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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아이들을 보내고 가방에 있던 전화기를 꺼내 들여다봅니다.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교육부 "초등 일제고사 폐지" 확정!

확정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한참 머뭅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일제고사 폐지'로 검색을 합니다. 기사를 휘리릭 읽고 나서 혼자 앉아 씨이익 웃습니다.

'드디어 없어졌다. 이 끔찍한 시험이 없어졌다.'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팔딱팔딱 뛰면서 옆에 있는 누군가랑 손뼉을 마주 치고 얼싸안고 싶은 기분입니다. 학교는 이 기쁜 소식을 두고 왜 이리 적막할까요? 이 기쁨을 누구와 나누어야 할지 갑자기 어리둥절합니다. 결국 어린이집 엄마들 카톡 채팅방에 들어가, 속 시원히 만세를 외치지 못했던 손으로 톡톡 카톡을 날립니다.

교육부 "초등 일제고사 폐지" 확정! 기쁜데 기쁨을 나눌 사람이 옆에 아무도 없네. 그대들과 기쁨을 나누리오~~~*^^*

토끼 두 마리가 팔딱팔딱 뛰면서 꺄악 소리를 지르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날아오네요. 그 이모티콘를 보니 몇 해에 걸쳐 일제고사로 인해 벌어졌던 몇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가슴이 울컥합니다.

1년 육아휴직을 마치고 2010년 복직을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을 맡았습니다. 애 키우다 복직한 터라 안 그래도 어리둥절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지역 교육청에서는 각 학교 6학년 부장과 연구부장 등을 불러내서 학업 성취도 평가 준비를 위한 학교 자체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자체 계획서냐며 시험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냐고 투덜댔지만, 지역 교육청이 가지고 있는 이 시험에 대한 긴장감은 원하든 원치 않든 고스란히 우리 몫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지역, 다른 학교는 어떻다더라 하면서 어디부터가 사실이고 어디부터는 부풀려졌는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들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그 긴장감은 더 고조되었지요. 어디 지역은 작년에 전교생을 9시까지 남겨서 몇 개월 죽어라 문제집 풀이 시켰다더라, 그래서 처음에 꼴등했다가 작년에는 몇 등을 했다더라, 어디 학교는 6학년은 아침 0교시와 저녁 7교시를 보충수업 한다더라, 6학년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못 나가게 하고 공부를 시킨다더라, 시험이 끝나면 미도달 학생이 몇 명인지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한다더라….

"지역 교육청이랑 시교육청이 이렇게 닦달하는 거 보면 지역 시험 결과에 따라 교육청 지원비가 달라지는 거 아니야?"

결국 이 시험이 내게 다가온 실체는 이러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시험을 봤는데 각 과목에 미도달 학생이 많으면 나도 망신이고, 그 망신이 학교에서 교육청까지 뻗치는 거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교사로서 이 시험에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점점 또렷해졌고 그렇게 모든 6학년 교사가 7월 시험준비 단 하나를 위해 1학기를 살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6학년은 공부해야 해서 청소할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원래 배정받은 실외 청소를 시험 전까지 5학년이 하도록 넘겨줬습니다. 1학기에 하던 학교 행사도 2학기로 넘겨서 하도록 계획을 바꾸고, 6학년 교사들 공개수업도 2학기로 넘겨서 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학교는 6학년 교사들에게 시험 준비를 위해 1학기에는 업무를 배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모든 생활이 7월 성취도 평가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일제고사 하나를 위해 1학기를 살게 됐습니다

2010년 7월 9일, 전국 초, 중, 고교생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0년 7월 9일, 전국 초, 중, 고교생을 대상으로 일제히 치러지는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앞두고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소속 학생들이 일제고사 반대를 주장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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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에서야 이 시험으로 인한 교육과정 파행사례가 많이 접수되다 보니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며 공문도 보내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전국에 있는 6학년 모두 시험보게 해서 학교 등수, 지역 교육청 등수, 시도군별 등수가 다 나온다는데 교육과정을 준수하라고요? 정말 교과부에서 내렸다는 그 공문을 박박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때 아마도 6학년 선생님들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했지 싶어요.

'7월 중순에 시험을 본다니 적어도 6월 중순까지는 진도 다 나가야 하고 한 달은 시험공부를 시켜야겠구나.'

제 하루 생활은 이랬어요. 수업시간에 질문이 어딨고 모둠 수업이 어딨어요? 그냥 막 진도 나가요. 그런 다음 단원이 끝나면 단원평가를 봐요. 그리고 틀린 개수가 몇 개 이상인 아이들은 남겨요. 그리고 다시 공부 시킨 다음에 재시험 봐요. 통과할 때까지, 그러니까 외울 때까지 공부시키는 거지요. 6월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이렇게 살았지 싶어요. 그때 아이들이 저에게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이래요.

"선생님. 이 시험 도대체 왜 보는 거예요?"
"선생님. 왜 체육 안 해요?"
"선생님. 하루에 수학이랑 사회 이런 걸 왜 두 시간씩 해요?"
"이거 시험 못 보면 남아서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아이들 입에서는 이런 말이 수시로 흘러나왔죠.

"아~ 6학년 완전 짜증나. 6학년 되니까 만날 시험공부만 해야 돼."

아이들 반응에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혼란스러웠어요. 아예 이 시험을 왜 잘 봐야 하는지 그럴듯하게 설득이라도 해서 아이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얘들아, 어차피 대학 가려면 전국에 있는 아이들이 다 너희들 경쟁상대야.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무얼 더 열심히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잖아. 중학교 가면 어차피 이런 생활 해야 되니까 미리 경험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봐."

이렇게 말이에요. 아니면 교과부가 말하듯이 "이 시험은 국가에서 너희들 학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서 더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시험이야.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봐. 그런데 수능시험조차도 전국 학생이 모두 보는 시험은 아니야. 볼지 말지 자기 선택권이 있으니 부모님과 의논해봐"라고 말하고 문제 풀이식 수업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요(그 시절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그렇게 안내했다가 해직당한 선생님들이 떠오르네요)?

한숨 쉬는 아이들... 선생님은 정말 괴로웠어요

충북도교육청이 2011년 말에 교육청 현관 앞에 만들어세운 일제고사 석탑.
 충북도교육청이 2011년 말에 교육청 현관 앞에 만들어세운 일제고사 석탑.
ⓒ 전교조 충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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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험 공부를 시키면 시킬수록 정말 괴로웠어요. 매일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역사를 외워야 했고 수학 공식에 따라 무조건 푸는 연습을 해야 했지요. 아이들은 시험지에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따뜻하게 달래가며 차근차근 가르칠 여유도 시간도 없었지요. 그러나 어쩌나요. 아이들에게 나도 이 시험이 정말 싫고 교사로서 괴롭다고 말할 만큼 상황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투덜거릴 때마다 어쭙잖은 협박으로 얼버무렸지요.

"기왕 보는 시험 잘 보면 좋잖아. 그리고 과목에서 미도달 하면 남아서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대."

그래요. 결국 돌아보면 난 미도달 학생 많이 나온 학급 담임, 무능한 교사란 말이 듣기 싫어 아이들을 그렇게 좋은 봄날 교실에 묶어두고 달달 볶아댔었내요.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그렇게 공부를 해야 했구요. 참 어른들이 못됐지요.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고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그렇게 아이들을 괴롭힙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정신 없이 성적처리를 하고 나니 며칠 뒤가 여름방학이라 하네요. 아이들에게 종이 버릴 것 있으면 가지고 나오라며 폐휴지통을 내놨더니 아이들이 사물함과 책상 서랍 속에서 그간 풀어댄 시험지를 꺼냅니다. 아이들은 가슴팍 한가득 시험지를 들고 나와 폐휴지통에 휙휙 던져 넣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왜 그리 허망하고 쓸쓸했을까요. 나와 아이들이 함께한 1학기는 그렇게 쓸모없는 종잇조각으로 미련 없이 버려졌다는 걸, 폐휴지통에 들어가는 시험지를 보면서 느꼈나 봅니다.

여름방학이 되었고, 짧은 경력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이런 식이라면 교사 오래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뭐든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길을 찾지 않으면 꼭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학급운영 공부를 했고 2학기에는 새로 새운 학급운영 계획에 따라 진도, 시험에 시달리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지요. 어느샌가 아이들과 내가 마주 보며 웃는 일들이 많아지고 관계에 온기가 돌면서 교사로서 바닥으로 추락했던 내 자신감과 자부심도 살짝쿵 회복하였지요.

그런데 겨울방학 전이었을까요? 왜인지 알 수 없으나 교육장이 직접 학교에 와서 6학년 교사들을 보자 하더군요. 교장실에서 교육장과 마주 보고 있던 그 시간에 기억나는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교육장의 질문.

"선생님 반에 미도달 학생이 몇 명인가요?"

둘. 교육장의 부탁.

"겨울방학에 아이들을 보충수업을 하면 좋겠네요."

그렇게 기억에 남는 마침표를 교육청이 찍어주었고 저는 다음 해인 2011년에 6학년을 피해 5학년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5학년은 일제고사 예비학년으로 대접해주더군요. 5학년부터 공부시켜 6학년으로 올려 보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일제고사가 교사에게 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나간 날... 흐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3월 7일 오전 양정동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이날 실시하는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연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3월 7일 오전 양정동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이날 실시하는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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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1년 말부터 학교 폭력이 원인이 되어 자살하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는 한탄으로 고개를 떨궜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와 학교가 아이들 목을 조르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 죽음으로 증명하고 있으니, 교사로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고 남을 괴롭히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자기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클 때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길게 짜여져 있는 경쟁구조가 아이들이 서로의 목을 조르는 제일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봄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으면서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아이들 기사를 읽으며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목을 조르는 데 일조하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어떠한 행위라도 하자 생각하며, 일제고사를 보던 6월 어느 날 아침 집에서 가까운 학교 앞에서 처음으로 일제고사 반대 1인시위를 했습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저에게 "당장 여기서 나가요!" 하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죠. 속이 벌벌 떨렸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오전 9시쯤 피켓을 들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죠.

그런데 빨리 눈물을 훔쳤어요. 뭘 그리 대단한 걸 했다고. 아이들은 자기 목숨을 던지며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거 너무 힘들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그깟 30분 알량하게 1인시위 한 번 하면서 울긴 뭘 우냐고 자신을 다그쳤습니다.

그렇게 2013년이 되었고 저는 5학년 담임으로 복직했는데 3월 7일에 아이들 학습상태를 진단하는 진단평가를 전국 단위로 본다고 하더군요. 진단평가 하나 보는데 시험 전 준비부터 시험 당일까지 수능시험을 방불케 하는 절차와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나 하다가 진단평가 날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물어보시더라구요.

"이런 방법밖에 없습니까."

그래서 우물쭈물 말했습니다.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부 '초등 일제고사 폐지' 확정!"이란 문자를 보면서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날 누군가가 저에게 문자를 보냈더군요.

쌤이 1인시위 해서 폐지됐나봐.

그 문자에 몹시 부끄러워지면서 이 시험이 존재했던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등진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뒤늦게나마 먼저 세상을 등진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마음을 전합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지금은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물론 일제고사가 폐지된다고 해도 입시경쟁교육은 여전할 거고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이 멈춰지지는 않겠지요. 아이들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고작 1인시위 정도겠지요. 하지만 그냥 지금은 당분간 좀 기뻐하렵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열심히 고민하고 '움짝움짝' 할 수 있는 만큼 기쁘게 움직일게요.


태그:#초등 일제고사, #학업성취도평가, #일제고사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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