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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동료의원들께 드리기 어려운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오늘 제 말씀의 주제는 '계파를 넘어 정파로'라는 것이다. 의원총회에서 하기엔 적합한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달리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란다.

1. 모든 계파와 유사 계파는 동시에 해체해야 한다

민주당 김용익 의원. (자료사진)
 민주당 김용익 의원.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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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당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계파정치의 함정에 빠져 있다. 계파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어느 누군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것이 계파에 비추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재해석을 하지 않으면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계파를 이해하지 않으면 공직과 당직의 선출 근거, 당료의 선발과 구성, 당헌·당규를 둘러싼 논쟁의 의미, 소위'룰 미팅'의 그 치열한 쟁점 등,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는 더 나가서 설혹, 어떤 의원이 진실한 정치행위를 하더라도 계파적 정략으로 오해되고, 언론에 그렇게 보도된다. 서로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오래된 통증들은 안 좋은 기억이 되어 쌓여만 가고 있다.

Homo homini lupus(인간은 모든 인간에게 늑대이다)의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도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좋은 뜻을 가지고 당에 들어온 신진 정치인들도 몇 년이 지나면 정치공학에만 밝은 정략가가 되어 있다. 우리 당의 누가 JF 케네디가 되고, 누가 빌리 브란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계파 구조는 큰 정치인의 재목을 작은 정략가가 되도록 억압하고 있다.

나는 계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의원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두가 계파의 질곡에 숨 막혀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계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당의 개혁을 향한 백약이 모두 무효다. 5.4 전대에서 좋은 당 대표를 뽑으면 변할 것인가? 당헌·당규를 고치면 변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다.

나는 제안하고자 한다.

모든 계파와 '유사 계파', 즉 계파로 인정 또는 지목되는 모든 조직은 동시에 해체되어야 한다. '죄수의 딜레마'에 사로잡혀서 하나하나는 해체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해체는 동시 진행되어야 한다.

친노는 즉자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대자적으로 최대 계파이다. 그러면 계파임을 인정하고 해체해야 한다. 민평련은 정파로서의 자기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모두들 사실상의 계파로 인식한다. 그러면 해체해야 한다. 486 그룹도, 소위 비주류 또는 쇄신파도, 아무개 아무개라는 특정인의 이름이 붙은 계파들도 모두 해체해야 한다.

동시해체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개혁의 시발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의원이, 모든 당원이,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은 민주당의 의원으로, 민주당의 당원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모든 의원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다. 계파를 벗어나서 각자가 독립적인 판단으로 독립적인 행동을 하는 자유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민주당에는 정치가 없고, 정치인이 없고, 국민이 없고, 미래가 없다.

그리고 정파가 새로 구성되어야 한다. 당원의 사고는 당연히 당을 단위로 일어나야 하지만 당이 갈 길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고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당에 정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당에는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고 중도파도 있을 수 있다. 사안에 따라 찬반이 엇갈려 나뉠 수 있다. 당원들이 연줄이 아니라 의견에 따라 행동할 때, 민주당은 비전에 대해, 강령에 대해, 정책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고 당에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 나는 기꺼이, 자랑스럽게, 민주당 좌파가 될 것이다.

2. 당의 원로들은 평범한 국회의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의 일부 원로들이 당의 방향과 운영을 암암리에 좌우한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그분들은 당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선의의 뜻도 있겠지만, 당의 중견·신진 정치인들이 적지 않게 불편해하고 있다.

계파정치는 날줄이 되고, 원로정치는 씨줄이 되어 당의 발전을 가로 세로로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으나, 후배가 선배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우리 문화에서 아무도 말을 못 하고 있다. 대략 연배가 비슷한 내가 말을 꺼내는 것이다.

사람이란, 보통은, 어떤 위치에 있음으로써 기여하지만, 때때로 그 자리에 있지 않음으로써 기여하는 일이 있다. 지금 우리 당의 원로와 계파의 수장들은 이 선택을 하는 것으로 기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나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계파의 수장, 원로들의 정계 은퇴나 국회의원 사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분들이 평범한 보통의 국회의원이 되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분들이 당의 대표가 되거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길을 막으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시도는 자신의 비전과 정책, 능력을 스스로 증명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당원과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해야지, 계파를 통해 또는 연줄을 통해 또는 선수와 나이에 기대어 운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누가 그분들을 비난하겠는가?

3. 한 차원 고양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당에는 새로운 예의·염치가 필요하다. 정치에는 피아 간에 금도가 있어야 하고,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 부끄러움이 필요하다.

두드러진 정치인이 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나 파벌을 만들어 조종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친분 관계나 학연, 지연으로 지지를 부탁받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다. 자신이나 계파의 이익을 가린 채, 겉으로만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술수이다.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선수나, 나이, 과거의 경력을 앞세워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일은 비겁한 일이다. 

위인설관의 규칙을 급조해서 실질적인 지지보다 더 큰 표를 만들려고 하는 짓은 공작이다. 다수결로 정해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보이지 않게 뒤에서 흔들어대는 것은 음모이다. 정치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계파는 해체되고 원로정치는 불식되어야 하지만 그런 결정이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면 반드시 몇 달 후 계파는 부활한다.

높은 수준의 합의제 정치는 합리적 대화와 합리적 타협을 만들어 한 단계 고양된 수준의 정치문화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시 해 왔던 정치적 관행과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당은 반드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우리가 지금 지고 있는 최대의 의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과감한 단안을 내려야 한다.

나의 불편한 말씀을 너그러이 해량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김용익 기자는 민주당 초선 의원으로 이 글은 4월 2일 민주당 의총에서 한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태그:#김용익,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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