미 단념하고 있었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이 지경이 되니 걷는 즐거움을 역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루하고 건조한 아스팔트를 보며 마냥 걷고 있는데 내포마을쯤 왔을 때 아내의 기쁨에 겨워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버스였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아내는 깃털처럼 버스에 뛰어들었고 아이도 덩달아 나는 속도로 달려갔다. 다행히 버스는 빈자리가 더러 있었고 아내와 아이는 로또라도 맞은 양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2시간 남짓 걸었는데 허무하게도 버스는 십분도 채 달리지 않아 축제장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다니... 귀를 찢는 듯한 뽕짝소리가 버스 창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아, 이곳이 축제장이구나.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어서야 드디어 매화축제장에 도착한 것이다. 영포마을의 매화와는 이렇게 첫 대면을 하게 됐다.
길을 잘못 들어 오히려 횡재하다영포마을의 매화축제는 올해가 7번째다. 원래는 매실 주산지인 이곳에 2000년대 들어 매화꽃을 구경하기 위해 하나 둘 찾는 사람들이 있자 마을사람들이 막걸리와 부침개 등 먹을거리를 대접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축제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입소문이 나고 정식 축제가 열리면서 전라도 광양의 매화축제에 버금가는 축제가 된 것이다. 매화단지 규모도 원동면 일대의 20여 개 마을, 200여 농가 100㏊에 이를 정도다. 광양의 매화마을처럼 잘 꾸며지지도, 섬진강을 낀 수려한 경관도 아니지만 거칠고 소박한 대로 산비탈의 다랑논을 가득 메운 하얀 매화 물결은 상춘객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69번 도로를 따라 마을 전체가 매화밭인 영포마을의 매화나무는 나이가 20년 남짓 되었다. 80여 가구 130여 명의 주민들이 마을 산비탈 22만㎡의 밭에 2만 그루의 매화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는데 경남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매화마을로 알려져 있다.
한 시간 남짓 매화 구경을 하다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겨우 승차를 마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다시 20분을 더 기다린 뒤에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순매원요. 거기는 매화가 다 졌어요. 여기가 훨씬 좋아. 잘 온기라." 순매원에 가려다 이곳으로 잘못 왔다고 했더니 버스 안의 늙수그레한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허기야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영포마을의 존재는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더러 들어봤는데 어느 순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나중에 가본 순매원은 할머니들의 말대로 이미 매화가 상당히 진 상태였는데 비해 이곳은 산골짜기라 매화가 절정이었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는 8km를 걷고도 금방 생생한 기운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걸어오면서 원동의 청정 미나리와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딸기도 보았으니 지루한 중에 호강은 누린 셈이다. 버스는 다시 원동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순매원을 찾다역을 코앞에 두고 버스는 더 이상 달리지 못했다. 순매원으로 가는 도로는 이미 마비가 되어 있었다. 이럴 때 도보여행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 마련이다. 이젠 영포마을까지 8km 남짓을 걸어간 것도 아내와 딸에겐 추억으로 자리 잡았고 꼼짝달싹하지 않는 도로를 보며 아이는 기차 타고 오길 정말 잘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모처럼 여행자를 따라 나선 길에 가족들은 서서히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대체 순매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다지도 붙잡는단 말인가. 붐비는 걸 워낙 싫어하는 성미라 여태 이곳을 찾지 않았지만 경전선을 연재하면서 꼭 들를 수밖에 없는 곳이 되었다. 본격 여행을 다닌 지 15년이 다 되어감에도 나의 여행은 아직도 조금은 고집스럽다.
언덕으로 난 길가로 노점들이 하나둘 보이는 것으로 보아 순매원에 다다른 모양이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제법 번듯한 전망데크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발 아래로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선 두 갈래의 철길이 강기슭으로 사라지고 하얀 매화가 철로 변에 피어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막 연둣빛을 품기 시작한 버들과 터질 듯 끝내 터뜨리고 만 벚꽃이 강변의 운치를 더했다.
순매원. 매화는 이미 지기 시작했는지 중간 중간 하얀빛을 잃어 불그스름했다. 희붉은 매화 밭 가운데 파란 지붕을 한 민가 한 채가 유독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렬한 원색은 마치 꽃술처럼, 다소 흐릿한 매화 밭 풍경을 일순에 전환시켰다.
매화 밭으로 뛰어들었다. 꽃이 있다면 응당 관조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꽃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 그 아름다움에 흠뻑, 진창에 빠져들어야만 봄을, 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 매화가 퍽이나 고요하다.
내려다보면 듬성듬성 했던 꽃들이 아래선 꽃 대궐을 이뤘다. 이곳엔 유독 젊은 커플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꽃의 시절임을 시위라도 하는 듯 저마다 매화나무 한 그루를 붙잡고 풍성한 봄을 담고 있었다. 꽃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알록달록 자리에 드러누워 봄날의 오후를 느긋하게 즐기기도 하고, 갖은 먹을거리에 입을 쉬지 않고 놀리기도 하고, 매화나무에 기대어 그저 멍하니 꽃잎을 보고만 있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과 강아지들은 부모의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매화나무 아래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헤집으며 뛰어다닌다.
지는 매화일지언정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가의 노력은 그 자체로 풍경에 녹아들고 이따금 벌이라도 날아올라치면 작은 환호를 지르기도 한다. 철조망 너머 기찻길 옆 양지바른 곳에는 봄꽃이 소리 없이 피었다. 피었다 지기를 수어 번 반복해도 누구 하나 오래도록 눈길 주는 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하다. 그리고 높다.
흰 무리의 꽃밭에 간혹 선홍의 매화가 피어 눈길을 끈다. 절정의 미를 뽐내는 홍매화는 겨우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매화 밭에선 몇 그루 안 되는 귀한 몸이지만 사람들의 온 신경을 불러 모으는 매력을 사정없이 발산한다.
매화꽃 그늘 아래 제법 너른 공터에 화가가 자리를 잡았다. 모델이 된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그럴수록 화가의 눈은 매섭기만 하다. 뒤쪽 언덕에는 장독대가 있다. 순매원에서도 한갓진 이곳은 찾는 이가 없어 장독들이 봄볕을 마음껏 쬐고 있었다. 늘 봐도 장독대와 매화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들이다. 온통 하얗거나 붉은 매화 밭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건 젊은 커플들이다. 마치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 듯 자연스럽다.
기차와 매화, 낙동강이 빚어내는 절정의 풍경2004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관사마을 순매원에서 매년 3월에 열리고 있다. 올해는 이미 매화가 지고 있었지만 그 명성은 그대로였다. 관사마을은 옛날 원동역 관사 터에 조성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동역을 지나 토곡산 끝자락에 낙동강을 굽어보는 마을이 관사마을이다. 도로 아래 유장한 낙동강과 철로변 사이로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밭을 보고 있자면 그 그윽한 풍경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인근 영포마을의 원동 매화축제가 광양 매화축제에 비해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려한 풍광이 없다는 것인데 이곳 순매원에서 그 부족한 점이 메꾸어지는 듯했다. 영포마을의 산비탈 층층 매화 밭과 이곳 순매원의 수려한 경관을 합치면 섬진강변의 매화축제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절정의 풍경이다.
낙동강 변을 온통 새하얗게 물들이는 광양과 흡사한 이 강변 풍경과 S자로 굽이치며 달리는 철길로 최근엔 한국관광공사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맘때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산자락 끄트머리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S자 철길, 하얀 매화 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 땅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절정의 풍경이다. 삼랑진에서 이곳 원동역을 지나 물금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철길은 우리나라 기찻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이곳을 오가는 기차만 해도 하루에 수백 대가 넘는다. S자 철길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몸뚱어리가 긴 KTX인데, 지금은 이곳을 지나는 KTX가 크게 줄어들어 그 굽이치며 내달리는 찰나의 풍경을 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다만 부지런히 오가는 무궁화호나 새마을호가 아쉬운 대로 강변 정취를 대신하고 있다.
순매원에는 약 1만3058㎡(1만 평)에 조성된 100년 생 매화나무 50여 그루를 비롯해 총 8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 오래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심은 매화나무들이라고 한다. 순매원은 10여 년 전에 김용구, 박미정 부부가 강변에 조성한 농원이다.
유유히 흐르던 낙동강 건너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기차도 점점 뜸해지고 KTX는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떠나야만 했다. 막 자리를 떠나려 할 즈음 KTX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급히 카메라를 꺼냈으나 이미 늦었다. 산모롱이로 기차는 이미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강바람을 타고 꽃향기가 저녁 순매원에 흩날린다.
☞ 영포마을에선 지난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제7회 원동매화축제'가 열렸다. 원동역은 경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경전선 삼랑진역과 경부선 물금역 사이에 있다. 부전행과 순천행 경전선 기차가 지난다. 낙동강가에 있는 원동역은 매화와 벚꽃, 갈대가 고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이름난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레일과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