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에게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그 이미지가 대체로 나쁘지 앟다. 그들이 주창한 '실사구시(實事求是)'나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같은 테제가 실용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관점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용주의는 교조적인 관념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들이 당대의 개혁파니 진보의 아이콘이니 하는 말들로 떠받듦을 받는 이유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는 그들이 불편했다. 박제가(1750~1805)가 특히 그랬다.
나는 지금도 그의 대표 저작인 <북학의(北學議)>를 읽으면서 느꼈던 거부감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도대체 수레의 있고 없음이 어떻게 가난과 관련된다는 말인가. 우리와 중국의 풍토나 환경 등 조건이 전혀 다른데 말이다.
그가 <북학의>의 '중국어 漢語(한어)'라는 글에서 조선 사람이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다고 해도 불가할 이치는 없다고 말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시쳇말로 거의 '멘붕'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심지어 본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버려야 오랑캐라는 모욕적인 명칭으로 불리는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실소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박제가는 오늘날 식으로 말해 국어를 버리고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언어사대주의자와 다를 바 없다. 소설가 복거일씨와 같은 부류 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그의 '수레'는 수 년 전에 수능 언어 영역 시험 지문으로도 출제된 바 있다. 그의 실용주의적 취지를 고려했을지라도 정말 너무한 게 아닌가.
박제가의 <북학의>라는 책은 이미 그 책명부터가 화이론(華夷論; 중국을 중심으로 보고 그 주변의 제국가와 민족을 주변으로 보는 시각-기자 주)에의 포획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실제 이 책은 그 전체를 통해 화이론적 시각이 관철되고 있으며, '중국/조선'은 '우/열', '미/추', '깨끗한/더러움'의 관계로 파악된다. (196쪽)조선을 중국과 상호 대등한 관계로 본 담헌<범애와 평등 - 홍대용의 사회사상>의 저자 박희병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박제가가 당시에 '당벽(唐癖; 중국에의 지나친 경도)'이 있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박제가의 주장에 기기(機器)와 제도의 표준화나 해외 통상론 등 선구적인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박제가가 지나치게 '상인적 이익'만 추구하고 심각한 '자기비하'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반면 이 책의 주인공인 홍대용(1731~1783)은 어떠한가. 담헌은 종래 박지원(1737~1805)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北學派)
*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담헌이 북학론(北學論)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북학론의 담론틀 속에 온전히 포함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담헌의 사상이 북학론과 상충하며, 심지어는 북학론을 지양하기까지도 한다고 본다. 왜 그러한가.
우선 이들 사이에는 대중국관의 차이가 있다. 박제가를 포함한 북학파의 학자들은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우열과 상하의 관계로 본 반면에 담헌은 상호 대등한 관계로 보았다. 저자가 북학을 주창한 대표적인 학자인 박지원마저도 청나라를 '華(화; 중국)'로 인정하지 않고 '夷(이; 오랑캐)'로 보면서 청나라의 발전한 문물을 정통(?) 중국의 유산으로 보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북학파와 담헌의 차이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구별된다. 저자는 북학의 주창자인 박제가와 박지원이 기술 이용을 통한 생산력 증대에만 관심을 집중한 반면, 담헌은 생산력과 과학 기술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관계나 생산 관계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고 본다. 담헌의 사상을, 사회 개혁을 포함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홍대용 사상의 고갱이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범애와 평등'이라는 말로 집약한다. '범애(汎愛)'는 담헌 만년의 대표 저작인 <의산문답>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는 담헌의 '범애'를 묵자(墨子, B.C. 480~B.C. 390; 중국 주자학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조선 선비들은 그 주자학을 도그마처럼 떠받들었다)의 '겸애(兼愛)'와 견줘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겸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협애한 개념인 데 반하여, '범애'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사물)' 사이의 관계에까지 적용된 광의의 개념이다.
특권 세습을 부정하고 기회 평등 강조한 담헌'평등'은 이와 같은 범애의 개념에 기초해 나온 것으로 담헌이 주장한 존재론의 핵심을 차지한다. '화(華)'와 '이(夷)'가 같고, '인(人)'과 '물(物)' 또한 같다는 게 홍대용의 생각이었다. 이들 생각은 '화이균(華夷均)', '인물균(人物均)' 등으로 쓰이면서 <의산문답>에서 주요 열쇳말로 자리잡고 있다.
'범애와 평등'으로 집약되는 담헌 사상은 조선 후기 시대에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혁신과 진보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이를테면 신분 세습 문제에 대한 담헌의 입장을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학자들 가운데 신분 세습을 부정한 사람은 유수원과 담헌 두 사람뿐이었다. 다만 유수원은 노비는 예외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담헌은 노비도 예외로 하지 않았다.
담헌은 당대의 다른 학인들과 달리 양반가의 자제를 편드는 모습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특권의 세습을 부정하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담헌의 태도에 대해 신분제를 그 중심에서부터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수준이었다고 할 정도다. 내가 담헌을 조선 후기 혁신과 진보의 아이콘으로 보는 까닭이다.
가짜 학문과 가짜 공부, 가짜 학자가 날뛰는 세상이다. 저자 자신의 말마따나, 비판성과 자율성, 용기와 기백을 잃어버린 학자와 지식인은 우리 주변에 또 얼마나 많은가. 지식인이나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시류에 편승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이들을 보면 역겹기만 하다. 저자가 이 책의 대미(大尾)를 다음과 같이 끝맺은 것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담헌이 사상을 만들어 간 방식 역시 주목을 요한다. 한편으로는 자기 시대의 핵심적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그에 정면으로 맞서 대결했으며, 금기나 성역을 뛰어넘어 자신의 논리와 사유를 그 극단에까지 밀고 나간 측면이 주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사상에 구애되지 않고 여러 사상을 공관병수(公關倂受; '공평무사한 눈으로 보아 다른 사상의 장점을 두루 받아들인다'는 뜻)하면서 창조적·원리적으로 새로운 진리를 구성해 나간 면이 주목된다. 이런 기백, 이런 용기 있는 자세와 개방적이고 활달한 태도로써 그는 낡은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382, 383쪽)* 저자는 1930년에 최남선이 처음으로 사용한 이 용어가 화이론적이고 중국중심적인 시각을 강하게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북학파는, 박지원의 호인 '연암'을 따라 '연암일파, 연암학파' 등으로도 불린다. 저자는 학문이나 사상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명칭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문예 창작의 차원에서는 박지원을 중심에 두는 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학문이나 사상의 측면에서는 연암이 실질적인 리더 구실을 하지 않았으며, '연암학파'로 불리는 그룹이 학문적으로 내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저자는 '담연그룹'이나 '담연일파'와 같은 용어를 제안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희병, <범애와 평등 - 홍대용의 사회사상>, 돌베개, 2013. 값 2만 5천 원. 4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