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CCTV에 찍힌 은행강도.
CCTV에 찍힌 은행강도. ⓒ NBC29

이 사람을 아시나요?
▶ 키: 172cm~ 175cm
▶ 체격: 보통 사이즈
▶ 얼굴색: 중간에서 어두운색
▶ 선글라스를 꼈음.
▶ 지퍼 달린 풀오버 후디와 청바지를 입었음.
▶ 무늬가 있는 청백색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음.
이 용의자는 은행을 나온 뒤 걸어서 달아났음.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분은 익명의 제보 전화인 574-5050 <범죄해결부>로 연락하기 바람.


 강도사건이 발생한 은행 앞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강도사건이 발생한 은행 앞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 ⓒ WHSV

대낮에 은행 강도 출몰

우리 동네에 은행 강도가 나타났다. 그것도 벌건 대낮인 금요일(5일) 낮 12시 50분께에.

그날 오후 4시쯤, 나는 거래 은행인 '뱅크 오브 어메리카(Bank of America)'에 들렀다. 사실은 은행 직원의 실수 때문에 같은 날 두 번째 걸음을 하게 된 것이었다. 첫 번째는 점심 무렵인 낮 12시 40분께, 두 번째는 4시께였다.

그러나 두 번째 갔을 때는 처음과는 달리, 아니 평상시와는 달리 경찰차 두 대가 은행으로 들어가는 한쪽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있었지만 은행 업무가 급했던지라 나는 그냥 경찰차를 무시하고 다른 쪽 샛길을 통해 은행으로 들어갔다.

은행 건물 앞 주차장에는 고객들의 차가 거의 없었다. 금요일 오후의 텅 빈 주차장이 조금 의아했지만 그냥 차에서 내려 서둘러 은행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내 차 바로 옆에는 또 다른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차 안에서는 제복 입은 경찰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은행 주변이 이렇게 으스스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곧장 출입문 쪽으로 가 유리문을 당겨 보았다. 그러나 은행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열려 있어야 할 은행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 한나영

'왜 문이 닫혀 있지? 무슨 일이지?'

한국의 은행들이 평일에 일찍 문을 닫고 토요일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은행들은 대부분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은행문도 늦게 닫고 토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뱅크 오브 어메리카'의 경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 오후에는 평일보다 1시간 더 연장하여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토요일도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문을 연다.

(* 재미난 사실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어떤 분의 경험담이다. 이 분은 주5일 근무제가 일찍 시행된 미국에서도 당연히 한국처럼 토요일에 은행문이 닫히는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 볼 일을 월요일까지 기다려 처리했다고 하는데 혹시 미국에 오시는 분은 참고하시라.)

하지만 내가 갔던 금요일 4시는 마감시간 전이었는데도 이미 은행문이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내가 만나야 할 직원이 바로 유리문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닫힌 유리문을 두고 그 직원이 해결해 줘야 할 문제를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다. 목소리를 높여 직원에게 설명을 하자 금세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내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왜 이른 시간에 은행문이 닫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직원은 짧게 이렇게 말했다.

"뉴스 보세요."

'뭐라고? 뉴스를 보라고?'

뉴스에 나올 정도라면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직원이 말을 안 해주니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은행에 갔다 왔는데 벌써 문이 닫혔더구나. 여기 은행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애. 궁금해서 그런데 인터넷으로 한 번 검색해 볼래?"

1분도 채 안 되어 딸이 내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강도가 들어왔대."
"뭐, 뭐라고?"
"권총 든 강도."
"엄마는 아까도 은행에 갔다 왔는데 강도가 몇 시에 들어왔다니?"


뉴스나 영화에서만 보던 은행 권총 강도 사건을 접하고 보니 더럭 겁이 났다. 집에 와서 뉴스를 틀어보니 어머나, 권총 든 강도가 은행에 나타난 시간이 내가 은행문을 나선 시간과 불과 몇 분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마터면 나도 은행 CCTV에 찍힌 고객들처럼 바닥에 납짝 엎드린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있어야했다. 아, 십 년은 감수했다. 무서워라.

그나저나 그 은행 강도는 은행에서 돈을 턴 뒤 유유히 걸어서 사라졌다고 한다. 자동차로 도망간 것이 아니고. 이건 뭐,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신출귀몰한 강도가 아닌가.

이 사건은 사건 발생 3일이 지난 오늘(8일)까지도 아무런 단서가 안 잡혔다. 강도가 가져간 돈 액수도 현재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뒤 이곳 대학 측에서는 전체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은행 강도 사건을 알리면서 총을 든 범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최첨단 장비, 최고의 실력을 갖춘 미국 경찰을 비웃으면서 유유히 사라진 은행 강도, 그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가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걱정이다. 그나저나 나는 총을 가진 미국 경찰만 봐도 겁이 나고, 옆 차선으로 달리는 경찰차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리던데 도대체 그 강도는 무슨 담력으로 은행을 털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문이 닫혀 있어 허탕치고 돌아가는 은행 고객들.
문이 닫혀 있어 허탕치고 돌아가는 은행 고객들. ⓒ 한나영



#은행강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