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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우리 고장에 있는 중·고등학교의 학생임원 수련회에 '좋은 말씀'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녀왔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는 옆 군에서 개관하는 도서관에 가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랍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농촌에 살 뿐, 도시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심했다. 집과 학교 사이를 대롱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오갈 뿐, 자연도, 농사도, 부모의 일상도 모르고 있었다. 부모 집안일을 돕는다는 것은 먼 꿈나라 같은 얘기였다. 방과 후 학교니, 학원이니, 무슨 프로젝트 수업이니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내고,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이들의 자투리 시간마저 장악하고 있었다.

하물며 놀이마저도 전문가 선생님이 와서 가르치는 실정이다 보니 어딜 봐도 '촌놈'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산과 들과 냇가에서 천연 그대로 자라던 옛날 '촌놈'의 야생성은 흔적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나 꿈도 '촌놈'다운데가 없었다.

농업인구가 날로 줄어들어서 1970년도에 1500만이던 것이 2000년도에는 400만을 겨우 넘기는가 싶더니 작년에는 290만 명 아래로 내려앉았다. 농업인구가 갈수록 줄다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종 후계농업인 지원책이 새로 나왔지만 다들 농촌을 떠났고 들판은 농기계가 장악했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보니 농장은 하우스와 농약, 제초제가 농민의 일손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농토와 밥상은 오염될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오염된 땅과 오염된 음식은 복수라도 하듯이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섯명의 청년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
▲ 집짓는 중 다섯명의 청년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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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괜히 농촌을 떠났겠는가? 저렴한 도시노동력을 확보하고 농기계산업과 석유화학농자재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농촌을 끊임없이 압박한 중화학전자통신자동차 산업정책 때문에 빚어진 참상이라고 본다. 중세의 엔클로저 운동처럼 농민은 농촌에서 황량한 도시로 내쫓겼다고 해야 할 것이다. 농촌은 텅텅 비어 거대한 양로원이 된 반면, 도시는 슬럼화로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 된 것이다.

사실 지금의 농촌은 자식들이 부모의 농사 일손을 거들래야 거들 일거리도 없는 실정이다. 소고삐를 잡고 풀 먹이러 갈 일도 없고 꼴을 벨 일도 없다. 새참을 들판으로 내고, 술도가에 가서 술심부름 할 일도 없다. 지게라도 지고 나무라도 한 끼니 분을 해 올 여건도 안 된다. 모든 농사일이 기계와 약물로 진행되고 자동시스템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자식도 부모 따라 농사짓고 살게 할 수 있을까? 농민들의 2세가 자발적으로 농촌에서 살겠다고 하려면 어떤 방책이 필요할까? 이 문제가 풀리면 농촌문제의 중요한 매듭 하나가 풀릴 것이다. 특별한 경우 외에는 농민들의 자식이 다들 부모처럼 농사짓고 사는 모습을 상상 해 보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흙을 체에 치고 있다. 미장용으로 주변 흙을 이용한다.
▲ 집짓기 흙을 체에 치고 있다. 미장용으로 주변 흙을 이용한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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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자금을 저리로 융자를 해 준다거나, 농지나 농기계 구입을 지원하고, 농민 자녀의 농업대학 등록금을 면제 해 주는 등의 혜택은 여전히 필요하다. 청년 농부에게 군 대체 복무제를 도입한다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혜택에 전혀 관심도 없이 스스로 농부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 젊은이들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내 자식 얘기를 해서 뭐 하지만 어제 강화도에서 집을 한 채 짓고 있는 아들한테 다녀왔는데 아들 녀석은 일찍이 중학교 3학년 되던 때에 농촌에서 살기로 작정을 했었다. 지금은 군 입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작년에 시작한 집짓기를 다 끝내놓고 입대해야 한다고 친구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화학제품을 쓰지 않고 흙과 나무와 볏짚과 왕겨로 짓는 집이다.

우리 아이는 재작년부터 같은 대안학교 출신 청년 4명과 농장을 개척하여 농사를 지었고, 그들과 같이 집짓기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 청년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농촌과 생태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 출신인 경우는 코흘리개 때부터 논과 밭에서 뒹굴며 자랐고, 도시 출신 아이는 일찍부터 노동과 농사에 익숙해지도록 대안학교나 자연생태 체험 교육과정에 참여하며 자란 점이다.

이들은 부모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생태적 감수성을 어릴 때부터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일상에 참여하여 부모의 삶에서 자연스레 그것을 배우고 익힌 것으로 보인다. 철 따라 변하는 자연의 문리를 생활 속에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농사짓고 사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농업정책도 이 점에 착안 할 필요가 있겠다.

농사짓는 부모와 그 자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 하는 것 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농민 부모의 일상을 배우고 체화하는 다양한 형태의 학교나 교실을 개설하는 것 말이다.

현재, 도시 학생들에게 집중되는 농촌체험이나 체험농장 같은 것을 농촌의 가족 안에서, 지역의 마을단위에서 이루어지게 하면 어떨까?

농사짓는 사람이 우선 갖춰야 할 자질은 생태감수성이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스치는 봄바람에 설레 일 줄 아는 사람. 어떤 매개물도 없이 노동과 자연이 직접 만날 때의 희열. 인공미보다 노동미를 아는 사람이 진짜 농부의 자질을 갖췄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생태감수성은 내면 깊은 곳에서 장기간에 걸쳐 움이 트고 싹이 나는 것이지 지원이니 융자니 하는 외적 자극에 의해 키워지지 않는다.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면 자생력도 없다. 단기 체험과 프로젝트 수업으로도 한계가 있다. 아무런 보상 없이 이뤄지는 자연과의 합일 속에서 진짜 생태감수성이 커 간다.

살기는 시골에 살지만 온갖 도시적 자극과 유혹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농촌 2세들이 이것들과 거리를 두고 내면의 생태적 감성을 키워 갈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 해 볼 때다. 자라서 꼭 농사를 짓지 않아도 좋다. 시골 사는 아이들이 천혜의환경 속에서 이를 만끽하면서 자랄 수 있게만 해 주더라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기사에서는 분량제한으로 글의 길이가 짧았으나 여기에서는 원문을 올리며 사진도 넣었음.



태그:#집짓기, #청년,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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