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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로 가는 기차 안에서 김광석 노래를 다시 들었다. 어두웠던 청춘을 뚫고 나가게 해준 노래들이었지만, 사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 기억들이 떠올랐고, 타임머신을 탄 듯 내 영혼은 청춘의 십자가를 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길은 대구 방천시장으로 향했다. 김광석 노래들을 꿰어 이야기로 구성한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보기 위함이었다. 떼아뜨르분도 소극장에서 열린 감성 뮤지컬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대구에선 2012년 11월 30일~1월 6일까지 공연)은 불쑥 그렇게 찾아왔다.

공연 내내 울려퍼지는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노래하는 것을 꿈꾸던 시절을 추억했다. '귀신'이라 불리며 서울지역에서 민중음악의 진수를 보여준 누님(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과 목소리만으로 우리를 감동하게 했다), 기타 하나만으로 주위를 압도했던 동아리 선배(선배는 대학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노래보다는 연주를 좋아했던 친구(친구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울 근교에서 소를 키우고 있다), 대학원 시절 나에게 큰 영감을 주고 미국으로 떠난 동학(양병집을 좋아하던 이 친구와 신촌에서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뜬금없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일상"이라고 종이에 적어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등.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힐링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열연 중인 박창근 씨. 그의 목소리는 김광석을 닮았다.
▲ 실력파 가수 박창근 씨. 힐링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열연 중인 박창근 씨. 그의 목소리는 김광석을 닮았다.
ⓒ 사진작가 신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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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람이 불어오는 곳> 뮤지컬 주인공 중 한 명인 박창근씨를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종로구 부암동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다니. 이런 우연이! 대구가 집인 가수 박창근씨는 공연 준비를 위해 부암동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대구 초연에서 관객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아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연속 공연한다고 했다(대학로 아트센터 K 네모 극장에서 5월 19일까지). 특히, 지난 공연에 대한 필자의 리뷰 기사(<교수신문> 가객을 위한 頌歌…김광석을 노래하고 나를 얘기하다)가 공연팀에서 회자가 되었다고 했다. 채식을 하는 그에게 맛난 것을 사주겠노라고 말하며 헤어졌다. 이때가 올 초 겨울이었다.

3월 중순경, 가수 박창근씨(이제는 뮤지컬 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니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직장 동료와 그의 아내(이분들은 '뮤지컬 狂'이다) 그리고 여자 친구를 데리고 대학로를 찾아갔다. 대구에서 공연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감정의 선들이 좀 더 정제되고, 이야기는 밝아졌으며, 노래는 완숙미를 한층 갖췄다.

아! 마치, 2쇄판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가의 노련미가 더해졌다. 같이 공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게 바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두 번째 만난 느낌이었다.(<교수신문> 힐링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대학로를 적시다)

#3. 10년 이상 한 곳에 몸담았던 직장을 한 선배가 그만뒀다. 좋은 직장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냥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이미 한 번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돈, 사람, 일. 이 중 하나만 맞아도 직장을 그만두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 요새 화두인 '힐링'이 필요하겠구나. 기계적 사운드가 아닌, 즉흥적이고 어쿠스틱한 노래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선배를 초대했다. 세 번째 관람이었다.

동행한 선배는 김광석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대중적인 몇몇 노래들만 귀에 익숙하다고. 그런데 공연 내내 울고 웃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노래 실력과 공연진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공연 후 박창근씨의 앨범을 구입했다. 그리고 맥주도 한 잔 했다. 공연 소감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베트남에 있다가 돌아온 선배는, 다시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지인들과 만나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부러웠다.

#4. 가수 박창근씨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평일 공연에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공연이고 십시일반 어렵게 준비한 공연이라서, 초대받는 것이 한편으로 미안했다. 그래도 또 한 번 가서 공연에 흠뻑 젖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공연이 바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이제는 장성한 조카들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했다.

네 번째 공연 관람. 다시 보아도 새록새록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세련되지 않아도, 노래에 진심이 있기 때문일까. 김광석 관련 비슷한 뮤지컬이 대학로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방송에서 홍보가 되기도 하고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 그럼에도 힐링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더욱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사랑을 만나는 설렘과 세월을 견뎌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공감대,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화해, 그리고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삶의 쓸쓸함까지.

어제는 공연을 다 보고 돌아오면서 '영원회귀'라는 표현이 생각났다. 김광석의 노래가 우리 삶속에서 계속 흐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 이걸 자각해야만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지금을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을 고 김광석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아마도 한 번 더 이 공연을 보게 될 것만 같다.


태그:#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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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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