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한 골을 더 먹는 순간 상대 B팀 12명 전원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우리 A팀은 선수들은 천천히 중앙선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2001년도에 열렸던 한국과 프랑스의 축구경기도 아닌데 5골이나 먹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내가 골키퍼를 하겠다고 자처했으니 말이다.
<오마이스쿨>에서 만든 괴상한 축구 때문이다. 룰을 한번 보자. (남녀 구성이 반반이니)남녀 혼성팀으로 구성한 것 까지는 좋다. 여성은 볼을 발로 차도 괜찮고 손으로 잡을 수도 있다. 또 볼을 껴안고 앞뒤로 달려가 슛을 날려도 되는 반면, 남성은 볼을 발로 차거나 옆으로 또는 뒤로 패스를 하면 반칙이다. 더군다나 슛도 할 수 없다. 이 무슨 남녀 불평등이냐!
스스로 비참해지는 건 여성들에게 5골이나 먹었기 때문이다. B조의 여성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골키퍼인 나를 넘어뜨리고 기어이 골을 넣고야 말았다.
<오마이뉴스> 때문에 유명해졌다?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3일간 강화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44기'(이하 오기만)를 신청했었다. <오마이뉴스>시민기자로 활동한 지 딱 2년만이다. 그런데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곤 했다. 뭘까! 원인은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 때문인 듯싶었다. 기사를 써 놓고 반복해 읽어볼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체계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아보자.'바쁘다고 미루어 왔던 오기만 문을 노크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게 상책인 듯했다.
참여결정 계기는 또 있다. 지난 3월 중순 어느 단체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나를 어떻게 알고 글쓰기 강의를 부탁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상대방의 대답은 간결했다. "<오마이뉴스>기자잖아요."
교육 담당자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오마이뉴스>를 즐겨 읽는다고 했다. 또 어떤 계기로 내가 쓴 기사는 빼놓지 않고 보아왔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써 온 방법을 소개를 해 달라는 거다. 내가 써온 기사는 형식도 기준도 없다. "망신당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강의는 마치 마약 같았다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등의 기사와 조중동을 비롯한 여타 통신사들과는 기사성격이 다르다. 그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해 달라.""여러분들이 잠시 뒤에 배울 스트레이트 기사를 말하는 것 같은데, 기사의 기본은 스트레이트 형식으로 쓰는 게 맞다. 짧은 문구로 전체내용을 담아내고 사건의 중요한 순서대로 써 내려가면 되니, 데스크에서는 지면에 맞추어 기사본문 어느 단락에서 잘라내도 내용전달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면 뉴스는 스트레이트 기사형식에 의하지 않고는 기사를 담아낼 수 없는 여건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뉴스는 공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궁금했던 것이 풀렸다. 오연호 대표는 (오마이뉴스 기사 작성시)사안에 따라 6하 원칙에 의한 스트레이트 기사 형식으로 써야 할 경우도 있다고 말을 이었다.
기사 쓰기의 ABC(3간40분), 기사쓰기(5시간30분), 전문가 강연(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오마이뉴스 최지용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박사), 인터뷰가 있는 토크(시사인 고재열 기자, 미디어다음 김태형 팀장) 등 오기만 44기 교과는 다양하게 편성됐다.
밤 11시다. 한명도 졸고 있는 사람이 없다. 늦은 시간임에도 오히려 수강생 25명의 눈이 빛났다. 마약이라도 먹은 걸까!
맞다. 오연호 <오마이뉴스>대표기자가 마약인 듯했다. 그의 강의스타일은 독특하다. 강사 일방의 주입식이 아닌 양방향 소통강의가 특징이다. 개별 수강생들에게 눈길을 주며 강의에 임하다 느닷없이 질문을 한다. 그의 강의는 지루함이 없다. 거침이 없다.
1320여 명의 시민기자를 배출했다
"배워서 남 주자""배워서 남 주나?"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이런 글귀는 처음이다. <오마이스쿨> 모토이다.
<오마이스쿨>은 시민기자의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배워서 남 주자' 의미는 기사쓰기의 체계적 학습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리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온면 넙성리에 위치한 <오마이스쿨>은 2007년에 문을 열었다. 9500여 평방미터 규모의 신성초교를 리모델링 해 도서관, 전산교육장, 강의실, 기숙사, 식당 등 동시에 70명을 수용 가능한 규모로 꾸몄다.
(한 기수 평균 30명으로 계산하면) 지금까지 1320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셈이다. 수료생 중 많은 사람들이 일간지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 인터넷신문 기자 등 다양한 언론사에서 활동 중이란다.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물으면 서슴없이 밥맛을 이야기한단다. 인근 농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이용해 밥과 반찬을 만들어 내 놓았으니 밥맛이 없을 턱이 없다. 첫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열흘만 있다간 돼지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맛있다.
오기만 44기를 기대한다
"이번 기수는 참 특별하다. 교육 시작시간인 9시를 어기는 사람도 없고, 나른한 봄인데도 교육시간에 한명도 조는 사람이 없었다. 44기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화술 9단쯤으로 보이는 오연호 대표기자는 전 기수들에도 그랬고 전 전 기수들에도 그렇게 말했을 테지만, 44기 오기만 교육생 모두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우리 기수 첫 모임은 화천에서 열면 어떨까?" 오 대표 때문에 기분이 업(up)된 나는 또 오버했다.
교육기간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정태승씨를 반장으로 뽑았다. 부반장으로 임명된 김성희씨는 발 빠르게 교육종료 다음날인 4월1일, 페이스북에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그룹을 만들었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자는 의미다.
오기만 44기 시민기자. '교육과정 중 배운 것들을 토대로 다양하고 유익한 뉴스를 생산해 국민들에게 전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