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새벽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봄비 내리는 아침은 쌀쌀하다. 이장님은 지금 봄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것은 농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지금보다는 모내기를 할 무렵에 비가 제대로 내려주어야 한다는 것.
오전에는 그동안 캐온 냉이를 데쳐서 위생 팩에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저장하는 작업을 했다. 냉이를 삶은 냄새가 구수하게 온 집안에 풍긴다. 아내는 냉이뿌리와 잎을 구분해서 데쳐 정성스럽게 렙으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을 했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맛이 그만일 냉이를 생각하니 입가에 고소한 미소가 번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든 냉이를 캐 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텃밭에 나가보니 벌써 냉이 꽃이 피었다. 냉이 꽃이 피어나면 냉이도 독성이 있어 더 이상 먹기가 어렵게 된다. 냉이 꽃을 이렇게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고양이 수염처럼 하얀 털이 삐쳐 난 총상꽃차례에 촘촘히 피어난 냉이 꽃 가운데 노란 수술이 달려있다.
밑에서부터 십자 모양으로 피어 올라가는 냉이 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름답다. 꽃이 지고 나면 납작한 열매가 역삼각형 모양으로 달리는 것도 특이하다. 이처럼 하천하게 보이는 냉이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냉이 꽃은 밟혀도 피고 지는 생명력이 질긴 민초(民草) 같은 꽃이다. 흔해 빠진 냉이 꽃이지만 냉이는 봄마다 나물이 되어 민초들의 입맛을 돋워 주는 소중한 반찬이다. 일제 감점 기에 조선의 얼을 찾고자 냉이 꽃을 노래한 가람 이병기의 <냉이꽃>이란 시는 새삼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게 한다.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을 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시기에 가람의 시는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가공할만한 핵무기의 파괴력에 과감히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노래하는 가람의 시는 이 시기에 딱 어울리는 내용이다.
지천에 피어있는 냉이 꽃의 목숨이나, 사람의 목숨이나 생명은 똑 같이 귀한 존재이다. 봄비 내리는 날, 아름답게 피어나는 저 냉이 꽃처럼, 남북한 관계도 하루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라면 가람의 <냉이꽃>이란 시를 가슴으로 조용히 읊조려 본다.
냉이꽃 -가람 이병기(1891~1968)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 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또 어떨 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